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자의식

고석근

 

()로서의 인간은 동물보다도 진보하지 않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과 친구와 자취를 했다. 소소한 갈등이 몇 번 있었다. 어느 날 뒷산으로 올라가 얘기를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분명히 내가 옳았던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그가 결연히 말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성현들은 우매한 중생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라! 그런데 왜 세상은 이런 가르침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인간은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동물과 다른 종이 되어갔다. 자신에 대한 의식이 있다는 건, 생명체에게 얼마나 혁명적인가! 자의식이 희미한 원시인들은 자신의 나이도 잘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항상 나이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나는 지금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 있나?’

 

늘 스스로를 검열한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보험 몇 개를 들어야지.’ 그런데 그런 나이에 걸 맞는 삶을 누가 정해주나? 결국 우리는 한 시대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타고난 본능을 따르는 동물과 한 시대의 명령을 따르는 인간, 누가 더 뛰어난 존재인가?

 

니체의 말대로 ()로서의 인간은 동물보다도 진보하지 않았다가 맞지 않는가? 동물은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본능의 명령으로 살아가기에 크게 잘못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한 시대의 명령을 따른다. 희대의 괴물 히틀러가 명령해도 따르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니체는 인류를 믿지 않는다. 보편적인 인류를 벗어난 초인을 믿는다. 자신의 힘에의 의지를 믿는 인간. 오로지 명령권자가 자신 안에 있는 인간.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인류의 지혜, 온 우주의 지혜가 있다.

 

니체는 이런 초인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인간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초인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대다수 사람들은 한 시대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무리를 떠나 홀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무리지어 살아가는 인간은 전체가 잘못된 길을 가도 고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중국의 현자 이탁오는 오십 살 이전에는 자신이 개였다고 고백했다. 다른 개가 짖으면 따라 짖는 개.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그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은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구성해간다.

 

한 시대의 명령을 따르느냐, 내 안의 목소리를 따르느냐. 자신 안의 목소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한 시대에 의해 비명횡사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 성현들이 그렇다. 지금 인류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순간에 바람은 잦아들 텐데.

 

깜박이는 등불로 간신히 견디면서도, 우리는 한 시대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다간다는 건, 한 생명체에게 주어진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네 가슴이 무겁다면

만일 네 마음이 좋지 않다면

이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먼동이 트기 전

한 시간쯤 전에 깨어나 봐

첫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기 한 시간 쯤 전

밤 동물들은 그들의 노래를 마치고

낮 동물들은 아직

그들의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말이야

 

그리고 말없이 시냇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가 봐

 

......

 

긴 사람아,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어

 

그런 다음 물컵으로

먼동을 떠서 마시는 거야

 

-체로키 족, <물 뜨러 가는 노래> 부분

 

 

'만일 네 가슴이 무겁다면

만일 네 마음이 좋지 않다면'

 

인디언들은 물 뜨러 가는 노래를 부르며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함께 들었다. 그들에게는 일상 하나하나가 엄숙한 제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의식의 허상에 빠지지 않았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5.12 11:45 수정 2022.05.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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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