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호국(護國)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고, 보훈(報勳)은 이분들의 공훈에 보답하는 일이다. 이 보답은 국가가 법·제도·정책으로 이행하는 것과 전 국민이 다 같이 존중하는 예우·명예·범절이 있을 터인데,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2022년 6월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 휴전협정 체결로 남북한 군인이 휴전선을 마주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은 지 69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길목이다.
이 6.25 전쟁 발발 씨앗 중의 하나가 바로 한반도 위도 38도를 동서로 연하는 분계선이었다. 이 선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의 끝자락에 매달린 선이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 해방광복이 된 후, 이 선을 중간 분계선으로 5년여를 남한과 북한이 대치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3년 1개월, 1,129일 만에 오늘날 휴전선(백령도~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을 분기점으로 두 동강으로 나뉘었다.
<가거라 38선> 노래는 이 6.25 전쟁 발발 2년 전이던 1948년 남인수의 목청으로 발표된 절창인데, 3절 첫 소절이 남북한 간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충돌을 예견하고 있다. ‘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가 그 징표이다. 이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의 끝자락에 매달린 서글픈 절창, 소위(所爲)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꿈꾸던 망몽(亡夢),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한 후 3년 뒤에 울려 퍼진 우리 민족의 곡성(哭聲)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해방광복을 맞이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정치적 분계선인 38선에 남북으로 오고 가는 고향길이 막혀버린다.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 리 길~.’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 리 길 /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 삼팔선을 탄한다 // 아~ 꽃 필 때나 오시려느냐 / 아~ 눈 올 때나 오시려느냐 / 보따리 등에 메고 넘든 고갯길 / 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 / 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 / 이 목숨을 바친다 // 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 / 아~ 어느 때나 벗어지려느냐 / 삼팔선 세 글자를 누가 지어서 / 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든가 / 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 / 삼팔선아 가거라.
<가거라 38선> 노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분기령에 매달린 민족의 통곡(痛曲)이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이처럼 통절하게 민족의 애환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적시(摘示)한 유행가는 없다. 이 한 곡조에는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사람·모티브’라는 유행가 7요소가 아물려 있다. 그야말로 유행가의 백미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34년 351일의 터널 끝자락 해방광복, 이 환희와 비탄의 갈림길, 다 같은 고향 땅을 오고 가지 못하던 해방정국기의 시대적인 비련과 남북한 간 ‘민족의 동질성과 이념의 상극성’을 품은 절창이다. 이러한 민족의 사연을 이부풍이 가사로 얽고, 박시춘이 곡을 지어서 가요 황제 남인수가 불렀다. 이때 노랫말이 당국의 검열에 걸렸는데, 이무풍은 가사 개사 요구에 불응하며 잠적해 버렸단다. 그래서 진방남(반야월)의 손끝에서 일부 개사가 되었단다. 1948년 어느 날. ‘삼팔선을 헤맨다~’를 ‘삼팔선을 탄한다~’로.
우리나라 근대사는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해방광복까지의 70년으로 치면, 현대사는 그 이후 오늘에 이르는 77여 년의 기간을 말한다. 우리나라 한반도의 허리에 38선이 그어진 배경은 이렇다. 1945년 8월 15일 12시, 제124대 일본 천황 히로히또의 무조건 항복선언 목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일본제국에 울려 퍼졌다. 그해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투하한 우랴늄 원자폭탄(리틀보이, u-235)과 8월 9일 11시 02분, 후쿠오카 나가사키에 투하한 플루토늄 원자폭탄(팻트맨, p-239)에 두 손을 든 상황의 종결이었다. 천황제를 포함한 무조건 항복의 결정적인 계기는 두 번째 폭탄 투하다. 이때 미군은 사이판섬 남단 5~6㎞ 지점에 있는 티니안섬에 10여 발의 원자폭탄을 추가로 배치해 둔 상태였단다.
이 절묘한 타이밍에 그동안 전쟁을 관망만 하고 있던 소련은 8월 9일, 일본에 대하여 선전 포고를 하고, ‘8월의 폭풍작전’이라는 작전 명칭으로 한반도 북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침공한다. 소련의 육군은 8월 9일 두만강을 넘었고, 13일에는 극동함대를 청진항에 상륙시켜 청진방송국을 장악한다. 이때 방송국 직원들과 일본군은 현장에서 폭사하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방송국장 부인이 함흥방송국으로 피신하여 상황을 알렸단다. 이때 깜짝 놀란 미국은 군사 작전용 한반도 지도의 중간지점인 38도 선에 굵은 선을 작전계획 도식용 그리스 펜으로 긋고, 이남은 미국이 이북은 소련이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로 제안하고 소련이 수용한다.
