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 거지

고석근

 

존재와 접속하라, 그리고 창조하라.

- 질 들뢰즈

 

지하철역에 가끔 거지가 출몰한단다. 배를 바닥에 끌고 기어가면서 구걸을 한다고 한다. ‘두 다리가 멀쩡한 것 같은데?’하고 한참 쳐다봤더니, 어느 순간 후다닥 일어나 다른 곳으로 휙 사라지더란다.

 

그 남자는 왜 그렇게 살까요? 멀쩡한 사람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그런 삶도 하나의 삶의 양식이 아닌가? 우리의 상식만 잠시 억누르고 보면.

 

우리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가 이 시대의 정신이다. 모든 시대의 정신은 한 시대의 산물이다. ‘일하는 인간이 출현한 것은 산업사회다. 농경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농사는 하늘이 8할을 지어주니까.

 

하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일하는 만큼 생산량이 늘어난다. 산업사회의 지배세력은 자본가다. 힘을 가진 자본가들은 철에 맞춰 살던 중세의 인간을 사철 일하는 근대의 인간으로 만들어냈다.

 

모든 어린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켜 시간 지키는 법부터 가르쳤다. 시계에 맞춰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 우리는 일하는 인간은 정상으로 보이고 일하지 않는 인간은 비정상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눈에 지하철에 출몰한 거지는 기괴하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시대 사람이 이 시대에 와서 그 거지를 보면 그냥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거지들이 참으로 많았다. 수시로 마당에 출몰했다. 그러면 엄마는 밥 한 덩이를 거지가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 바가지에 넣어주었다.

 

내 눈에 그들이 처음에는 낯설게 보였지만, 자주 보다 보니 익숙해졌다.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나는 3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자유인으로 살았다. 여러 일을 해보며,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거미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만 내게 주어진 자리를 일탈하면 거미줄에 걸려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거미줄 사이의 아슬아슬한 인생. 그래서 나의 방황은 길어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나는 문학을 공부하고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거미줄 바깥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이 세상에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듯했다.

 

인도에서는 50대 중반까지는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숲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숲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숲을 떠나 거지로 살아간다고 한다. 얼마나 멋있는가! 마지막 삶을 거지로 마감하다니! 완전한 무소유가 아닌가? 그는 석양에 지는 해처럼 찬란하게 광휘를 뿜으며 사라질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며 강의를 하며 나의 삶을 짜고 있다. 나는 늘 나의 존재를 만나고, 나 자신을 창조하려 한다. 이 시대의 철인 푸코는 도덕에 맞서는 영웅이 되라고 했다. 도덕, 상식은 한 시대의 촘촘한 거미줄이다.

 

원시공동체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소수민족들의 마을에 가면 거지가 없다고 한다. 문명사회에는 왜 거지가 있을까? 거지가 되어서라도 한 시대를 버티려는 거지의 마음, 우리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내 이마에 자란 한 그루 나무,

내 안으로 자랐다.

뿌리는 혈관,

신경은 가지,

어수선한 나뭇잎은 사유.

 

......

 

동이 튼다

몸뚱아리의 밤으로부터.

먼 저 속에서, 나의 이마에서,

나무가 말한다.

가까이 오너라, 들리느냐?

 

- 옥타비오 파스, <내 안의 나무> 부분

 

석가는 나무 아래서 도를 깨쳤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성자들은 다 나무 한 그루가 되었다. 원시인들은 마을 앞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잇는 우주목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나무 한 그루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거지가 되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4.21 11:27 수정 2022.04.2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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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