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리아의 시간여행

7. 나의 5살

수에나

7. 나의 5

 

1살 무렵의 나는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었다. 놀이터 벤치에서 할머니와 헤어지고 난 후 잊기로 한 과거지만, 불현듯 생각이 나곤 했다. 사실, 어린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리아에게 말하자, 내가 또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로 가보자고 했다. 나는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 시점을 알고 싶었다. 어린 나를 돌봐주던 할머니는 어땠는지, 어떻게 이별하게 되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어차피 고아원 이후의 삶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리아의 비행선에서 내리고 보니 전에 할머니를 만났던 곳이 아니다. 허름한 주택가인데 낡고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좋지 않다. 내 앞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이 열려 있었다. 리아가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문을 두드릴까 하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오?”

 

우리는 동시에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고 옥상에서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의 할머니가 맞았다.

 

몇 해 전에 만났던 학생들이에요. 그때 할머니랑 주연이를 만났었어요. 기억나세요?”

 

할머니는 생각을 더듬는 것 같았다.

 

저희들 기억 안 나세요? 놀이터에서 뵈었거든요.”

 

내가 다시 한번 물어보았으나 우리를 빤히 쳐다볼 뿐 말씀이 없으시다. 우리가 멍하니 서 있는데 사람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나와 계시네요?”

 

두 사람은 할머니를 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라고 하니 어떤 사이냐고 물어왔다. 몇 해 전에 뵈었던 분이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셔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요. 오늘이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로 한 날이라 우리가 모시러 온 거에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앞섰다.

 

같이 올라가 볼래요?”

 

나와 리아는 요양병원 직원의 뒤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할머니가 머무는 집은 옥탑방이었다.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박스가 몇 개 쌓여 있었다. 짐이 정리되어 있어서인지 방안은 깔끔해 보였다.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주연이는 어디 있어요?”

 

내 물음에 할머니가 대답했다.

 

주연이라구? 주연이가 왔어? 어디 있어? 얘를 봐야겠는데 어디로 가면 되지?”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버렸고 아이는 어디로 간 거야. 그럼 나는 버려진 건가?

 

할머니에게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혹시 사정을 아세요?”

 

리아가 요양병원 직원에게 물었다.

 

, 아이가 있었던 걸 알아요. 할머니가 정신이 많이 희미해지셨을 때 저희 병원에 직접 찾아왔었고 그때 얘기해 주었어요. 할머니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서 행여 앞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몰라보게 되더라도 대신 기억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아이를 고아원에 맡겼다면서 가끔 찾아가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그 후에 찾아가 보셨나요?”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직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찾아가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어느 고아원인지는 아세요?”

 

아니요. 전화번호랑 이름만 알고 어딘지는 몰라요. 우리도 바빠서 미처 신경 쓸 수는 없었거든요. 더구나 할머니 정신이 맑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우리 시선이 아주머니에게 쏠렸다.

 

벌써 와 계시네요. 내 잠깐 어디를 다녀오느라 늦었어요.”

 

아주머니는 요양병원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이 여기 오는 마지막 날이네요. 그간 매주 이렇게 와서 할머니 돌보느라 고생했어요. 오늘 모시고 가더라도 잘 좀 돌봐 주세요. 처지가 너무 안된 분이에요. 아시다시피 할머니가 어린 애 하나 데리고 살다가 이리 된 게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진지해서 진심으로 할머니를 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정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표정이다. 다만,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괴로움으로 속상해 하는 것 같았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잘 보살펴 드릴게요.”

 

직원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우리에게 물었다.

 

직원 분들 하고 같이 왔나 보죠?”

 

아니에요. 저희도 할머니를 뵈러 왔다가 여기서 만난 거에요.”

 

, 그래요? 할머니를 찾아 올 만한 사람이 없는데?”

 

아주머니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리아가 놀이터 얘기를 꺼내며 할머니와의 약속을 얘기했다.

 

그래요? 몇 년 전 약속을 지키려고 찾아 온 거로구나. 여기 찾기는 어렵지 않았을 거야. 이 근방서 할머니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할머니가 동네서 유명하신가요?”

 

나는 할머니에 대한 거라면 무엇이라도 듣고 싶었다.

 

할머니는 동네서 알아주는 분이지. 원래는 이 동네 사람도 아닌데, 워낙 품격이 있으셨다고 해야 할까? 잘 사는 분이셨는데도 가난한 우리 동네에 좋은 일을 오랫동안 해 오셨어. 독거노인을 위해서 돈을 꼬박꼬박 보내주니 다들 고마워 했지. 쌀도 자주 보내주셨어. 내가 할머니를 만난 건 5~6년 됐어. 그 즈음에 딸, 사위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도 잘 이겨내셨어. 우리 같으면 할머니처럼 못 살아. 세상이 할머니한테 참 모질었어. 나도 하늘이 원망스럽더라고.”

