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 혹시 교회 다니세요?”
입주민의 전화는 늘 긴장이 된다. 좋은 일로 전화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이번 전화의 용건은 신선했다. 나의 카톡 사진을 보았다며 신앙을 물어오셨다.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딱히 감출 이유도 없기에 개척교회 목사임을 밝힌다. “아이고, 그러셨구나. 역시 일하시는 모습이 다르시더라.” 나의 쑥스러운 고백과 다르게 입주민께서는 아주 반가워하시며 연신 칭찬 세례를 하신다. 교회에 가봐도 되냐는 말씀이 얼마나 반갑던지. 그분은 출석과 함께 등록하셨고 매일 예배드리며 눈물을 흘리는 울보 성도가 되었다.
“목사님, 손자가 피아노를 치는데 반주를 해봐도 될까요?”
개척교회 사모는 바쁘다. 식사 준비, 예배 반주, 아이들 돌봄. 그 와중에 손을 조금 다치게 되었다. 하지만 반주를 쉴 수는 없어 상처를 싸매고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시고는 울보 성도님, 아니 권사님께서 중학교 3학년 손자가 피아노를 친다며 반주자로 추천하신다. 무조건 환영이다. 어느 지역의 중형교회 출석하던 아이는 그렇게 개척교회 반주자가 되었다. 실력이 제법이다. 그전 교회에서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반주 기회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잘 왔다. 여기서 너를 사용하시나 보다.
얼마 뒤, 권사님의 세 딸과 사위 한 분이 교회에 방문하셨다. 물론 반주하는 아이의 어머니도. 어머니와 아들이 다니는 교회에 단순 방문인지 정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내심 기대를 해본다. 우리 교회에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면 좋겠다는 생각. 대부분 개척교회 목사는 방문만 해도 이런 환상을 가져보지 않을까?
“목사님, 지금 다니는 교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좋은나무교회 출석하겠습니다.”
환상이 현실이 되었다. 협소한 공간에 내놓을만한 시스템도 없는 교회. 목사 설교도 어눌하고 화려한 음악도 없는 교회에 등록하겠다는 뜻을 전하셨다. 둘 중 하나다. 교회보는 안목이 없는 초보 신앙인이거나 교회를 세우며 동역하고 싶은 열정 있는 신앙인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는 무조건 할렐루야다.
나는 그렇게 일터 아파트에서 교회 가족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허름한 작업복에 청소하는 모습 보이기가 민망했지만 오가며 나누는 반가운 인사에 이제는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자주 볼 수 있어서 ‘진짜 목회’에 근접한 것 아닐까 싶은 느낌마저 들었다.
“목사님께 인사드려야지. 뭐가 부끄러운거야?”
권사님 댁에 놀러 온 손녀. 이제는 우리 유치부 교인이 된 아이. 진짜 똘똘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다. 아들만 둘 있는 나에게는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교회에서 만나면 살짝 와서 아는 척을 하고 자기 인형을 자랑하는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아파트에서 만나면 너무 어색하다. 교회에서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아이는 숨어버린다. 하긴, 지금 나의 행색이 좀 그렇다. 작업하는 복장에 목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 자꾸 몸을 숨기는 아이에게 나의 행색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괜히 아는 척을 했나 싶다.
어느 주일 아침.
녹화해 둔 영상을 올려두었기에 온라인 예배 준비는 끝났다. 그래서 주일 오전이지만 여유가 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었을까? 코로나로 교회를 사용하지 않아 청소하지 않았던 공용 화장실이 떠올랐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주 직접 청소를 했는데 한참을 청소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화장실은 엉망이었고 나는 뜨거운 마음에 갑자기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 고무장갑을 끼고 손에 청소 솔을 들고 있다. 주일 아침에 목사가 그러고 있다.
“안녕하세요. 교회 가시나 봐요? 저는 여기 좋은나무교회 담임입니다.”
성경을 들고 말끔하게 차려입으신 노부부가 청소하는 앞을 지나간다. 교회 가시는 길이라 확신하고 반가움에 인사를 드린다. 그런데 어르신의 눈빛이 불편하다. 반가움은커녕 경계한다. 나를 살피는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다. 하긴, 주일 아침에 슬리퍼 끌고 청소하는 목사가 좀 이상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초라함이 묵상되며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짧은 시간 마주했지만, 그분도 나도 어색해진 느낌이다.
‘하, 이놈의 오지랖. 괜히 인사했나.’
삽화 : 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