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두 괴물 Two Monsters

이태상

 

2022년 6월 12일자 뉴욕타임스 일요판 평론 섹션 Sunday Review 오피니언 칼럼 '트럼프, 아메리카의 괴물 Trump, American Monster' 필자 모린 다우드 Maureen Dowd는 이렇게 적고 있다.  


지난 6월 9일 (현지시간) 열린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태' 진상조사위원회의 첫 공개 청문회는 "괴물 트럼프의 (정신병질의 정서 특성인 정서적 경험이 결핍되어 냉담하다는 뜻으로 CU특질 - Callous-Unemotional Traits으로  불리는 청소년의 비행,  반사회적 행동, 성인기 범죄 위험 변인) 냉담성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었고, 수많은 이 청문회 시청자들은 그(트럼프)가 형사범으로 기소 송치되어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을 거라며 '그를 가둬라.'  It was about Trump as a callous monster, and many will come away convinced that he should be criminally charged and put in jail.  Lock him up!"

[괄호 속 멘트는 이 원고 필자가 임의/자의로 추가한 것임]


지난 6월 8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칼럼 '제2의 핵무기 시대' 필자 정숙희 논설위원은 "한 미치광이의 손짓 하나가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허탈과 분노와 공포가 밀려온다. 부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인류가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두손 모아 빈다."고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인류 아니 지구의 종말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오지 않았나.  총격사건으로 그 축소판이 오늘날 하루가 멀다 하고 미국내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 이제, 2021년 8월 3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을 반추해보자. 


[이태상 칼럼] 코스미안주의(Cosmianism)로 극복해야 할 인류의 인종주의(Human Racism)
 

2021년 8월 2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칼럼 ‘트럼프와 백인 우월주의’에서 ‘폴 오’ 전직 교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미국인들이 죽은 남북전쟁이 1863년에 끝난 이래 아직도 그 전쟁의 중요한 이슈였던 노예해방 그리고 인권존중 이슈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사회에서 문제가 되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 남군 출신 장군이 전쟁 후 시작한 KKK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만행과 주로 남부에서 자행된 민간 백인들의 흑인살인(Lynching)이 정부 기관의 묵인하에 지속하여왔고, 존슨 대통령이 1964년 서명한 민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인종차별은 미국 전역에서, 특히 공화당이 강한 남부에서는 계속 진행 중이다.

 

이러한 백인우월주의가 아직도 미국사회에 그대로 백인들의 정신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이용해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대통령이 된 이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오바마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거짓 주장으로 백인들의 관심을 모으며, 미국 투표자 가운데 30% 정도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들을 집요하게 선동하여 자기세력의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된 후 숨어있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날개를 단 듯 미국사회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기관총으로 무장한 미 전역의 많은 자경단 그룹들이 트럼프의 묵인 하에 지방정부건물에서 무장시위 한다든지 민권운동 시위대를 공격하다가 급기야는 트럼프의 사주 하에 미 의사당을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산발적으로 인종차별 행위를 하던 이들이 드디어 정치세계 주류사회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무력으로 행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판단이 적중한 것을 눈으로 목격하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미국 내에 가시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지속해온 인종차별의 실상을 만천하에 드러낸 이가 바로 트럼프인데 사실 그는 이를 자신의 사욕 추구에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의사당에서 시작된 1월 6일 국회 불법진입사건 청문회가 지속되고 있다. 500명이 넘는 혐의자들이 법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이 시간에도 공화당 지도부와 트럼프 세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30%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6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한 이 미국 역사에 전무한 의사당 점거라는 반란을 좋은 사람들이 의회로 소풍 간 것이라고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9일 복싱계의 전설 무하마드 알리(73)가 ‘무슬림 입국금지’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10일(현지시간) NBC방송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알리는 9일 성명을 내 “무슬림은 자신들의 개인적 의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이슬람을 이용하는 이들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이 이슬람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일부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이 이슬람에 대해 배우지 못하도록 이간질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알리는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를 제안한 대선 후보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사실상 트럼프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는 또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도 비판했다. 그는 “나는 무슬림이다. 파리나 샌버너디노, 그 밖의 전 세계 다른 곳에서 죄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과 관련해 이슬람적인 것은 없다”며 “진정한 무슬림은 소위 이슬람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무자비한 폭력이 이슬람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을 안다”고 지적했다.


