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각자도생各自圖生 Sink or Swim

이태상

 

2022년 5월 31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칼럼 <'태프트 가쓰라 밀약'과 고종의 탄원> 필자 문일룡 변호사는 미국이 그 누구에게도 '구세주(?)'가 결코 아님을 우리 모두에게 일깨워 각성시켜주고 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시작한지 한 달 쯤 지나서였다. 나는 어느 모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한제국 말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당시에 미국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지도 않았고 후에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 때 미국이 국익 때문에 일본의 야욕을 눈감아준 것이 이렇게 훗날 비판을 받고 당대를 살았던 미국인들도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역시 역사의 심판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랬더니 모임 참석자 한 명이 책 한 권을 소개했다. 그 책의 저자가 나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책을 구해 진지하게 읽었다.

‘제국주의 유람선’(The Imperial Cruise)이라는 제목의 그 책은 2009년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그 책에서 1905년 여름에 테드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와 태프트 전쟁장관의 아시아 방문에 대해 적고 있다. 7월5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 한국, 그리고 다시 일본을 거친 방문이었다.


많은 연방의원들을 대동하고 ‘만추리아’라는 이름의 유람선을 타고 이루어진 이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일본과 미국이 한국의 장래를 놓고 ‘태프트 가쓰라 밀약’에 이르는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대통령 딸이 방문단에 포함된 이유는 대중의 주의를 교란시키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과 미국인들의 사고는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미개한 국가에 대한 선진국가의 책임의식과 철저한 미국의 국익우선주의였다고 했다.

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역사학자들도 많이 있다. 가장 큰 비판은 1905년 미국이 취한 입장을 36년 후의 일본과의 전쟁 그리고 그 후 1950년의 6.25전쟁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한 역사적 사건을 두고 평가에 여러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비판들을 염두에 두고 그 책을 읽었다. 그런데 책 내용 중에 나 자신 한국인으로서 특히 가슴에 아픔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중국 상해에서 일본으로 향한 태프트 장관과 달리 북경을 거쳐 9월19일 한국에 도착한 앨리스 루즈벨트가 대한제국 황제에게 환대를 받는 모습이었다.

나라의 존망을 눈앞에 두고 있던 고종황제는 황실의 전례와 의전을 무시한 채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의 딸을 극진히 환대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황제의 개인열차를 내주었다. 서울 도착 때에는 황실밴드가 미국국가를 연주하게 했다. 또한 그때까지 외국인과 공개적으로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없는 고종황제가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황실의 여자들도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도록 허용했다고 한다.

그 후에 고종황제는 한국에 있던 호머 헐버트 선교사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밀사로 보낸다. 한국을 도와달라는 탄원을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1905년 11월15일 미 국무성에 도착한 헐버트 선교사를 고위 관리들은 만나주지 않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시간을 끌기 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11월17일에 일본정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서울로 보내 강제로 대한제국이 을사늑약을 체결하게 한다.

미국 정부는 한국과 한국민의 입장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일본이 얻고자 하는 것에 동의해주면서 필리핀을 비롯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미개’한 약소국인 한국은 그저 일본이라는 ‘명예 백인’ 국가를 통해 깨우쳐야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제발 살려달라고 미국과 서방국가에 하는 호소가 왠지 남다르지 않게 들린다. 나의 조국이 불과 백여년 전에 겪었던 똑같은 아픔이기 때문이다."

<문일룡 변호사>

자, 이제, 지난 2020년 11월 16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우리 되새겨보자.

[이태상 칼럼] 골찬당 아니 가슴찬당(當/黨) 코스미안당이 되어보리


몇 년 전 미국 정계(政界)에서 유행되었던 빠져 있는 유전인자론(遺傳因子論)’에 따르면 빌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는 대통령 부인 될 자격 아니 그 자질을 못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자질(子膣/資質)이란 남편이 다 못 갖추고 남편에게서 빠져 있는 그의 부족한 한 가지 자질만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무골호인(無骨好人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처럼 로니의 보복인자(報復因子)’라든가냉혈한(冷血漢조지 H.W. 부시 시니어의 부인 바바라처럼 조지의 온정인자(溫情因子)’라든가골빈 무골충(無骨蟲댄 퀘일의 부인 말린처럼 두뇌인자(頭腦因子)’ 같은 것만 말이다.

 

그런데 힐러리는 힐러리대로 남편 빌 만큼 갖출 자질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이것을 내가 좀 풀이해 보자면 서양에서 태고(太古)의 옛날 옛적으로부터 성서적(聖書/性書的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불문율(不文律)로 지켜온 금기(禁忌)를 깰 우려(憂慮)가 있다는 뜻이었으리라.

 

어린 소녀같이 머리띠 헤어밴드를 두른다든가 남자처럼 정치 연설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그만둘 수 있어도 남편 못지않게 머릿속에 꽉 차 있는 골수(骨髓)나 가슴 속에 남편과 똑같이 꽉 차 있는 열두 쌍의 늑골(肋骨갈비뼈 가운데서 남자의 갈비뼈’ 하나만 빼고 나머지를 죄다 뽑아 버릴 수 없는 힐러리는 여자들 가운데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존재로 돌연변이(突然變異)의 골찬당인 까닭에서 였으리라.

