[연재] 리아의 시간여행

맨발의 사나이

수에나

6. 맨발의 사나이

 

눈매가 날카로운 사람이다. 눈동자가 펄펄 살아있다. 검은 피부에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휄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당당하다. 그의 가슴에 이름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Abebe Bikila’ 그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오늘 내가 아주 바쁜 날이야. 약속이 있거든. 미안하지만 다음에 다시 오지?”

 

아베베는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아베베 아니세요? 그런 줄 알고 왔는데요.”

 

리아의 말에 그가 말했다.

 

내가 잡은 약속은 색다른 사람과의 만남이야. 바로 외계인과의 만남이지. 아가씨는 외계인은 아닌 거 같은데?”

 

외계인이요?”

그래. 외계인!”

 

순간, 당황하던 리아가 차근히 말했다.

 

사실, 제가 외계인이에요. 이상한 모습도 아니고 아베베와 같은 인간의 모습이라 실망하셨나요? 아베베를 놀리는 게 아니고 정말 외계인 맞아요. 서로 사는 세계가 다르면 상대방이 외계인이 될 수 있는 거에요.”

내 말은 지구인이냐, 아니냐는 차이야. 우리에게 우주는 신비로운 곳이야. 알 수 없는 세상이 바로 우주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외계인이지. 몇해 전에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잖아. 저 하늘에 떠 있는 달에 인간이 갔단 말이지. 이건 너희들도 잘 아는 얘기야. 우리가 닐 암스트롱을 우주인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내가 기다린 건 진짜 우주에 사는 외계인을 기다리는 거야.”

 

아베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진짜 외계인이네요. 제가 온 곳은 라임이라는 행성이에요. 지구에서 엄청나게 먼 거리에 있어요.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가다가 늙어 죽기를 수천 번은 해야될 정도로 먼 곳에 있는 별이죠.”

아가씨가 아주 재미있게 말하는군. 그렇게 먼 곳에서 여긴 어떻게 왔어? 아가씨가 정말로 우주에서 왔다면 뭔가 특이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걸?”

 

아베베가 리아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러다가 나도 쳐다본다. 나는 리아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라임에서 비행선을 타고 왔어요. 시간으로 비행을 계산할 수는 없고 공간을 당기는 방식으로 올 수 있었죠.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 믿기지 않아. 지구인이 우주 밖으로 나가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인데 그 먼 데서 공간을 댕겨 왔다니 믿기 어려운 말이야.”

 

아베베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제가 다른 얘기를 해 볼게요. 아베베는 최고의 운동선수죠. 벌써 10년 전에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후 1964년도에 두 번째로 금메달을 목에 거셨어요. 아프리카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신기록을 혼자 두 번이나 세우셨어요. 이 소식은 라임행성에도 전해졌어요. 지구에서뿐만 아니라 우주에서도 이 뉴스는 대단했어요. 아베베의 우승 소식이 곧바로 전해졌으니까요. 그때 아베베에게 전달된 선물 중에 운석 목걸이가 하나 있었어요. 지금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라임에서 나오는 보석으로 만든거에요. 감정을 받아보시면 알게 될 거에요.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성분으로 만들어졌거든요.”

 

내 마라톤 경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지. 목걸이? 그런 게 있었던 걸로 아는데 집에 가면 찾아봐야겠군. 선물 받은 건 잘 보관하고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는 이 자리에서 외계인이란 게 증명은 안 되겠는데?”

 

아베베가 웃자 리아가 말했다.

 

내 복장이 여기 옷과는 좀 다르잖아요? 디자인이나 재질 이런 거요.”

옷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옷감이야 외국에서 신제품을 수입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지.”

그럼 제가 오늘 있을 일정에 대해 말해 볼까요?”

너희가 미래에서라도 왔단 말인가? 그래 한번 들어보자.”

오늘 양궁경기가 있는 날이에요. 그리고 이 경기에서 우승하실 거예요. 이거 틀리면 제가 가짜겠죠?”

