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하는 사람. 여름이 온다고 아이처럼 들뜬 작가가 있다. 그는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의 ‘섬머타임’을 인용하며 여름의 문을 연다.
여름이란다. 그리고 삶은 평온하지.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목화는 잘 자랐다네. 오, 아빠는 부자고 엄마는 미인이란다. 그러니 쉿, 아가야, 울지 마렴. 이런 아침이 계속되면 넌 다 커서 노래하겠지. 넌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 거야. 하지만 그때까지 아무것도 널 해치지 못할 거야. 엄마 아빠가 네 곁에 있으니. (장석주 역)
오늘 아침 한 신문에 실린 장석주 시인의 칼럼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오래 전 (아마 대학 졸업 전.후 일 것이다) 그의 『비극적 상상력』을 눈여겨 읽었던 터라, 그 후에도 그가 쓴 다수의 에세이를 관심 있게 읽어왔다. 찬찬히 전개한 그의 글에서는 아직도 왕성한 창작력,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돋보이는 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문학노동자’로 소개한 것을 보면, 또한 문학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섬머타임’에 담긴 아련하고 슬픈 노스탤지어를 생각하면서, “인생의 웬만한 고달픔도 참을 만하다. 내겐 부자 아빠도 미인 엄마도 없는데, ‘섬머타임’이 흘러나오면 심장이 함부로 나댄다.”라고 말한다. 나로서는 낯설거나 구사하지 못할 표현을 멋들어지게 하는 이가 바로 장석주다. 그래서 그가 문학선배로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많이 써내길 바란다.
시인은 말한다. “ 내 손목을 채웠던 시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랑의 설렘과 환멸, 우연한 행운에 숨은 악의, 늙음과 병에 대해, 이제 나는 알만큼 안다. 나이가 들며 얼굴도 취향도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영혼의 깊은 곳을 두드리는 ‘섬머타임’을 여전히 좋아하고, 덧없는 슬픔의 영역에 속한 아름다움에 속절없이 매혹 당하는 것이다.” (춘추칼럼, 강원일보 2022.6.10.)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 때 썼던 글이 생각난다. 헤르만 헤세의 시를 읽고 나서 ‘여름을 부르는 글’을 썼던 기억이다. 헤세의 시를 다시 읽어본다.
여름이 다가올 때
여름은 멋지다.
비가 사납게 내린다. 그러다 드디어 날이 갠 밤.
마로니에 나무에 화려하게 꽃이 핀다. 재스민이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
곡식이 익는다. 뇌우가 퍼붓는 밤이 다가온다.
어른이 아이가 되고, 살아 있음이 불꽃같이 느껴지는 계절.
헤르만 헤세-
머지않아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늘 그렇듯 6월 하순이면 장마가 한반도를 찾아올 것이니 조금 걱정도 되지만, 시원한 물줄기는 목마른 대지를 적시고 메마른 가슴을 뻥 뚫어 주리라. 굵은 빗줄기는 잠든 영혼 속을 파고들며 깊이 침착할 것이며, 성난 장대비는 뿌연 안개를 일으키며 온 세상을 두드리고, 이내 아스라한 시간을 거슬러 붉은 황톳물이 기억을 범람할 것이다.
그리곤... 숨이 정지하듯 파리한 일상이 멈추겠지. 그저 낯설고, 이상하고, 신비한 순간이 정지된 화면처럼 잠시 곁에 머물 것이다. 그때쯤이면, 아마 나도 여름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