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개미와 꽃뱀과 함정(陷穽)

하진형


진딧물이 채소에 붙어서 농약을 뿌렸다. 약을 흠뻑 머금은 상추며 쑥갓이 몸을 털며 허리를 편다. 얼마나 가렵고 답답했을까. 보는 내가 다 시원한 듯하며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리곤 예초기를 돌린다. ~ 하는 소리와 함께 실컷 자라지도 못한 잡초가 허리를 땅에 누인다. 겨우내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다가 겨우 땅을 비집고 올라왔는데 인간들이 채소 키우는데 방해가 된다며, 또는 정리해 놓은 화단이 지저분해진다며 뽑고 베어낸다. 몸통을 땅에 누이며 그래도 다시 올라올 거다, 나는 잡초니까라며 고유의 투쟁 의지를 불태운다.

 

인근 구룡농장 형에게서 얻어온 살충제를 감나무 잎에 뿌린다. 몇 년 방치되어 있던 나무라 가지치기를 하고 퇴비를 주었음에도 잎의 성장이 영 느리다. 나무 딴에는 얼마나 낑낑거리고 있을까?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봄 가뭄까지 겹쳐 푸른 잎을 치켜들고 햇볕을 받아들이려 서 있기도 힘든다.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작은 구름이 나뭇잎에 닿기 전 하늘에 엷은 무지개를 그린다. 세상은 힘들면서도 아름다움을 그린다. ()하다.

 

얼마 전 고추밭을 일굴 때 개미집을 파헤치지 못했었는데 오늘 보니 개미들이 모두 이사를 가버리고 없다. 집에 그늘을 주고 숨겨주기도 하는 풀더미가 없어졌으니 그대로 머물기가 어려웠나보다. 밤낮없이 줄을 지어 이사하는 개미 행렬이 그려진다. 안 해도 될 이사를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나보다는 지혜로우니 서로 땀을 닦아주는 행렬이었기를 믿어본다. 곁에서 개미의 이사를 보고 있었을 고추모종은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햇볕이 등에 뜨겁게 내려앉으며 좀 쉬었다 하라고 속삭인다. 힘들 땐 햇볕의 무게도 다르다. 하긴 이른 아침부터 했으니 좀 쉴 때도 되었다. 땀을 훔치며 찬물을 벌컥거린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잠시 쉬려는데 낯선 움직임이 시선을 잡아끈다. 지금은 기능을 잃어버린 양어장의 물위에 길다란 물체가 오가기를 반복한다. 구렁이만큼이나 큰 꽃뱀이다. 어디서 왔으며 물속엔 어쩌다가 빠졌을까?

 

인간이라는 이상한 존재가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양어장에서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만리장성보다 더 높고 견고한 양어장의 시멘트벽은 점점 더 높아진다. 도움닫기를 해도 소용이 없고 힘만 빠져간다. 긴 동면(冬眠)의 시간을 보내고 봄맞이를 나오자마자 이렇게 허무하게 가야 하는가, 차라리 꽃이란 이름이라도 없었다면 허무함이라도 덜할 것을. 힘이 다해지자 허연 배가 물 위로 떠오른다.

 

휴식을 잊어버렸다. ‘저벅저벅~’ 갈퀴를 찾아 들고 꽃뱀에게로 간다. 힘에 겨운 듯 체념한 듯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수초(水草)에 얹혀있다. 조금 안쪽엔 개구리 시체가 있다. 이미 죽은 먹이인데도 배고픔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어리석게 뛰어들었다가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조금 전 내가 예초기를 돌릴 때 큰소리에 놀라 엉겁결에 피하다가 물속으로 떨어진 것일까?

 

손을 길게 뻗어 갈퀴로 건져 주려하자 힘겨워 쓰러져 있던 큰 뱀은 선의(善意)를 마다하고 몸부림을 치며 물속으로 사라졌다가 반대쪽 장벽 밑에 머리를 내민다. ‘어허~, 이를 어쩐다. 어쩌지? 저대로 두면 안 될 텐데.’ 고심 끝에 길다란 나무를 찾아다가 사각형 양어장의 모서리 부분에 비스듬히 놓아두었다. 이게 너의 마지막 생명줄이다. 부디 살아가거라.

 

계절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를 피하고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 나가 보았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신나게 혼자 말한다. ‘없다, 없다. 뱀이 살아갔다.’ 죽은 개구리도 그대로 떠 있다. 힘들게 낑낑거리며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어올라 풀숲으로 사라지는 뱀의 뒷모습이 선하다. 자연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아있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미도 이사를 가고, 뱀도 살아갔다. 굳이 살려주지 않아도 뭐라 할 이들은 없지만 그냥 자연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다. 개미는 채소에 붙은 진딧물을 쫓아내고, 뱀 덕분에 주위에 들쥐가 없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작은 은혜들의 모임동네 구멍가게라고 해도 좋겠다. 이것도 작지만 큰 은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의 곳곳에는 함정(트랩)이 도사리고 있다. 누가 왜 팠는지도 모르는 함정에 언제 빠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함정에 빠진 줄도 모르고 우물 안에서 떠들며 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함정을 팔 수도 있고, 선의(善意)가 상대에겐 악의로 비칠수도 있겠다 싶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함정을 파서 누구를 빠뜨렸을까? 또 나는 몇 번이나 빠졌을까.

 

한밤중에 글을 쓰고 있는데 책꽂이 뒤에서 나온 작은 거미가 집을 짓는다. 멀리서 개 짓는 소리도 들린다. 만약 함정에 빠진다면 빠진 줄도 모르게, 향기 나는 꽃들과 같이 빠지고 싶다. 서툴고 모자라는 나를 끼워줄지 모르지만. 장미에 안긴 철제 사립문의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5.27 11:32 수정 2022.05.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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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