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초바래길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서 출발하여 현위헌관장학회 기념관을 지나고 다천마을을 지나 다정리3층석탑과 다정리고인돌을 지나고 남해마늘연구소, 보물섬식물원, 보물섬마늘나라 장평소류지와 초곡마을을 지나 원점으로 회귀하는 길이다.
5.4km를 2시간 30분 동안 느릿느릿, 사부작사부작 걷는 길이다. 고인돌과 석탑은 옛 역사로 본다면 마늘연구소와 마늘나라는 지방분권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꽃과 물이 있는 장평소류지에는 물질만능주의 시대 재력을 모아 장학회를 만든 현위헌관장학회까지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있는 길이 다초바래길이다.
구석기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탑으로 역사를 기억하게 되고 마늘나라나 마늘연구소는 현시대의 먹거리, 장평소류지는 물이 있는 곳에 예쁜 꽃들이 춤을 추고 현위헌관은 재력으로 미래세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으니 과거, 현재, 미래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면서 걸을 수 있는 참 편안한 길이다. 현위헌관 선생은 원래 ‘현위헌’이었던 이름을 말년에 ‘현위헌관’으로 바꾸었다.
출발지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동국대 예술대학교 학장을 지내신 김흥우 교수님이 6·25 때 피난 간 육당 최남선의 집에서 온갖 진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논 것이 마음에 남아서 세계 여행을 다닐 때 탈을 수집했다. 그 수집한 것을 남해에 기증하여 생긴 곳이라 참 의미 깊은 장소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현위헌기념사업회는 현위헌관 선생님께서 경찰로 있을 때 여수반란 사건을 진압하러 갔다가 부산에서 지원하러 온 경찰관의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일제 강점기 때 부산 온천장에 일본사람들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해서 지하에 숨겨놓고 떠났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일본사람을 찾아 일본으로 가게 된다. 일본에서 고물상을 하면서 우리 문화재를 가져간 일본사람을 찾아 헤맸다. 그 후 우리 문화재가 매장된 곳을 알게 되어 발굴하기 하루 전 도굴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서 일본에서 사업으로 번 돈으로 일본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다완이나 막사발을 수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현위헌관 선생은 장학회를 만들어서 남해 학생들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장학금을 주고 있고 개인장학회로서 개인에게 가장 많은 장학금을 주는 장학회가 현위헌관장학회라고 한다.
현위헌관 선생의 인생을 알 수 있는 기념관을 지나게 되는 길이 다초바래길이다. 현위헌관 선생님과 김흥우 촌장님의 사람 이야기 그리고 고인돌과 탑을 연결하는 오래된 역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의 표상을 심어 줄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꽃과 물이 조화롭게 형성되어서 눈을 즐겁게 하는 길이 바로 다초바래길이다.
한 개인의 삶이 역사가 되고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하는 탑이 있고 현대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먹거리 마늘과 그 효능을 알 수 있는 마늘나라, 마늘연구소가 있고 장평소류지에 만발한 꽃들이 말을 건네는 다초바래길에서 김흥우 촌장님의 삶과 현위헌관 선생의 삶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걷는 것은 즐거움 중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