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진주가 있고, 하늘에는 별이 있다. 그러나 내 마음, 내 마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
- H.W. 롱팰로
공원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한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들이 개들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만일 어느 별에서 우주인이 이 공원에 도착한다면 이 광경이 어떻게 보일까? 두 종의 생명체, 어떤 관계로 보일까? 반려(伴侶)의 관계로 보일까? 애완(愛玩)의 관계로 보일까? 주종(主從)의 관계로 보일까?
국어사전에 보면, 반려는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 애완은 ‘동식물이나 공예품 따위를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보며 귀여워함’, 주종은 ‘주된 것과 그에 딸린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살면서 개를 많이 보았다. 그야말로 ‘반려견’이었다. 개와 사람이 하나의 가족으로 지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도시에서 보는 개와 사람은 낯설다. 개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개 두 마리를 기르는 어느 젊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서로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각자 개와 놀면서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부는 왜 개를 더 사랑하는 걸까? 아님 개가 더 편한 걸까? 그 부부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걸까?
고대의 성인 공자가 한 말 중에 친친이친(親親而親)이라는 말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욱 잘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으니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면서 사랑의 범주를 넓혀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인간이 가까운 인간조차 사랑하지 못한다면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 그 부부에게는 배우자와 개, 누가 더 가까운 걸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개는 자신을 길러주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 바치지만 사람은 어디 그런가?
예전에는 사람들이 공동체 마을을 이루며 함께 살았기에,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게 몸에 배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다. 각자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살아간다.
모든 인간관계는 교환관계다. 준만큼 주고, 받은 만큼 받는 관계. 그런데 그런 관계는 늘 아슬아슬하다. 주고서 받지 못할 수가 있다. 현대의 인간관계는 삭막할 수밖에 없다. 쉽게 서로 정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사랑하는 젊은 남녀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엔분의 일(1/N)’이라고 한다.
모든 관계가 교환관계로 되는 세상에서는, ‘사랑의 대상’으로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사랑을 준만큼 개는 반드시 갚으니까. ‘머리 검은 짐승(인간)’은 얼마나 배은망덕한가?
하지만 사람은 사람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 진정한 사랑을 알 수가 없고 진정한 행복도 알 수가 없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비록 배신을 당하더라도 배신의 아픔이 너무나 크더라도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야 가슴에서 사랑의 꽃이 피어난다.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짐승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거울 뉴런이 생겨났다. 공감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능력, 이 능력을 깨워야 진정한 사람이 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교환관계가 되어버린 사막 같은 이 시대에서, 우리는 힘겹게 사랑을 배워가야 한다. 사랑의 불꽃을 깨워야, 개는 애완견이 되고 반려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대로 사랑은 널리널리 퍼져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개들이 버려진다고 한다. 그 개들은 더 이상 사람에게 사랑의 교환관계의 능력이 없어 버림을 받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교환가치가 없으면 재활용할 수도 없는 쓰레기가 되는 세상이다.
자전거를 타고 간신히 공원을 빠져나온다. 라일락 향기가 확 풍겨온다. 잔인한 4월이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부분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온 인류를 온 생명체를 온 우주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