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그리고 동물)의 긴 역사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임기응변하는 것을 배운 자들이 결국에 우세했다.
- 찰스 다윈
왈리드 따히르 작가의 그림책 ‘검은 점’은 아이들이 힘을 모아 함께 ‘검은 점’을 해결해가는 다중지성을 보여준다.
어느 날 아침, 정말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침 여덟 시인데 아직도 깜깜하네, 무슨 일이지?”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검은 점이 놀이터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 신기한 검은 점은 뭐지?” 아이들은 외쳤다.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일까?” “깜깜한 밤하늘의 조각일거야!” 이틀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검은 점이 뭔지 알아내지 못했다. 더 이상 그게 뭘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걸 어떻게 없앨까 궁리하기로 했다. “다 같이 소란을 피우며 시끄럽고 무서운 소리를 지르자. 그럼 검은 점이 도망 갈 거야.” “커다란 바늘로 검은 점을 찌르자. 그럼 터질지도 몰라.” 아이들은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검은 점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제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 초등학교 아이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나를 쳐다보며 인사하는 해맑은 아이의 얼굴. 그 얼굴이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있다.
가끔 길을 가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내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하는 아이들. 어른들은 ‘위험하다!’는 생각부터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도 나의 어린 자녀가 모르는 어른에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면 순간, 어떤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은 ‘아이’가 아닌가? 인간 세상이 끝내 타락하지 않는 건, 나이 든 사람은 죽고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힘든 일을 만나면 함께 지혜를 모으며 해결책을 찾아간다.
지금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모든 위기는 인류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혼자서는 자신의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어느 날 아침, 커다란 검은 점이 자신들의 낙원, 놀이터를 점령했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각자의 생각을 말한다. 그 말들이 ‘맞다, 틀리다’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자유로운 생각이 모이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다 보면 끝내 난관을 돌파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어쩌다 이런 너무나 당연한 지혜를 잃어버린 걸까? 작은 위기에도 속수무책 당하고 살아가는 걸까?
아이들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기에 서로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쉽게 하나로 모아진다. 이런 아이들의 집단적 지혜를 ‘다중지성’이라고 한다. 다중은 대중하고는 다르다. 대중은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지도자가 필요 없는 대중, 다중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인 대중이 다중이다. 이들은 최고의 지혜를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끝내 검은 점이 사라지지 않자 대신 그것을 어떻게 쓸까를 고민한다. “탑처럼 검은 점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자.” “안 돼. 그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놀이터가 두 갈래로 갈라졌으니까 우리도 두 편으로 나누자.” “비가 올 때 우산처럼 쓰자.” “숨바꼭질할 때 검은 점을 기둥 삼아 놀자.” 아이들은 이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다시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이건 해결책이 아니야. 하나도 재미가 없을 거야.” 한 아이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아이는 생각하고 생각하다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자 화가 나 검은 점을 발로 냅다 찼다.
그랬더니 검은 점이 조금씩, 정말로 아주 조금씩 부서져 떨어졌다. “그래, 부서뜨리는 게 해결책이야!”
그 아이는 망치와 의자를 가져와서 검은 점을 부서뜨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몰려왔다. 함께 부순지 다섯 달 만에 검은 점은 완전히 부스러기로 변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이제 이 부스러기를 어떻게 할까?”
그 부스러기를 어떻게 할지는 아이들의 다중지성만이 알 것이다. 공원에서 인사하고 지나가던 아이, 지금 내 눈 앞에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
언덕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드는 우리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이 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 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 임길택, <완행 버스> 부분
이 아이의 생각은 왜 널리널리 퍼져가지 못하고 어디서 멈춰 버렸을까?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