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춘천 드름산에 올라 다산(茶山)을 추억하다

여계봉 선임기자

춘천 의암호 옆에 있는 삼악산(三岳山)은 돌산으로 웅장하면서 아주 험준하다는 점에서 더불어 견줄 산이 없을 정도다. 바위 꼭대기나 돌 모서리가 기괴함은 형용하기조차 어려운데, 이를 일러 예부터 석금강(石金剛)이라 불렀다.

 

널리 알려진 삼악산에서 의암호 건너편에 있는 산이 바로 드름산이다. 삼악산의 유명세에 눌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호젓한 산행을 즐기려는 춘천 시민들이나 산꾼들이 오히려 즐겨 찾는 산이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고 바로 앞에 있는 삼악산과 의암호뿐 아니라 가평의 화악산과 몽가북계, 춘천의 용화산, 오봉산, 대룡산, 금병산 등 주위 산군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드름산 의암봉의 명품송 너머로 보이는 삼악산과 의암호


드름산 산행기점인 팔미리 마을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경춘선 전철역은 김유정역이다. 김유정역에서 도로를 따라 팔미리 마을까지 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아니면 강촌역에서 7번 버스를 타고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들머리인 칠전동 대우아파트에서 내려서도 산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오늘 산행은 김유정역에서 출발하여 팔미리 마을 입구 산 들머리에서 시작해서 칠금봉(한봉)을 지나 정상에 올랐다가 최고 전망대 의암봉을 거쳐 의암호 인어상 방향으로 내려서기로 한다.


드름산 산행코스(총 8.1km, 4시간 소요)


김유정역에서 오른쪽으로 나와 레일 바이크 철로와 나란한 도로를 따라 팔미리 교차로까지 간 후 팔미리 육교를 건너서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마을로 올라가는 도로 왼쪽에 보이는 등산로 안내판 옆으로 난 숲길을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소나무 숲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면 짙은 잣나무 숲이 산객을 반긴다. 차츰 가팔라지는 숲길을 지나 급격히 고도를 올리면 소나무와 잣나무가 군락을 이룬 주 능선에 서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쉼터가 있는 칠금봉(한봉, 350m) 정상이다.


드름산 산길은 소나무와 잣나무, 참나무 군락지가 반복된다.


칠금봉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진 뚜렷한 능선을 타고 제법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군데군데 조망이 터지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암릉 사이사이로 버티고 선 아름드리 소나무가 풍경을 더해준다. 능선 우측으로 춘천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룡산과 금병산, 그리고 춘천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능선길의 전망 벤치. 춘천 시내와 춘천의 산군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칠금봉에서 약 900m 정도 내려오면 능선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갈림길을 따르면 대우아파트로 하산할 수 있다. 사거리 고갯마루에서 계단을 따라 잠시 고도를 높이면 작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춘천 시가지와 그 뒤를 둘러싼 용화산, 오봉산, 봉의산, 대룡산 산줄기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하늘을 덮은 하얀 구름 아래로 짙푸른 의암호가 눈을 시리게 한다.

 

정상 아래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평 산군 몽가북계와 북한강


드름산 정상은 전망대에서 300m가량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자리 잡고 있다. '드름산'이라고 새긴 작은 검은색 표지석이 노거수 아래에 있다. 정상부는 나무가 많아 춘천 방향의 시계가 좋지 않은 편이다.

 

삼악산 동쪽,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위치한 드름산은 춘천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뒷산답게 수더분한 산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춘천을 둘러싼 산자락이 한눈에 조망되고, 발아래로 의암호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산행 시간에 비해 얻는 산행 재미가 쏠쏠하다.

 

드름산 정상(357.4m). 산 높이를 닮은 정상 표지석이 앙증맞다.


정상에서 의암봉 가는 능선길은 걷기 편한 소나무 숲길이다. 능선 오른쪽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춘천 시가지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의암호가 어른거린다. 의암호에는 붕어섬과 중도, 고슴도치섬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떠 있고, 주위 산군들이 감싸고 있는 춘천 시가지의 풍광이 능선길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의암봉 가는 능선은 솔향 가득한 숲길이다.


