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1931-2011) 작가는 6·25전쟁이라는 경험이 작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는데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여행을 가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작품이 전개되는 소설이다. 주인공의 남편은 6·25 때 고향인 북쪽을 떠나 월남한 인물로, 고향에 아내를 두고 딸만 데리고 남한으로 피난을 온 사람이다. 지금은 성공한 화가로 일하고 있는데 개인전을 앞두고 시내에 있는 아틀리에에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어느 날 주인공이 작품을 준비하는 남편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들렸는데, 남편은 놀랍게도 북에 두고 온 첫째 딸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첫째 딸을 그리는 이유가 북에 두고 온 첫 번째 아내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기억 속 전처는 젊었을 때 모습일 테니 아름답겠다는 생각에 질투심을 느끼고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날들이 억울하고 허무하게 느끼게 된다.
“그 여자(전 부인)는 남편의 가슴속에 지금의 딸의 모습처럼 빛나는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간직돼 있었구나 싶자 질투가 독사 대가리처럼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
-본문 중에서-
이러한 상황에 분노한 주인공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말이 여행이지 가출이다. 무작정 간 온양은 겨울철이라 관광객들도 없고, 상황도 여의치가 않아서 어떤 여인숙으로 가는데 여인숙을 운영하는 아주머니와 도리질을 계속하는 노파(그 여인의 시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노파가 계속 도리질하는 사연을 듣게 되는데,
사연은 6·25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은 숨어 있는 상태였고, 순진한 시어머니가 혹시나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까 봐 무엇을 물어봐도 무조건 '몰라요'라고 말하라고 연습을 시켜놓는다. 전쟁이 끝나기 얼마 전에 몇 명의 인민군과 시어머니가 마주치고 시어머니는 놀라서 '몰라요'라는 말을 외친다. 그 소리를 듣고 남편이 찾아오고, 인민군이 총을 쏴 죽인다. 그 이후 시어머니는 아들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충격과 죄책감 때문에 계속해서 도리질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모신다. 이러한 아주머니의 사랑에 주인공은 감동을 받고 자신의 남편도 전쟁의 피해자이며,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작품은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의 아픔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액자식 구성으로 노파가 도리질을 계속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시어머니를 위해 헌신하는 여인숙 아주머니의 모습과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 처지를 대비시키며 힘들고 어려운 비극적인 삶을 사랑으로 극복해가는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무엇이 옳은 삶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작품에서 남편은 자신의 아내와 피붙이를 북에 두고 온 아픔을 갖고 있다.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이 쓰렸을까. 그렇다고 현재의 아내와 아이 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다. 그런 아픔까지도 치유하고 보듬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라고 작가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민병식 sunguy2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