당시 트럼프는 ‘미국 무슬림 스포츠 영웅이 있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누가 있느냐’며 반박했지만 과거 알리 등 무슬림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사진까지 찍고 ‘친구’라고 한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사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해 (2015년) 5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대한 무슬림 스포츠 영웅과 함께 한 사진’을 게재하며 ‘우리는 친구’라고 말했다. 또 2007년 3월 트럼프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알리가 수여하는 ‘무하마드 알리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1964년 소니 리스튼을 7회 TKO로 물리치고 챔피언이 된 이후, 1978년까지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3차례나 지냈다.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였으나,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 “노예의 이름을 버리겠다”며 1964년부터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꿨다. 1967년 베트남전을 반대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해 헤비급 타이틀과 프로복서 라이센스도 박탈당해 3년간 링에 오르지 못했다. 1974년 자이레 킨샤사에서 조지 포먼을 8회 KO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오른 뒤 10차 방어에 성공했다. 1978년 레온 스핑크스에 판정패해 타이틀을 잃었으나, 그해 재대결에서 이겨 3번째 타이틀 획득에 성공한 뒤, 이듬해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했다.

 

이후 1980, 81년 재기에 나서기도 했다. 영화 <록키>에서 발 빠른 흑인 챔피언 ‘아폴로’의 실제 모델이다. 프로복싱 통산전적은 56승(37KO)5패. 1999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와 BBC가 선정한 세기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 백악관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인 자유훈장을 받았다. 1980년대 초부터 파킨슨병을 앓다가 2016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다.

 

12살 때 복싱에 입문하여 18세에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 곧이어 프로로 전향, 1964년 세계 챔피언이든 소니 리스톤을 7회 TKO로 물리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으나 그 뒤 1967년 월남전 참전 거부로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했다가 1970년 다시 링으로 돌아와 1974년 조지 포먼을 꺾고 세계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 그 후로 은퇴, 복귀를 되풀이하다가 1981년 61전 56승(37KO) 5패를 기록하고 링을 아주 떠난 ‘떠벌이’ 알리는 권투 경기장 사각의 링 위에서 상대방 선수와 싸웠다기보다 세상이란 링에서 인간사회에 만연하는 위선과 독선이라는 색안경을 낀 관객들을 상대로 맞서서 싸웠다.

 

오늘날 우리 세계에는 두 백색 악한이 있다. 하나는 소련의 백색 악한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백색 악한이다. 이 둘이 싸우기 시작하면 우리 작은 유색인종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된다.

 

이것은 1980년 초 전 미대통령 커터의 특별외교사절로 아프리카에 도착한 알리의 발언이다. 그의 유명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불같이 쏘는’ 스타일로 그는 세계의 두 거인을 링 코너로 몰아넣고 보기 좋게 더블 잽을 먹였다. 두 백색 골리앗 중 어느 쪽이 이 쪼그만 깜둥이 소년의 고무줄 새총이 아닌 입줄 말펀치를 맞고 꿈적이나 했을까. 모르긴 해도 그를 수행했던 미 국무성 관리들은 아연실색했으리라.

 

미국이 주동한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에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동조를 얻으라고 파견된 알라가 아프리카에 도착해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개구일성開口一聲 말하기를 “잘못된 일을 위해 내가 잘못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뉴질랜드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스포츠 교류에 항의하는 뜻에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을 보이콧했을 때 동조하지 않았던 미국인데 이번에는 미국이 보이콧하는 올림픽에 왜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불참해야겠냐는 기자들 질문에 알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이 좋은 질문 해줘서 정말 고맙다. 당신들이 날 깨우쳐줬다. 같은 내 형제 유색인종에게 나는 배신자가 될 수 없다. 잘못인 줄 안 이상 난 당장 이 여행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카터 대통령에게 따져봐야겠다. 아직도 인종차별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어째서 미국이 계속 경제적 및 기타 교류를 하고 있는가를.”

 

‘나비같이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 말고도 ‘난 약藥이 다 병나도록 지독하다’는 그의 말 한두 마디로 세상 그 어떤 장수의 ‘넋’도 빼 ‘넉-아웃Knock-Out’ 시킬 수 있었으리라.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사람이 될 필요 없다. (I don't have to be what you want me to be.)라고 그의 부모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알리가 한 말대로 우리도 한반도라는 땅에서 같은 민족끼리 ‘골빈당’처럼 치고받는 일이 없어야겠고 우리 모두 각자가 자기가 원하는 사람 ‘골찬당’ 아니 사랑으로 ‘가슴찬당’이 돼야 하리라.