 

그랬던 분이 어쩌다 여기서 사시게 된 건데요?”

 

내가 물었다.

 

작년이지. 할머니 얼굴색이 평소보다 밝고 아주 좋으시더라고. 그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사돈 댁에서 친척이 찾아왔대. 손녀 딸 작은 아버지뻘 되는 사람인데 전엔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대. 그 분도 겨우 소식을 알게 되었다면서 이렇게 어린 아이가 홀로 남겨진 것을 외면할 수 없다며 자기는 아이들도 있으니 데려가 잘 키우겠노라고 했다는 거야. 할머니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장담을 못하잖아. 자기가 죽고 나면 아이가 혼자 될 게 뻔하니까 남도 아니고 가까운 사촌과 산다면 제일 좋겠다 싶었대. 손녀딸에게 가족이 생기는 거니까 좋은 건 맞는 말이지. 손녀 딸과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거잖아. 할머니는 그 때서야 아이의 장래에 대해 한시름 놓으신 거지. 그래서 그리도 좋아 보였던 거야. 나는 그저 좋은 일만 생겨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 뭔 일인가 했더니 글쎄 할머니가 순간적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더라고. 경찰이 핸드폰에서 자주 통화 했던 기록을 보고는 나한테 전화를 걸었던 거지. 좀 지나니까 기억이 돌아와서 대행이다 싶었는데 그 이후로 치매 증세가 심각해 지기 시작했어. 정신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으셨던 거야. 어쩌면 그 전에 벌써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는지도 모르지. 할머니에게 접근해 온 놈은 친척이 아니었어. 어디서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할머니 혼을 쏙 빼 놓고는 할머니가 가진 걸 몽땅 빼앗아 버린 거야. 할머니가 참 똑똑하신 분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런 놈한테 속아 넘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올곧고 바르고 착하신 분이었는데 아이만 생각하다가 그리 되신 거지.”

 

아주머니는 할머니와 우리를 번갈아 보면서 한 숨을 지었다.

 

그 사기꾼은 잡지 못했어요?”

 

내가 아주머니에게 묻자 혀를 끌끌 차셨다.

 

잡았으면 이리되지도 않았을 거야. 몇 달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지나갔는데 경찰서에서 이렇다 할 소식을 받지 못하셨어. 그러던 중에 할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가 한 번 왔었어. 아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정신이 나갔을 때 아이를 어떻게 한 것 같다며 정신 나가기 전에 빨리 와 달라고 해서 갔었지. 집에 가 보니 집 안이 엉망이었어. 멀쩡한 게 없었어. 그 와중에 왠 도둑놈이 집안을 뒤져서 다 털어간 거야. 정말 날벼락이 따로 없었어. 게다가 아이는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할머니는 울지, 집안은 난리 났지, 아이는 보이지도 않지, 나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어. 우선은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 할머니와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를 찾았어. 마침 동장님을 만나서 동네 사람들이랑 여럿이 찾아 나섰지. 거의 두 세시간만에 경찰이 병원 건물 계단에서 아이를 찾아냈어. 아이는 할머니를 기다리느라 꼼작 않고 있었던 거야. 아이가 참 대견했어. 울지도 않고 한 자리서 그때까지 기다리다니 말이야. 할머니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아이를 집에 두고 병원에 왔다고 착각하고서는 혼자 황급히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거야. 내가 그날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시게 했어. 도저히 그 집에서는 잘 수가 없었거든. 알고 보니 이미 집도 팔린 상태라 더 이상 살 집도 없는 형편이었거든. 할머니가 그 무렵에 아이를 입양 보내려고 고아원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어디든 괜찮은 집으로 보내는 게 제일 낫겠다 싶었던 거 같아.”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아주머니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나마 할머니의 상황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동네는 다들 고령자뿐이라 애를 대신 키워줄 만한 사람이 없어. 그러니 할머니에게 도움이 될만한 게 없었지. 할머니가 온전할 때는 더 안쓰러웠어. 스스로 느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니까 어떤 땐 차라리 아무것도 모를 때가 낫다 싶기도 했거든. 석 달쯤 되었을 거야. 할머니가 애를 고아원에 맡겼던 게. 할머니는 본인 스스로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셨어. 혈육 하나 남은 걸 남 손에 맡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 그래서인지 거길 혼자 다녀 오셨지. 와서는 내게 명함을 한 장 주었어. 애가 있는 곳이라며 혹시 입양이 되거든 알려 달라고 하셨어. 다시 거길 찾아가면 아이와 떨어지지 못할 것 같다면서. 그 후에 요양병원도 스스로 정하시고 이 분들하고 입원하는 것도 다 결정하셨던 거야. 맞지요?”