 

아베베가 통쾌하게 웃었다. 너무 큰 소리로 웃어서인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그래, 덕담이니 잘 받을게. 너희가 외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어차피 다른 사람이 오지도 않는 걸 보니 너희와의 약속이 맞는가 보다.”

 

아베베의 튼실한 팔이 휄체어 바퀴의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아베베는 기다리던 사람을 체념한 것 같았다. 마라톤 선수라는데 휄체어에 앉아있고 양궁경기에 참가한다니 의아했다. 나는 아베베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마 상당히 유명한 운동선수였던 것 같은데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인가 보다.

 

저도 운동을 좋아해요. 아베베도 운동이 적성이 잘 맞는 거죠?”

 

리아가 물었다.

 

매일 하는 운동은 자신과의 싸움이야. 경기에 참가하려고 훈련을 한 게 아니야. 경기는 과중 중의 하나일 뿐이야. 마라톤을 할 때도 그랬지. 우승하려고 달리는 게 아니었어. 내가 느끼는 고통을 덜어내려고 달린 것뿐이야. 올림픽에 나갔을 때는 맨발로 달리면서 육체적 고통을 아주 만끽했지. 한 발짝 한 발짝이 고통이고 희열이었어. 내가 말하는 고통은 단순히 발바닥이 아팠던 걸 말하는 건 아냐. 새로 시작한 양궁이나 탁구도 나에게 주어진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중의 하나인 거지.”

 

맞아요.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의 고통이 있으니까요.”

내 모습을 봐. 달리기 선수였던 내가 다리를 전혀 쓸 수 없게 되었어. 다리는 내 몸에 붙어 있지만 하나도 컨트롤 할 수가 없어. 나는 두 다리를 잃어버린 거지. 그런데 우습게도 다리를 잃고 나서야 두 팔을 되찾게 되었어. 그 덕에 팔다리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람이 된 거야. 지난 시절을 되뇌이면 무엇 하겠어. 어차피 돌이킬 수 없으니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거에 집중해야지.”

 

아베베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라톤에서 앞만 보고 달렸듯이 지금도 앞만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 느낄 수 있었던 강렬한 눈빛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상체를 간간히 움직이며 자신감 넘치는 말투의 아베베가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아베베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아베베, 우리 출발해야겠어. 경기장까지 조금 더 빨리 와 달라는 연락이 왔어. 경기 진행 시간이 앞당겨지는가 봐.”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그래?”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출발하자. 버스가 곧 올 거야.”

 

아베베는 우리에게 경기장으로 함께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리아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경기에 참가하는 몇몇 사람도 동승했고 버스는 출발했다. 리아와 나는 예상도 못한 일에 기분이 들떴다.

 

아베베가 경기장 입구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미 유명 인사인 아베베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기자들의 취재도 몇 번이나 이어졌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선수들과 경기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열리는 경기여서 그런 듯 했다. 리아와 나는 아베베의 배려로 앞 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참가 선수도 아닌데 은근히 긴장했고 가슴은 쿵쿵 뛰었다.

 

아베베에게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말해줬던 사람이 우리에게 오더니 말했다.

 

두 분 중에 활을 쏘아 본 사람이 있나요? 아베베가 물어보라고 해서요.”

제가 해 보긴 했는데 아베베가 쓰는 활은 써 보지 않았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해 봤다면 문제없어요. 제가 사용법을 알려드릴게요.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리아는 곧바로 그 사람을 따라나섰다. 리아가 활도 쏴 봤다니 놀라운 일이다. 라임에서도 활을 사용하는가 보다. 리아가 활을 잘 쏘면 좋겠다. 리아는 우주 전사니까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장 스피커를 통해 안내 방송이 나온다. 곧 예선전이 시작된다고 한다. 나는 뜻밖의 경기를 구경하며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되었다.

 

아베베와 리아는 세 번째 예선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선 경기를 보니 다섯 사람씩 시합을 하여 두 사람만 본선에 나가고 있었다. 왼쪽에는 아베베가 서 있고 리아는 중앙인 세 번째에 서 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에서는 선수들이 잘 보이는 대신 과녁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참가 선수들은 심판의 깃발이 내려가면 한 발씩 쏘았다. 리아가 활을 쏘는 자세는 여느 선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라임에서 쓰던 활과 다를 텐데 이곳 선수처럼 자세가 좋았다. 경기에 쓰이는 활은 크기가 컸다. 활대의 높이를 어림잡아도 내 키 정도는 되어 보인다.

