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일기를 쓴다는 것

하진형



일기(日記)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기는 개인이 겪은 일상과 느낌을 적고 그것을 수양으로 승화시키는 매일매일의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35년 넘게 일기를 써 오면서 가끔 지나온 기록들을 뒤적여 보기도 한다. 희한한 것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긴 것과 달리 직접 펜으로 쓴 일기는 고성능 기억회로를 작동시킨다. 먼 옛날(?)의 것도 훤하게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기억이란 추억으로 간직하고픈 것도 있지만 잊고 싶은 것도 있는데 이럴 땐 일기 쓰는 것을 권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사람에 따라 느낌의 정도가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겠지, 안 쓰면 뭔가 찜찜하니까, 그래서 쓰고 나면 개운하니까 이어가는 것이다. 가끔씩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살피게 하는 일기는 나를 편안하게 한다.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죽음과 함께 전란이 끝나는 전날까지 일기(난중일기)를 썼고, 그 기록은 역사 대대로 중요한 가치를 발현하고 있다. 만약 그 일기가 없었더라면 전란의 상세함과 당시 어려움을 겪은 백성의 참상을 짐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많은 선조들이 쓴 기록과 합쳐져서 그 시대상을 알 수 있게 한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난중일기를 읽다보면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 특히 백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은 정유년 이후의 상황에서 오로지 사직(社稷)과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死生有命 死當死矣, 삶과 죽음은 하늘에 달렸으므로 죽으면 죽는 것이다)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라와 백성을 구한 것을 세세히 알 수 있다.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전장의 한가운데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장수로서의 고뇌와 어려움을 일기를 쓰면서 이겨낸 것을 알 수 있다. , 일기를 씀으로써 스스로를 문학적으로 치유시키고 힘겨운 자아를 갱신함으로써 긴장하고 두려움에 떠는 군사들을 이끌면서 스스로를 버텨나가게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일기와 수없이 대화하며 자신을 다독여 나간 것이다.

 

특히나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장계(壬辰狀草)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수졸(水卒)들과 천민, 백성들까지 기록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는 그들을 우리들에게 나타나게 한다. 지도자(리더)의 기록이 더욱 중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하층민들이 재산가치로 평가되던 그 시기에 이른바 사람의 가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전쟁터의 장수로서 전략전술을 잘 펼쳐 전쟁을 이기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곧 군사들과 피난 백성들이 그토록 믿고 따른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기를 쓴다. 조용한 시간에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지나간 가슴속의 피를 한 방울 한 방울 짜내어 백지위에 새기는 것이다. 일기는 그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고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귀한 정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일기는 쓰는 이의 가슴이고 피다. 나의 피고 이웃의 목마름에 대한 응답, 즉 의식을 깨우는 정화수 한 그릇이다.

 

얼마 전 동네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는데 아흔 두해를 사신 아버지께서 의식을 놓으시기 직전까지 일기를 쓰셨다고 했다. 나오면서 한 번 더 뵈었더니 영정 안에서 살아 계신 듯 했다. 어릴 적 기억에 말씀이 적으시고 조용히 웃으시던 그 모습 그대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 어른께서 그렇게 편안하게 소천하신 원동력이 매일매일 쓰신 일기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누구든지 아픔이 클 때는 일기가 길어진다. 몇 년간 일기가 길었다. 그래도 분명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일기장을 꺼내면서 특별한 일도 없는데 쓰지 말까?’ 하다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시간, 그 사연만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만년필의 모자를 벗긴다. 곧이어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며 만년필촉이 써레질을 시작한다. 밤도 일기를 쓰는지 조용함이 깊어진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4.08 10:13 수정 2022.04.0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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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