 

네 맞아요. 병원에 오셨을 때도 정신이 아주 맑진 못해도 말씀은 분명하게 하셨어요. 아주머니 말씀 듣고 보니 더 각별하게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 있는 곳에 안 가본 것도 할머니에게 죄송하고요. 오늘 입원하시고 나서 아이한테 꼭 가봐야겠어요.”

 

내가 할머니 짐은 다 정리해 놨어요. 저 박스만 챙기면 돼요.”

 

나는 박스를 둘러 보면서 아주머니에게 여쭤 보았다.

 

, 아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려주셨으면 해요. 저희도 아이를 보고 싶거든요.”

 

지금 홀로 있을 아이, 내가 5살 때인 주연이는 얼마나 외로울까? 아이는 나 자신이지만 또 다른 주연이기도 하다. 문득 할머니가 나를 유심히 보고 있음을 느꼈다. 나와 할머니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가 소리쳤다.

 

주연이 맞지? 주연이지?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야. 주연이야 주연이. 봐요. 주연이에요. 어디 있다가 이렇게 커서 나타났니? 아이고 내 새끼야.”

 

할머니는 나를 와락 끌어안고 우셨다. 두 손은 내 온몸을 쓰다듬으셨다. 나도 할머니를 끌어 안았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더듬으며 연신 내 새끼라고 하며 우셨다. 나도 울음이 터졌다.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 맞아요. 저 주연이에요. 할머니 죄송해요. 저 때문에 너무 고생하셨어요. 죄송해요. 할머니. 할머니.”

 

아니다. 아니다. 주연아 너는 아무 잘못 없다. 모두 어른들 탓이야. 너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어. 내 새끼 어디 아픈 데는 없지?”

 

나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비볐다. 나에게 오직 한 분, 나를 지켜주고 아껴주신 단 한 분. 나의 할머니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았다는 게 너무 기쁘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이 순간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내가 할머니와 흐느낄 때 리아도 옆에서 울고 있었다. 이 시간이,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리아는 어리둥절해하는 아주머니와 병원 직원들에게 말했다.

 

설명드리지는 않을게요. 할 수도 없고 해도 달라질 게 없어서요. 그냥 저희끼리의 기쁨이라고만 이해해 주세요.”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이 없는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와 내가 진정이 되고 나자 할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주연아, 내가 너를 또 알아볼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할머니는 너 하나 잘 되면 뭐가 잘 못 돼도 상관 없다. 꼭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잘 커 줘서 너무 고맙구나.”

 

할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다 큰 주연이를 만나셨다. 지금의 현실에서 아직 주연이는 5살이고 고아원에 있지만, 할머니는 미래의 주연이를 만나신 거다. 나 역시 과거의 할머니를 만나.

 

우리는 짐을 챙겨 마당으로 내려왔다. 리아와 나는 아이에게 가기로 하고 할머니는 차에 오르셨다. 병원 엠블런스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동안 차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주연이가 있는 고아원의 명함을 가지고 나오셨다.

 

여기야. 내가 두 번 갔었는데 날 알아보고는 할머니 어디 있냐고 하더라고. 원장에게 물어보니 애가 울지도 않고 잠도 잘 안 잔대. 아직도 혼자 있는 게 힘든 거야. 남 자식이지만 그런 데에 맡겨진 아이를 보니 내 자식 찢어 놓은 거나 매한가지였어. 돌아오는 발걸음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야. 할머니도 그렇고 애도 그렇고 너무 가슴 아파.”

 

명함을 받고 보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가 15살 때까지 살았던 바로 그 고아원이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그곳이다. 그런데 그곳에 다시 가야만 한다. 두 발이 바닥에 얼어붙었다. 리아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말했다.

 

네가 있었던 곳이야?”

.”

 

아주머니가 우리 말을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여기를 알아요? 여기서 살았어요?”

 

리아가 그렇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뭔가 혼란스러운 듯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리아는 양쪽 어깨에 있던 견장에서 계급을 상징하는 것을 떼어 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아주머니, 제가 부탁을 드릴게요. 이것으로 전에 할머니가 해 오시던 일을 계속해 주세요. 마을 분들을 위해서요. 저희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해서 아이를 이번 밖에 볼수 없어요. 그러니 아이에게 자주 찾아가 주시고 입양이나 다른 일이 있으면 힘이 되어 주세요. 그리고 할머니에게 필요한 병원 경비도 대신 처리해 주세요. 한 번에 많은 걸 부탁드리게 되네요.”

