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celebrating Pride Month in June!” 성 소수자의 달 6월, 교회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성 소수자

성 소수자 축복하기만 해도 목사 정직

동성애자는 교회에 다니며 종교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뉴스 / 권효민 사무국 인턴 기자] 2019년 8월,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여 성 소수자를 축복한 이동환 목사가 2020년 10월 감리교단으로부터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다. 그 이후로 이 목사가 항소하여 여러 차례 재판 날짜가 잡혔지만, 매번 무산되어 아직도 결과가 나지 않은 상태이다. 


이 목사는 단지 성 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을 통해 역설적으로 성 소수자들이 교회에서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성 소수자는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교회에서 환영받지조차 못한다. 여성, 이방인, 나병 환자까지 포용하신 예수님과 달리, 교회는 성 소수자 앞에서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과연, 동성애자는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닐 수 있으며, 사제 또는 목사 안수를 받고 종교적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 그 근거로 세 가지를 들며 논지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동성애가 죄라는 성서적 근거가 명료하지 않다. 레위기 20장 13절,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라는 구절은 구약 성서에서 유일하게 동성애가 죄라고 직접 언급한 본문이다. 동성 간 성행위를 하면 반드시 죽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 13절에 보면 “살인하지 말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도 명시된,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명령이다. 위의 두 본문은 충돌하고 있다. 레위기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무조건 죽여야 하는데, 하나님과의 언약에 따르면 살인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구약 성서 내에서도 두 논지가 모순되므로 성서를 문자 주의적으로 해석하여 동성애를 무조건 죄로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또한, 성경에서 동성애 자체를 반대했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레위기가 쓰인 당시 사회는 남성끼리의 성행위가 굉장히 성행했다. 미혼 남성, 기혼 남성 구별 없이 남성과의 성행위를 즐기며 음란한 성 문화가 조성된 것이다. 레위기에서 금지하는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가정을 돌보지 않고 쾌락을 좇는 음란한 성 문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욱이, 개신교에서 모세의 율법보다 더 중요시되는 예수의 규범에는 동성애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 성교는 예수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예수는 미혼자들 사이에서 성적인 행위에 대한 비난은 없다고 했고 동성애와 관련된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즉, 신약성서에서는 동성애가 죄라는 신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일부 바울 서신에서 반동성애적인 진술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은 바울의 입장이지 예수의 뜻이 아니므로 그만큼의 권위를 가지기 어렵다. 


두 번째, 동성애는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행위이므로 죄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는 것 외의 모든 정액 방출은 나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인 결합을 제외한 것들은 자연과 반대되는 죄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녀 생산을 통한 인류의 번영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남녀의 성교를 통한 출산이 자연스럽다는 사상이 존재했다. 이를 기독교 교회에서 “알렉산드리아 규칙”(Alexandrian rule)이라고 부른다. 자녀 출산이 중요하며 자연스럽다는 시대적 상식은 곧 ‘출산을 전제하지 않은 성행위는 죄’라는 이데올로기로 이어졌다. 그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기독교 신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아퀴나스의 주장은 이러한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신학적 담론으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 사회학자 미셸 푸코는 국가가 의도적으로 출산을 위한 성행위는 긍정적으로, 그 외의 쾌락이나 정신적 사랑을 위한 성행위는 부정적으로 담론을 형성했다고 보았으며 이를 ‘성 담론’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여기고 동성애자들을 박해했던 것은 바로 사회적 ‘성 담론’의 산물인 것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들을 모두 다르게 창조하심으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셨다. 다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못하고, 성적 지향을 근거로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죄이다. 


마지막으로, 이렇듯 신학적으로 명확하게 죄라고 규정할 수 없는 동성애를 이유로 종교 활동에 제약을 부여하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다. 교회 내에서 또 다른 약자인 여성들에게 목사 안수가 일부 허용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다. 


그전에는 여성들이 성서를 근거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남성보다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감성적이기 때문에, 생리를 하므로 종교 지도자를 맡을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여성신학자들의 끊임없는 비판과 교회 내의 페미니스트들의 저항으로 기독교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여성은 일부 교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동성애자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이 종교 활동을 할 수 없는 성서적 근거가 시대착오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므로 비판적으로 해석되고 여성이 비로소 기독교 내에서 존엄함을 인정받은 것처럼, 동성애자도 이제 이성애 중심적인 성서를 극복하여 인격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와 권력의 산물인 텍스트를 근거로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분명한 죄이다. 기독교는 성서를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동성애가 죄로 규정될 수 있는 성서적 근거가 부족하고, 그렇기에 세례를 받거나 사제나 목사와 같은 종교적 지도자가 되는 데에 차별이 존재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휘날리는 6월, 교회는 이제 성 소수자들도 동등한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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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민 사무국 인턴 기자 vicky0616@naver.com
작성 2022.06.17 10:59 수정 2022.06.1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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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