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 부조리한 것을 마구 물어뜯고 싶어”라고 말할 때, 나는 내 글을 다독인다. 사나운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주저앉히며, 머리를 쓰다듬고 다독인다. 글의 야성(野性) 때문이다. 야성이 살아있는 글. 글은 부딪혀 깨뜨리고 싶어 한다. 위선과 허구의 가면을 벗겨내고 싶어 한다.
글에는 야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글이 될 것이다. 체제에 아부하고, 권세에 길든, 순응하며 찬양하는 글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햇빛을 받아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듯하지만, 바람 부는 날 마침내 꽃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볼품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야성이 있는 글은 울고 싶어 한다. 소리치고 싶어 한다. “소리는 몸 밖으로 울려 퍼지지 않았다. 소리는 몸속에서만 울렸다. 짖어지지 않는 소리가 몸속에 가득 차서 부글부글 끓었다. 몸은 터지지 않는 화산과도 같았다. 나는 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김훈의 소설 <개>의 한 장면이다. 화자는 개의 눈을 통해 인간 세상을 바라보며 부조리를 기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따뜻한 세계를 보듬는다.
주인공인 개 ‘보리’가 품고 싶어 하는 이상향은 ‘흰순이’다. 보리가 좋아하는 개 ‘흰순이’는, 말 그대로의 흰 눈 같은 개다. 보리는 작은 마을에서 시행하는 광견병 접종을 위해 주인을 따라 보건소 마당에 들어선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에 한번 느꼈던 비리고 역겨운 오줌 냄새를 맡는다. 징그럽도록 지린 냄새를 풍기는 개, 그 개의 이름은 ‘악돌이’다. 아이들 무리에 악동이 있다면, 그 개들의 세계엔 악돌이가 있다. 화자의 말처럼 그놈은 “덩치가 크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입안이 시뻘겋고 뒷다리가 늘씬한 놈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 꼭 등장하는 악당에 비견되는 개다.
화자(김훈)는 개의 세계로 내려가 ‘보리’의 눈으로 세상을 자세히 관찰한다. 그놈은 “사람을 향해 짖을 때는 석유배달부나 공사장 인부, 머리에 짐을 인 할머니, 손수레를 끌고 가는 노점상처럼 옷차림이 허름하거나 힘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짖어댔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내들이나 말쑥하게 차려입고 핸드백을 든 여자들, 정복을 입은 순경이나 군인이 지나갈 때 그놈은 짖지 않았다. 흰 가운을 입고 넥타이를 맨 수의사가 다가오자 그놈은 짖기를 멈추고 납작 엎드려서 꼬리를 흔들어가며 주사를 맞았다. 한심한 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 들판에 푸릇푸릇 잔디가 솟구친다. 발걸음이 자꾸 밖으로 향한다. 옷을 주워 입고 문을 나서기로 한다. 발걸음보다 앞서서 생각은 나를 끌고 내달린다. 잠들지 않는 야성, 길들지 않은 야성이 목줄을 잡은 내 손에서 자꾸 빠져나가려 한다. 빨간 목줄을 매고 산책을 나온 강아지가 지나고, 녀석은 레깅스를 입은 잘 다져진 건강한 몸매의 여성을 열심히 끌고 간다. 개가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인지, 사람이 개를 끌고 가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열정적인 사람과 동물 아닌가. “그렇다, 남자건 여자건 열정이 있어야 매력 있는 것이고, 육체건 정신이건 신성(神性, 살아있음)이 있어야 제대로 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다가오는 주말, 그리고 며칠 뒤의 일요일. 하버드(영문학)와 뉴욕대(법학)를 졸업하고 변호사를 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의 시가 떠오른다. 그는 시인과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을 철저히 분리해서, 그가 활동했던 보험회사 관계자들은 그가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시어가 다양하고 풍부한 그의 시세계는 예리한 눈으로 인간 심리를 관찰하고, <일요일 아침>에서는 한 여인의 내면을 진솔하고 섬세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는 법.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인간은 욕망하고 꿈꾸는 존재일 수밖에 없을 테니.
Sunday Morning
Divinity must live within herself:
Passions of rain, or moods in falling snow;
Grievings in loneliness, or unsubdued
Elations when the forest blooms; gusty
Emotions on wet roads on autumn nights;
All pleasures and all pains, remembering
The bough of summer and the winter branch.
These are the measures destined for her soul.
일요일 아침
신성은 그녀 속에 살아있는 것 같았다
눈 내리는 정취, 쏟아지는 빗줄기와
고독한 슬픔과 그윽한 숲에서의 억누를 수 없는 환희(歡喜)
가을 축축한 밤길 위에서 느끼는 격렬한 감정,
여름 무성한 가지와 겨울 앙상한 가지를 떠올리며 느끼는
그 모든 즐거움과 아픔들
이러한 것들이 그녀의 영혼을 반영하고 있었다.
길들지 않는, 야성이 살아있는 글을 끌고 나와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내달리려는 녀석을 가까스로 잡고 있다. 고요한 일요일 아침엔, 신께 야성이 잠들지 않는 내 글을 다스려주시길 기도해볼까 한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신연강 imilt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