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가뭄이 계속되면서 걱정 또한 늘어난다. 일찍 모내기를 한 농부들은 논바닥이 타들어 가서 걱정이고, 아직 모를 심지 못한 이들은 논에 물을 대기조차 어려워 또 걱정이다.
넓지 않은 논이지만 지하수까지 보태어서 모내기 준비를 한다. 며칠 전에 ‘낼 모레 논을 할 테니 물을 잘 보라’고 한 이웃 베테랑 농부는 하늘이 하는 대로 해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초보 농부에게 무논을 하는 날은 엄청나게 큰 날이다. 어제는 인접에 살면서 수시로 농사일을 가르쳐주는 형에게도 연락을 했다.
늦게 잠들어 얼마간을 잤을까. 바깥에서 기계음 소리가 들려 깨어나서 책상 위의 디지털시계를 보니 아직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새벽에 논을 한다고?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히 트랙터 엔진 소리였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작업복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간다. 농부는 벌써 절반 이상이나 써레질을 해 가고 있었다. 새벽공기가 퍼져 나가듯 트랙터 앞으로 반달형 물결을 그리며 흙물이 앞서서 퍼져나간다.
5시가 지나자 이번엔 형이 전화를 해왔다. ‘논하는 날엔 일꾼 식사도 단단히 챙겨야 하는데 어쩌고 있는가?’ ‘예, 일은 벌써 시작했고요, 식사는 어쩌지요~~’ 이래저래 걱정은 쌓여간다. 엊그제 제초제와 밑거름 농약을 사 놓으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사는 것을 놓쳤다. 토요일인 오늘은 이순신 연구동호인들과 답사여행도 가기로 했었는데 어떡하지? 늦어도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는데.
염치 불고하고 5시 30분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농약방 어르신께 전화를 하니 잠이 덜 깬 목소리가 수화기로 흘러나온다. ‘저어~ 죄송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무논에 제초제와 비료를 뿌리고 급하게 갈 곳이 있는데 비료 좀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몸을 일으키며 대답하는 농약방 어르신의 목소리가 나온다. ‘와 보이소~.’
눈을 비비고 나오는 농약방 어르신을 보면서 미안함이 더해진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반복하자 농약 푸대를 같이 옮겨 실으며 ‘농사짓는 일이 다 그 그렇지요.’라시며 편안하게 배려해 주신다. 넉넉함이 어르신의 삶을 말해준다. 무논에 제초제를 반쯤 뿌리자 형이 오셨다. 열 살 이나 위인 형은 일흔을 넘겼음에도 아직도 막냇동생에게 예초기를 맡기지 않는다. 고마움은 끝이 없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급히 동호인들에게로 간다. 나이 먹어 가면서 같은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다. 오늘은 처음 온 사람도 있고,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 도반도 있다. 반짝이는 호기심 어린 눈망울이 더욱 귀엽고 고맙다. 또 놀러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더니 공부하는 분위기가 낯설다며 약간은 긴장된다는 초행 도반의 반응도 재미있다. 답사 도중에도 무논에 비료를 뿌리고 논두렁을 다지고 있는 형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만 답사를 하다 보면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나려 할 때도 있다. 오늘도 어느 왜성(倭城)을 살피다가 이순신 승첩기념비의 글자가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왜성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데 정작 승첩기념탑의 비문은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존경한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뭐가 중헌디?’라는 시쳇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하얀 쌀밥을 보면 벼가 자라고 있는 푸른 들녘과 추수하는 것만 생각하고 새벽녘에 무논을 만들고 허리를 굽혀 김을 매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재를 보거나 이용만하고 본질적인 의미를 소홀히 하거나 관리를 등한시하는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익되는 것만 챙기는 것은 본질과 거리가 있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우리들의 본성(本性)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답사 공부가 늦게 끝났으니 저녁 식사하고 가라는 것을 뒤로하고 서둘러 집에 오니 모내기까지 끝내놓으셨다. 마무리용 어린 벼는 무논에 뿌리를 담근 채 기다리고 있다. 곧 푸르러질 벼를 생각하면 입가가 저절로 올라간다. 가급적 농약을 치는 횟수도 줄이며 키울 것이다. 수확을 해서는 가까운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미당(未堂) 선생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고 했는데 밤늦도록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합창은 무엇을 염원하고 있을까.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