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스 / 김주연 기자] 나는 ‘노키즈존’이라는 것이 아이들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단순히 아이가 울고 떠드는 것이 듣기 싫은 어른들이 개구리 올챙잇 적 생각 못 하는 것이라며, ‘노키즈존’이라고 쓰여있는 카페나 식당은 주인이 이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 약속 때문에 겸사겸사 차를 타고 가족들과 1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초등학교 6학년인 동생과 ‘노키즈존’인 고양이 카페에 다녀왔다. 가는 중간에 동생이 카페를 검색해서 후기를 읽어봤는데 여기 ‘노키즈존’이라고 자기가 갈 수 있는 곳이냐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너 키즈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동생은 14세에서 한 살 모자라는 자신의 나이가 걸리는지 한참을 걱정했다. 나는 그래도 일단 가보고 안된다고 하면 그때 방법을 찾아보자고 달래주었다.
카페에 가보니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동생의 큰 키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린이의 입장을 막는 일도 다행히 없었다. 고양이들과 우리 가족, 사장님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유를 즐겼다. 엄마가 사장님에게 고양이들이 예쁘다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사장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양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 사이에 서열이 누가 가장 높은지, 10마리의 고양이들이 다 본인의 집에서 키우던 집고양이라는 것, 최근 아빠 고양이가 다른 수컷 고양이들한테 자꾸 싸움을 걸어서 걱정이라는 것, 며칠 전에 수의사 선생님이 왔는데 이렇게 싸움이 나는 것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 고양이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카페를 연 것인데 지금처럼 고양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면 조만간 카페를 닫을 계획이 있다는 것, 어린아이들이 멋모르고 고양이를 들거나 던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고양이가 처음으로 아이를 물려고 해서 난처했었다는 것, 아이가 물리면 책임의 소재도 사장님한테 있을 것이고 고양이에게도 좋지 않으니 ‘노키즈존’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노키즈존’이라는 것을 나쁘게만 보는 것도 나의 편협한 시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게마다 ‘노키즈존’을 선언한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돈을 들여 가게를 개업한 것은 사장님이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가게를 운영할 자유도 사장님한테 있다. 대신에 왜 이곳이 ‘노키즈존’인지 그 이유도 함께 명시해놓는다면 어린이 손님도 입장이 안되는 이유를 이해하고 다른 곳을 찾지 않을까 생각한다. 막연한 거절은 자라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노OO존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노키즈존’ 외에도 ‘노시니어존’과 같이 노년층의 입장을 제한하는 장소들도 더러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특정 계층을 거부하는 장소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일으킨다. ‘노OO존’이 생겨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될수록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에 대한 포용력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다. 이는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통합을 저해하여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내가 아닌데, 내가 그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입장이 제한되는 것은 굉장히 억울한 일이며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공동체적인 사고방식을 놓지 않아야 한다. 언젠가 사람들로부터 배제되고 외면당하는 것이 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무지의 베일 속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는 건전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