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기운에 남도 자락 강진 땅은 지금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낮에 들린 읍내 영랑 생가에는 모란이 지고 다산의 사의재 가는 동문 길은 수국이 꽃을 피우고 있다.
사의재 객사에 짐을 풀고 온돌방에 잠시 누우니 멀리서 달려온 탓인지 고단했던 몸이 이내 반응한다. 요요(擾擾)한 달빛이 사의재 객사의 창을 넘어 나그네 얼굴 위에 내려앉는다. 잠에서 깨어나 객창(客窓)을 통해 달빛을 바라보니 여심(旅心)의 외로움이 갑자기 스며든다. 동행한 벗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객사에서 빠져나와 마당으로 내려선다. 인기척이 사라진 홀가분한 달밤, 한옥마을에 널려 있는 달빛 자락은 호젓함을 더한다. 대문을 조심스레 열고 부서 내린 달빛을 밟아 가며 마을 저잣거리로 나선다. 은백색 달빛 아래를 걷는 내 마음은 짙푸르게 흘리는 월색(月色)에 점점 절어만 간다.
정조의 신임을 듬뿍 받으며 개혁을 추진하던 조선 최고의 사상가 다산은 정조가 승하하자 한순간에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자신은 이곳 강진으로 귀양 오게 되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다.
사의재(四宜齋)는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1801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와서 처음 묵었던 주막이다. 이곳은 다산이 18년 유배 생활 중 처음 4년 동안 유했던 곳이라 가장 힘들게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주막집 모녀의 도움을 받아가며 4년간 여기에 머물면서 학문에 매진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는데, ‘용모는 단정하게, 말은 무겁게, 생각은 맑게, 행동은 신중하게 하라’는 가르침(四宜)을 실천한다.
개구리들도 지쳤는지 우는 소리가 잦아드니 이제 달 숨소리까지 들려오는 듯 달은 가까이에 있다. 오늘같이 호젓한 달밤에 다산은 봉창을 열고 나라 걱정, 가족 걱정으로 밤새 잠 못 이루었으리라.
객사로 돌아와 대청마루에 앉아 돌담 위에 부서 내린 월광을 바라본다. 저 선연(鮮姸)한 빛깔은 달빛을 완상(玩賞)하는 나그네의 객수(客愁)를 보채고 있다.
오랜만에 달빛 서정으로 가슴을 가득 채운 낭만 나그네는 쉽게 잠 못 이룬다.
여계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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