 

그 더욱 더더군다나 남편 빌이 자기가 지금껏 인생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교훈들은 모두 여자에게서세 여성으로부터할머니어머니아내로부터 배운 것이지미국의 예일대학이나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다니면서 배운 것 아니라고 공언강조역설하는 마당에서랴.

 

그러니 만세를 부르리라.

여성 만세여성 만만세.

그리고 여성 만세 부르는

클린턴 같은 남성 만만세.

여자는 남자 없이 살아도

남자는 여자 없이 못살지.

 

한즉 그러한즉 그리한즉

()이 남자(男子)

갈비뼈 하나를 뽑아내서

여자(女子만든 것 아니고

여자의 젖가슴을 쥐어짜서

남자아이를 만들었으리라.

가슴가슴 젖가슴으로.

 

가슴 만세 젖가슴 만세

사랑의 젖가슴 만만세.

 

젖의 부족에서 생기는

유아(乳兒)의 고질병

젖 감질(感疾/疳疾)

댄 퀘일처럼 다 커서도

앓게 되는 남자 없도록.

 

그 당시 뉴스에 댄 퀘일 미국의 부통령이 만일 자기 딸이 임신을 했고 태아(胎兒/胎芽)를 낙태(落胎), 유산(流産)시키기로 딸이 결심했을 경우 딸의 결정을 자기는 지지하겠노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그 몇 년 전 선거 유세 때 그는 11세 내지 13세 어린이 급신(急信)’이란 TV 뉴스 잡지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 어린 소녀 기자가 묻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열두 살인 내가 내 친아빠에게 강간당해 임신했다 가정하면 내가 잉태(孕胎)해서 이 아이를 출산(出産)하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내 아내 말린이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남자에게 강간당해 임신(妊娠/姙娠)해도 나는 그 아이를 낳으라고 하겠다.”

 

(그 당시이 말에 하여튼 철자법 맞춤법 영어 스펠링 공부보다 먼저 엄마 젖부터 한참 더 먹어야 할 남자아이임에 틀림 없다고아들 자()라 하기보다 딱할 딱 자()가 덜떨어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리라.

 

부조리(不條理)의 연극(演劇)’이라 불린 극작품(劇作品)들이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유럽과 미국 극작가(劇作家)들의 작품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이 말 그대로 인생의 부조리성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연극의 기능이고 작업이란 뜻이다.

 

그리고 실존주의철학(實存主義哲學용어로 사용되는 이 부조리란 단어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부조리의 철학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 인생에서 삶의 의의(意義)를 찾을 희망이 전혀 없는 한계 상황적절망적 상황을 일컫는 데 쓰인다산다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생각은 1942년 카뮈의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The Myth of Sisyphus)’가 발표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정의(定義)하는 것은 인생이 본질적으로 신비하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인식(認識)은 삶의 방향과 목적과 의욕을 상실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當惑感)에서 출발한다이 같은 인간실존(人間實存)의 부조리성을 다룬 작품으로 아일랜드 출신이면서 파리에 거주해 온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Samuel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가 있다.

 

고도(Godot)란 누구일까? 1952년 발표되어 그 다음 해 1953년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무대에 오른 이후 세계 각국에서 여러 나라 말로 거듭 상연되온 이 극작품에는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이라는 두 방랑자(放浪者)/부랑자(浮浪者)가 등장한다이들은 고도라는 이름의 한 신비스러운 인물을 끝없이 기다리면서 이렇다 저렇다 다투고 있다그가 올 예정된 시간과 장소가 어느 때 어느 곳 언제 어디라고 서로 질세라 우겨 대면서 이들은 재치문답(才致問答)의 말장난을 하며 놀고 있다.

 

2막으로 된 이 연극의 각 막이 끝나 갈 무렵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의 왕림(枉臨도래(到來)가 임박(臨迫)했다고 전한다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고 제12막 다 이 두 남자의 다음과 같은 대사(臺詞)로 막이 내린다.

 

이제 우리 갈까?”

그러지이제 우리 가세.”

 

그러나 둘 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동정(同情)과 연민(憐愍/憐憫), 희망(希望)과 기지(機智)가 가미(加味)된 인간의 무지(無知)와 착각(錯覺때문에 생기는 무기력(無氣力)한 마비상태(痲痺/麻痺狀態)가 상징적(象徵的)으로 설득력 있게 잘 묘사(描寫)되고 있다.

 

어쩌면 신()이라는 ‘God’와 바보라는 ‘Idiot,’ 이 두 단어를 복합한 합성어(合成語) ‘Godot’를 통해 어리석은 인간의 허망 허탄(虛妄虛誕)을 꼬집고인간의 참된 구원(救援)과 행복의 조건(條件)은 외재(外在)하는 것이 아니고 내재(內在)하는 것임을 암시(暗示)하는 것이리라. ‘시지프의 신화에서와 같이.

 

우리는 모두 이제 어서 골빈당을 해체(解體), 해산(解散)하고 골찬당 아니 가슴찬당 코스미안당 만들어 당당(堂堂)한 코스미안이 되어보리.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2.06.04 09:47 수정 2022.06.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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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