 

드디어 열 번의 화살을 모두 쏘았다. 리아는 아베베와 함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두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동작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아베베와 리아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한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곧 리아가 나에게 달려 왔다.

 

아베베와 내가 예선을 통과했어.”

 

리아는 무척 기뻐했다. 나도 기쁘다. 아베베를 만난 덕분에 우리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리아는 32강에 들어간 것이고 한 시간 뒤에 본 경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아베베가 리아와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아마 다음 경기 전까지 연습 시간을 갖거나 어떤 작전을 짤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본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아베베와 리아가 다른 선수와 시합을 했다. 아베베와 리아는 16강에 들었고 이내 8강까지 진출했다. 두 사람 모두 정신력이 상당하다. 아베베는 휄체어에 앉아 활시위를 당겼고 리아는 이곳의 어색한 활시위를 과녁에 맞추고 있었다. 리아는 어떤 마음으로 활시위를 당길까? 어쩌면 아베베를 응원하기 위한 활시위일지도 모른다. 시련을 이겨내려는 사람에게는 단 한 사람의 응원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8강에 오른 선수들의 시합이 시작되었다. 네 명의 선수가 입장했다. 아베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리아는 다음 경기에 출전하는 지 보이지 않는다. 심판의 깃발이 내려가고 아베베의 첫 화살이 손을 떠난다. 몇 초간의 간격으로 다른 선수들의 화살도 활시위를 떠난다. 10개의 화살을 모두 쏘았고 아베베는 바로 4강에 올랐다. 이어서 리아가 참여한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리아는 침착하게 활 시위를 당겼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아베베도 크게 관심을 갖고 과녁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원팀을 이룬 것 같이 응원해 주고 있었다. 잠시 후 리아의 4강 합류가 확정되자 아베베가 리아를 포옹해 주었다. 리아는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이제 결승 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관중석에서는 큰 박수로 결승전을 남겨 둔 선수들의 입장을 환영했다. 한 사람씩 입장하면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베베가 맨 앞이었고 리아는 세 번째로 입장했다. 아베베는 휄체어를 타고 있어서 눈에 먼저 들어왔고 리아는 은빛색깔 옷을 입고 있어서 눈에 띄었다. 갑작스럽게 참가한 경기에서 4강까지 올라온 리아가 대견스러웠다. 경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4명의 선수들은 한 발의 화살을 쏠 때마다 과녁에 집중하고 있었다. 긴장감 속에 진행된 결승전에서 선수들의 마지막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자 조용하던 관중석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결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얼마 후 결과가 발표되었다. 1등은 아베베가 차지했다. 예선부터 이어진 경기마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더니 끝내 금메달을 획득했다. 리아는 4위로 결정되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손바닥에 아플 정도로 박수를 보냈다. 아베베는 기자들에게 둘러쌓였고 리아는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리아야, 너무 잘했어.”

고마워. 내 역할은 경기에 참가한 장애인 선수를 위한 특별 게스트였어. 아베베가 우릴 추천한 거였어. 아베베는 센스 있는 사람이야. 아베베 투지가 놀라워. 두 다리로 선 사람보다 힘의 균형을 갖기 어려운데도 흔들림이 없었어. 챔피언은 역시 챔피언이야.”

 

리아는 아베베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의지와 열정이 있다고 말했다. 하반신 마비에도 좌절하지 않고 이토록 놀라운 정신력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냐며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아베베의 시상식을 보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금메달을 목에 건 아베베와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촬영을 마치자 아베베가 말했다.

 

오늘 너희들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어. 너희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겐 특별한 경기였거든. 여기서는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 좀 식상했는데 너희들은 특별했다. 고마워

 

아베베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어서 우리와 계속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런 아베베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간도 아베베를 위한 시간이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아베베가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는 근처에 멋진 레스토랑이 있다며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아베베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창가의 예약 좌석으로 안내를 받았다.

