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VOW=현주 기자]
[세상소리뉴스=VOICE OF WORLD]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발언한 ‘반지성주의’가 다소 생소했는지, 시간이 지나자 그 발언에 대해 여러 시각의 반론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발언 취지를 왜곡시킨다기보다, 그냥 그 발언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충동도 있을 거라는 건 당연해 보인다.
예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15일 양산 덕개성당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확성기 소음과 욕설이 함께하는 반지성이 작은 시골 마을 일요일의 평온과 함께 자유를 깨고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몇 ‘워딩’은 지난 윤 대통령 취임사에 썼던 말을 되돌려주는 의도로 보인다. “반지성”이나 “자유” 워딩이다.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으나 그 문맥이다.
“소음과 욕설”은 지성인이 할 행위나 말은 아니라는 뜻과 함께, “평온”을 누릴 “자유”를 방해받는다는 불편한 심리이다.
굳이 ‘반지성’이나 ‘자유’를 써, 윤 대통령에게 불편한 감정을 표할 필요가 있을까. 윤 대통령이 그런 감정으로 ‘반지성주의’를 발언한 건 아닐텐데, ‘좀스럽다’ 하면 화를 내실까.
한겨레 신문에도 16일 ‘반지성주의’ 반론이 실렸다. ‘반지성주의와 개돼지론의 공통점’이란, 다소 생뚱맞은 비유 화두로 김지진 변호사가 글을 올렸다.
내용도 뻔히 보이는 게, 굳이 ‘개돼지론’에 ‘반지성주의’를 갖다 붙인 저의에 있다. ‘확성기 소음’에 ‘반지성’을 갖다 붙인 문 전 대통령만큼이나 50보 100보다.
김 변호사도 ‘평온’에 자유를 빼앗겼나.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괜히 심통이 난 불편한 심기가 아닐까. ‘반지성주의’ 화두로 인해 윤 대통령에게 화풀이인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반지성주의’ 워딩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왔다. 너나 나나 ‘반지성주의’에 반론을 내고 싶은 충동이 생긴 거다.
윤 대통령은 이렇게 갖다 붙인다.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 ...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다.”
“각자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 힘으로 상대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
해석은 자유이고 어디에 갖다 붙이느냐도 붙이는 사람의 자유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에 갖다 붙인 ‘반지성주의’를 ‘확성기 소음’이나 ‘개돼지론’에 갖다 붙이는 분도 있어서다.
박지현 민주당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겨냥해 “구조적 성차별은 없으며,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하고, 외국인 건강보험을 개선하겠다며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게 바로 반지성주의”다고 비판했다.
‘반지성’ 혹은 ‘반지성주의’를 쓰고 싶은 문맥마다 갖다 붙이는 일은 이제 흔하게 보게 생겼다. 원조라 할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가 매카시즘에다 ‘반지성주의’를 썼다면,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에다 갖다 썼다.
말하고 싶은 문맥이나 개념에 갖다 쓰면 된다.
“가짜 스펙을 쌓도록 한 한동훈”, “밀린 화대라고 비하한 김성회”, “선량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한 비서관” 등등 에다 ‘반지성주의’를 붙이면 되는 방식이다.
윤호중 위원장은 “그동안 반지성주의 득을 봐왔던 분은 대통령 본인이다”며, ‘반지성주의’에 “대통령 본인”을 갖다 붙였다.
프레시안 매체에 ‘반지성과 반정치 퇴치하려면’ 13일 칼럼에 “반지성주의는 정치공간에서 사회에 존재하는 보편적 평균 수준을 벗어난 강변과 견강부회를 동원하며 갈라치기를 통해 지지를 끌어내는 전형적 구태를 의미한다.”
지식인이 쓴 말이라 어려운 어휘와 어법이 눈에 띈다. 쉽게 말해, 상식을 벗어난 ‘억지’와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말을 “강변과 견강부회”라 보면 된다.
원래 사는 게 딱히 정해진 것이 없기에, ‘반지성주의’ 반론에 반론 등등, 어느 정도 속이 풀릴 때까지는 쓰고 싶은 문맥과 개념에다 ‘억지’와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유행이 번질 거로 예상된다.
현주 기자 sockopower@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