 

아니, 이게 뭔데요?”

 

좀 특별한거에요. 할머니가 아주머니에게 대신 부탁드리는 거라 생각해 주시고 꼭 해주셨으면 해요. 부족하지는 않을 거니까 아주머니에게도 도움이 될 거고요.”

 

아주머니는 리아가 준 것을 살펴본다. 나도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리아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리아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부탁하면서 미리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영성 보육원. 영성 고아원너무나 익숙한 대문이고 간판이다. 나는 리아에게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저 안에 어린 시절의 내가 있는데 심장이 두근거려 곧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았던가? 나는 잘 웃지 않았다. 즐거운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즐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친절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는 몰두했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남의 물건을 만지면 안 되는 것처럼 경계하곤 했었다. 어른 눈에는 반항아였고 고집쟁이였다. 나는 이곳에 맡겨지는 순간부터 사람과 가까이하는 것을 꺼렸던 것 같다. 그것은 할머니를 기다리던 불안한 심리와 외로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막연히 엄마, 아빠에 대한 사랑을 그리워했던 나의 슬픈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 자신을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이곳을 떠날 때 보다 문짝이 깨끗하다. 복도도 그렇고 벽도 깨끗하다. 원장실에서 덜컥 문이 열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니었다. 혹시나 그 원장일까 해서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리아가 원장과 면담을 진행했고 나는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 분은 꽤나 친절해 보였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 보였다. 원장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원장이 있었을 때도 나는 마음을 닫고 있었나 보다.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한 살 무렵에 보았던 아이와 얼굴이 많이 달랐다. 주연이는 귀엽고 예쁘게 자라 있었다.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주연아, 안녕.”

 

리아의 말에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원장은 아이와 밖으로 나가도 좋다는 눈짓을 보냈다. 나와 리아는 어린 주연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주연아, 괜찮아. 언니는 주연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온 거야. 네가 어렸을 때도 만났었어.”

 

리아의 말에 어린 주연이가 대답했다.

 

왜 할머니는 안 오고 다른 사람들만 와? 나는 할머니 기다리고 있어.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

 

내 가슴이 울컥하고 막히는 것 같다. 심장이 오그라들 듯 답답하고 말문이 닫혔다. 리아는 할머니가 아프셔서 못 오는 대신 주연이를 아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럼, 나를 할머니 집으로 데려다줘. 내가 할머니 보살필 거야. 약도 주고 낫게 할거야.”

 

어린 주연이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리아가 주연이를 안으려고 하자 살짝 밀어낸다. 리아 조차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는 어리고 놀아주기에도 어색한 분위기다. 나 자신의 어린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이는 커 가면서도 외로움을 탈 것이고 그 이유로 너무 조숙해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 또래 아이가 갖지 못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갖게 될 것이다. 위로의 말이 무의미한 어린 주연이에게는 그저 할머니, 가족이 필요할 뿐이다. 내가 이곳에서 계속 살아 온 걸 보면 입양의 기회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있었는데도 내가 거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리아는 주연이에게 자연을 얘기해 주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라는데 자기가 자라고 싶은 만큼 자라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나무는 신나게 자랄 수 있단다. 풀은 작지만 추운 겨울을 땅속에서 보내고 봄이 되면 예쁜 꽃을 피우는 재주가 있단다. 돌은 딱딱하고 시시해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색깔들로 이루어져 있단다. 돌을 하나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구슬처럼 반짝거리게 된단다. 흙 속에는 온갖 보물들이 숨어 있어서 신비로운 것이란다. 푸른 하늘은 구름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단다. 주연이는 리아의 말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듣고 있었다. 주연이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연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주연이에게 몇 마디라도 해 주고 싶었다.

 

주연아, 너의 가슴 속에 할머니가 계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네 가슴 속에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야. 보이지 않아도 할머니는 언제나 주연이가 잘 지내길 바라고 계셔. 주연이 마음이 좋지 않은 거 알아. 여기서 사는 게 싫은 것도 알아. 나도 그랬거든. 마음이 좋지 않을 때는 언니가 말해 준 나무, , 풀 이런 거랑 친구하면서 지내도 돼. 너무 기다리기만 하면 힘들어.”

 

나는 주연이 손을 꼭 잡았다. 손은 따뜻했다. 가만히 안아 주자 밀어내지는 않았다. 주연이의 여린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수에나]

한국, 미국, 독일 20여 회 개인전

60여 회 그룹 전시 활동

미네소타 뉴욕 밀스 아트 리트릿 레지던시 활동

자하 갤러리 공모 전시 심사위원 역임

수에나 www.suena.creatorlink.net

 

 


작성 2022.04.14 11:12 수정 2022.04.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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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