너른 평상이 있는 참나무 군락지 숲길을 지나고 계속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의암호 건너에 높이 솟아 있는 삼악산이 나무에 가려 정상 부위만 모습을 드러낸다. 능선 왼쪽으로 의암리로 내려서는 산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간다. 잠시 후 시야가 터지며 돌탑 하나가 보이고 그 너머로 삼악산이 완전하게 모습을 보이면서 산객을 반겨준다.


의암봉 돌탑 너머로 삼악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탑 옆 절벽에 설치된 전망데크는 드름산에서 가장 뛰어난 조망을 자랑하는 의암봉 전망대다. 아찔한 절벽 위의 전망데크에 서면 기암괴석이 늘어선 삼악산 자락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마치 의암호 물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호수와 가깝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푸른 호수 너머 춘천 시내는 물론 소양강댐과 북한강 물줄기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평소 여행을 몹시 좋아한 조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북한강 유람을 몹시 원했다. 181818년 동안 이어진 강진유배에서 풀려난 다산은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로 돌아온 후 2번이나 춘천을 찾았다. 집 근처인 경기도 남양주의 능내리 나루를 출발해서 대성리와 청평을 지나고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관천리, 남이섬과 가평, 강촌을 거쳐 현재의 의암댐 인근에 도착했다. 지금이야 의암댐에 물길이 가로막혀 춘천 방향으로 올라갈 수 없지만 당시에는 북한강을 거슬러 춘천으로 들어오면서 왼쪽의 삼악산과 오른쪽의 드름산 사이의 협곡을 유유자적하면서 올랐으리라. 다산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이곳의 멋진 풍광을 수십 편의 시로 남겨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의암봉 봉우리 아래 의암호에 붕어섬이 떠 있다.


다산은 춘천 인근에서 신연강(新延江)을 타고 주변의 경치를 즐겼다라고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다산이 유유자적 유람을 즐기며 배를 띄우던 '신연강'은 과연 어디였을까. 이 강은 지금은 의암댐에 가로막혀버린 인공호 '의암호'로 변했다. 1967년에 의암댐이 완공되었으니 그때부터 물길은 막혔고, 댐 높이만큼 삼악산과 드름산은 물속에 잠겨 버린 것이다. 그리고 호수에는 두 산을 잇는 '신연교'라는 다리가 놓였다.

 

의암봉에 서면 춘천을 병풍처럼 둘러싼 명산들이 눈 안에 들어온다. 바로 정면의 삼악산, 가평의 화악산, 삿갓봉, 용화산, 오봉산, 사명산, 춘천의 중심에 자리한 봉의산도 시야에 잡힌다. 발아래에는 북한강의 물줄기를 담아낸 의암호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태양열 집열판을 힘겹게 머리에 이고 있는 붕어섬이 푸른 물 위에 떠 있고, 중도 레고랜드의 경관까지 한 폭의 자연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작년 10월에 개통된 케이블카가 의암호를 가로질러 삼악산을 오르고 있다.


전망대를 내려서면 곧바로 하산길이다. 암장이 있는 수직의 암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을 감상하며 발길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의암댐을 끼고 도는 경춘국도로 내려서게 된다. 100m 정도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의암호 옆 바위 위에 인어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수더분하게 생긴 시골 처녀 모습이어서 덴마크 코펜하겐의 도회적 인어공주보다 훨씬 정겹게 다가온다.

 

의암호의 청동 인어상


삼악산과 드름산이 만들어 낸 협곡의 장엄함을 감상하던 다산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마치 춘천으로 들어가는 대문 같은 '문암(門岩)'을 발견하고는 감탄한다. '석문(石門)'에서 그는 문암을 두고 하늘이 만든 특별한 곳(天作有殊狀)”이라는 표현으로 예찬했다. 하지만 문암은 물에 잠겨 가려지고 찻길에 잘리면서 옛 모습은 많이 사라져 버렸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구분하는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산 옆구리를 타고 죽 늘어서 있을 뿐이다.


의암호에서 바라본 의암봉


다산이 수십 편의 시를 통해 그토록 노래한 '신연강' 주변의 아름다운 편린(片鱗)들은 의암댐이 만들어낸 의암호의 수변 아래 오롯이 간직되어 있지 않을까.

 

인어상 앞에서 '신연강'을 한참 내려다본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작성 2022.06.10 10:19 수정 2022.06.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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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