 

저녁 식사는 내가 초대하는 거야. 이 금메달 값이지.”

 

아베베는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라임에서 온 거야? 우주에서 여성 둘이 왔다니 여걸들이야.”

 

아베베는 우리가 우주에서 왔다는 말을 내심 믿어 주고 있었다. 리아는 나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리고 우주 여행의 목적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아베베는 리아의 말을 경청하면서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내가 한국에서 온 사람인 걸 알고는 무척 반가워했다.

 

나는 한국에 두 번이나 갔다 왔어. 처음엔 6.25 전쟁에 참전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했을 때야. 나는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야. 전쟁 기간에 한국에서 1년을 보냈어. 한국에 가 보니 우리나라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였는데 전쟁 중에는 사람들 꼴이 말이 아니었어. 그땐 정말 치열하게 싸울 때였어. 내가 춘천에서 전투를 하다가 부모님이 포격으로 돌아가시고 집에 혼자 남아 있던 아이를 구했지. 우리 부대가 있는 곳에 적군이 집중적으로 포격을 해 왔는데 산자락에 있던 그 집도 포격을 받은 거야. 그 뒤에 아이를 몇 달이나 부대에서 데리고 있었어. 이름이 수니아였어. 내가 부대 밖 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니까 그사이에 수니아도 에티오피아 군부대가 운영하던 고아원에 보내졌더라고. 나는 작별 인사도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어. 같이 있으면서 정이 참 많이 들었던 아이야. 에티오피아로 돌아오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 내 생애에서 가장 마음 아프게 남아있는 기억이야. 동아마라톤에 참가하게 된 것도 전쟁에 참전했던 게 인연이 되어 선뜻 주최측 요청에 응했던 거야. 그때는 너무 촉박한 일정 때문에 수니아가 어디 있는지 찾아 볼 수가 없었어.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수니아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다시 한국에 갈 기회는 없었어. 네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니까 수니아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나라와 이 정도로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군인이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까지 하셨다니까요.”

벌써 20여 년이 흘렀네. 아직도 수니아의 얼굴이 또렷해. 그 당시 5살이었던 수니아에게 뽀뽀 한 번이라도 해 줄 수 있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거야.”

 

아베베는 잠시 천정을 응시했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모습이었다.

 

우리와 함께 과거로 가 보실래요? 아주 짧은 시간이겠지만 아베베의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드릴 수 있어요.”

정말이야? 내가 수니아를 보고 올 수 있단 말이지?”

 

리아의 말에 아베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만나는 과거의 사람과 또 다시 과거를 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리아의 행성, 라임의 과학적 능력은 상상 이상이 분명했다. 리아가 선뜻 아베베에게 제안한 것이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아베베는 2년 안에 돌아가셔. 우리의 영웅이 이 세상을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픔이나 후회 같은 것은 죽기 전에 털어내는 게 좋아. 그게 어떤 것이든 상관 없어.”

 

리아는 아베베의 마음에 남겨진 아픔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베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의 마음에 남겨진 앙금은 사라질 것이고 수니아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수니아는 비록 전쟁고아가 된 아이지만 먼 타국에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베베가 가방에서 금메달을 꺼냈다.

 

나는 이미 금메달을 딴 사람이야. 수니아는 아직 어린 아이고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어떤 상징이 되는 선물을 하고 싶어. 앞으로 그 아이는 세상에서 한참 달려야 할 만큼 어리거든.”

 

아베베는 수니아에게 메달을 주겠다고 한다. 아베베는 메달을 만지면서 수니아를 보고 있는 사람처럼 흐뭇한 표정이었다. 아베베의 메달은 고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구에게는 희망의 메달이 될 것이다.

 

 

[수에나]

한국, 미국, 독일 20여 회 개인전

60여 회 그룹 전시 활동

미네소타 뉴욕 밀스 아트 리트릿 레지던시 활동

자하 갤러리 공모 전시 심사위원 역임

수에나 www.suena.creatorlink.net

 

작성 2022.04.07 11:48 수정 2022.04.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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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