이 선은 미국의 ‘일반명령 1호’와 소련의 ‘8월의 폭풍작전’이 정치 군사적으로 만난 지도상의 접점이었다. 이렇게 우리 국토 한반도의 허리에 분단의 정치적인 띠를 두르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소련군과 미군이 남북한에 각각 주둔한다. 이 당시 한반도에 있던 일본군은 남한에 17만여 명 북한에 3만여 명이었단다. 이후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합법적인 단독정부가 수립되며, 북한에는 같은 해 9월 9일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정권이 수립된다. 이후 남북한 국민은 고향을 오고 가지 못한다.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이 된 것이다. 이 38선이 바로 이 노래 <가거라 38선>의 모티브다. 이 노래는 해방 후 음반 1호로 알려졌었지만, 사실은 KPK악단 반주로 1947년 출반한 <흘러온 남매>가 1호란다.
이 <흘러온 남매>(김해송 사, 곡. 남인수·이난영·심연옥·노명애 노래) 역시 남북한 분단의 상처를 아물고 탄생한 노래, 남한지역으로 흘러온 남매의 사연을 얽은 노래였다. ‘이 에미는 너희들이 한없이 그리워도 / 가로 맥힌 운명선이라 천추의 한이로구나 / 삼천리강산에 삼팔(38)이란 웬 말이냐 / 목을 놓고 울어봐도 시원치 않다 시원칠 않다 // 너희들은 남쪽에서 끝까지 참어 다오 / 이 애비는 북쪽에서 힘차게 싸우겠다 /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다 / 붉은 피 한 방울을 애낄 우릴쏜가 //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지를 지키시오 / 우리들은 남쪽에서 바다를 지키리다 / 다 같은 혈족이요 우리나라 민족이다 / 이 강산 넓은 땅에 꽃을 피우자.’ 그 당시 김해송이 중심이 되어 주한 미군 위문공연을 주 역할로 창설된 KPK악단은 악단장 김해송(K), 연출감독 백은선(P), 무대연출 김정환(K)의 성(姓) 씨 영문 이니셜을 합친 것이란다. 이 악단 또한 우리 근현대사의 대중가요계의 선도였다.
<가거라 38선> 노래를 절창한 남인수는 당시 30세, 본명 강문수, 아명 최창수로 불렸다. 그는 1918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설들은 2013년 남인수 생가와 관련한 검정 결과, 남인수는 아버지 강영태가 아들을 보기 위하여 마을 어귀 주막 주모 장하방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음이 공식화되었다. 그동안 남인수 생가로 알려져 온 집도 남인수가 기거한 집으로 확인됐다. 그는 따르는 여자가 많아서 여인수, 돈이 많아서 돈인수로도 불렸다. 그는 1935년 서울로 올라와 시에론레코드사에서 <애수의 소야곡>의 원곡인 <눈물의 해협>을 취입하여 가수로 데뷔하였고, 1936년 오케레코드사에 입사하여 남인수로 예명을 바꾸어 전속가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남인수의 인생 역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세월에 매달려서 흔들리며, 마르고 젖기를 반복한 서답(빨래·세탁물)같은 삶이 었다.
남인수는 꾀꼬리 여왕 가수 이난영(1916 목포 출생)의 첫사랑이자 끝 사랑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1935년 우리나라 최초의 콩쿠르 대회이던 목포가요제에서 만나 정분의 연을 맺었지만 결혼으로 골인하지 못했다. 그 후 1936년과 1939년 각각의 가정을 이룬다. 이난영은 악단장 김해송과 남인수는 동료 가수 김은하와 결혼을 하면서다. 하지만 이난영은 6.25 전쟁통에 남편 김해송이 북으로 가는 바람에 혼자가 되고, 남인수는 1958년 김은하와 이혼을 하며 혼자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났으며, 1962년 남인수가 이난영의 무르팍을 베고서 45세의 생을 마감하였고, 이난영은 1965년 50세의 인생을 마감하였다. 2022년 6.25 전쟁 휴전 69주년에 되새김하는 <가거라 38선>은 민족의 애곡(哀曲)인 동시에 남인수와 이난영의 비련곡이기도 하다. 아~ 어느 때나 벗어 던지려나, 38선이 씨앗이 되어 벌어진 6.25 전쟁의 상처, 휴전선 세 글자는.... 아~ 사랑하는 나의 나라 대한민국이여, 자유민주주의의 꽃이여~.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