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소답동 5일장

하진형

사진=하진형


시골의 5일장은 늘 시끌시끌하고 번잡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인근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도시의 주도권은 빼앗겼지만(?) 아직도 인정이 넘쳐나는 사람 사는 곳이기도 하다. 지명(地名)이 소답(召畓)인데 아마도 예전에 비탈진 산 밑에 밭들만 있고 논이 귀하여 논을 갖고 싶은 마음에 붙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마을 앞 남쪽으론 도호부(都護府)가 서 있었으니 서민들이 옹기종기 살아가며 논을 갖고 싶기도 했겠다 싶다.

 

이웃의 농지(農地)는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불야성을 이루어 빠르게 메말라 가고 있지만 논을 부르는 정서를 가슴에 새긴 이곳엔 지금도 사람들이 정을 나누고 있다. 소답의 5일장은 여느 시골의 5일장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부대끼고 서로 소리를 지르며 부르고 나눔을 한다. 오늘은 고추며 가지 오이 등 모종을 좀 사볼까 하고 나왔다.

 

모두들 봄볕을 한 짐씩 짊어지고 바쁘게 움직인다. 뭐니 뭐니 해도 5일장의 대표는 노점상(露店商)이다. 몸빼 바지의 어머님들은 봄나물이며 미꾸라지를 대야에 담아놓고 사람들을 부르고, 벙거지를 쓴 아저씨는 꿀수박이며 찰토마토를 떨이로 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생선좌판을 펼쳐 놓고 허연 배를 갈라놓은 아귀가 수육으론 최고라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고 저만큼 참기름 가게 옆엔 품종이 개량된 수국(水菊)이 고소한 냄새를 마시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5일장 모퉁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태어난 지 몇 주를 넘긴 중병아리가 촌닭 장에 갖다 놓은 모습으로 주위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고. 그 곁에 앉아있는 아저씨는 손님이 닭을 구경하는 것도 모르고 졸고 있다. 맞은편 젓갈가게 아주머니가 달려와 아저씨의 무릎을 때리며 깨우자 아저씨는 짐짓 졸지 않았다는 듯 눈을 껌뻑거린다. 주위의 사람들이 같이 웃는다.

 

그런가 하면 몸보신하려는 노인들이 많이 사가는 추어탕 재료인 미꾸라지는 곧 누구에게 팔려갈 줄도 모른 채 순간의 멈춤도 없이 이웃들과 몸을 섞어 꿈틀거리고, 곁에서 생선을 다듬고 있는 아저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와 죽은 생선 사이의 세상에서 열심히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면장갑을 낀 손으로 땀을 훔치는 모습이 성자(聖者)의 모습으로 보인다.

  

오늘 살 물건을 적어오기는 했지만 혹시나 쓸 물건이 있을까 싶어 두런 구경을 하다 보면 같이 간 아내를 놓치기 일쑤다. 황새목을 하고 한참 찾는다. 어디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만 찾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정작 아내는 나와 떨어진 사실조차 모르고 노점상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집에서 나누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 노점상에게는 깎지 말자.’ 어차피 깎는데 서툰 아내는 점포상인에게도 깎아주라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5일장은 점포상인들과 노점상들이 온종일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다가 저녁엔 헤어진다. 어디로 떠나는지 알기도 하고 또 모르기도 한다. 내일이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노점상끼리는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나거나 돌고 돌아 또 어느 시장에서 운명처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은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고 그것을 반복한다.

 

5일장에서 점포 상인과 노점상들이 서로의 선()을 지키며 장사를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지혜롭고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점포에 따른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밤이슬을 맞아가며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고, 노점상들은 색다른 물품과 재주로 손님(요즈음 말로는 고객님)들을 많이 모으니 서로가 도움이 되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점상(露店商)이란 말이 싸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노점상하면 길()에 좌판을 펴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이슬 로()’에는 이슬 이외에 고달프다’ ‘은혜를 베풀다’ ‘적시다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배려하는 점포상인들도 더욱 고맙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가끔 세상이 지겹거나 따분한 생각이 들면 5일장에 가 볼 필요가 있다. 그곳엔 등 푸른 고등어 등짝처럼 펄떡펄떡 뛰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있고, 하지 않아도 될(또는 쓸데없는) 걱정을 할 시간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웃들 사이의 배려가 아무런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려는 곧 베풂이다. () 김수환 추기경은 말했다. ‘사람의 크기는 베풂에 있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5.20 11:54 수정 2022.05.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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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