 

어떻든 백인들의 우월감에서 발생하는 인종주의(racism)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의 우월감에서 야기되는 인류의 인종주의(human racism)의 일부라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우리 단군의 홍익인간과 홍익만물 그리고 우리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에서 발현된 코스미안주의(Cosmianism)밖에 없으리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을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하고 또 사람의 처지를 바꿔놓으면 그 처지에 동화되어서 하는 것이 같게 된다는 뜻으로 역지개연易地則皆然이란 말이 있다. 이 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두 마디만 이해하고 마음속 깊이 되새긴다면 우리 모두 철이 좀 들 수 있으리라. ‘철들자 망령’만 아니라면 말이다.

 

몇 년 전 본 한 짤막한 기록영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영국통치 2백 주년을 맞아 호주 원주민 단체가 만든 다큐멘터리로 그 제목은 ‘바바키우에리아Babakiueria’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현대 호주 백인 한 가족이 단란하게 바닷가에서 바비큐 불고기 파티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방색 카키 군복을 입은 원주민들이 배를 타고 등장한다. ‘신대륙을 발견해 신기해 하는 눈으로. 오만방자하게 거들먹거리는 우두머리가 하선하면서 천천히 묻는다.

 

“이곳을 너희들은 뭐라 부르느냐?” 놀라면서도 순진하게 반기는 기색으로 백인 가족의 가장이 대답한다. “뭐라니요? 바비큐하는 곳이지요.” 그러자 원주민 두목이 “괜찮은 토착명이군” 그렇게 중얼대고는 그의 부하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큰소리로 외친다. “나 이곳을 Babakiueria라 이름 지어 부르겠노라!” 그리고는 깃발을 꽂는다.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선 원주민 정복자들의 의도는 좋으나 잘못된 인식으로 집행 실시되는 정책 때문에 점점 더 절망적인 상태로 전락하는 백인가족을 추적한다. 정복자들은 재향군인의 날 시가행진을 금한다. 전쟁을 미화하고 칭송하는 만행이라며.

 

백인 문제 담당 부서 장관인 한 원주민은 우월감을 갖고 자못 은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로 생색내듯 미소를 띠고 백인들의 의식화된 축구, 폭도들의 난동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백인들의 야만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백인들의 거센 항의 따위는 아랑곳없이 모든 고속도로를 다 파헤쳐 그 자리에 푸른 초원과 나무가 무성한 숲을 일군다.


그리고 백인들에게 원주민 문화를 소개하고 가르친다. 그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대가족제를 해체, 분산시켜 척박한 불모지로 내몰아버리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마치 백인들의 처지를 부러워하듯 그는 한숨짓는다.

 

영화는 유리 깨지는 소리로 끝난다. 백인가족의 10대 아들이 극에 달한 분노와 절망감에서 돌을 던진다. 자신의 가족과 백인들의 생활방식에 갑자기 일어난 엄청난 변화에 대한 항의로. 교육받지 못해 아무런 자원도 없이 그는 한평생 범죄와 알코올에 찌든 빈곤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났을 뿐이다.

 

이처럼 ’바바키우에리아‘는 주객이 전도된 역사적인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백인식민제국주의의 결과와 그 비극적인 결말을. 다른 사람의 동의도, 참여도, 그들에 대한 문화적인 이해도 없이 그들을 계몽하고 개명시켜 그들의 운명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초래한 미증유의 대참사와 이를 촉발시킨 독선과 위선을 고발한다. 이렇게 이 영화는 하나의 객관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단지 호주에만 국한해서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희극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비극”이고 “세상에 삶과 죽음 그 밖에는 아무것도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Comedy is tragedy that happens to other people.“ 과 “Nothing is a matter of life and death except life and death.”

영국 작가 '앤젤라 카터 Angela Carter’의 '슬기로운 아이들Wise Children'에서 이 작품의 화자인 도라 찬스는 격언 같은 말을 한다. 그 한 예로 권투경기를 들 수 있지 않나. 권투선수에게는 사생관두死生關頭의 죽음과 삶이 달린 위태한 고비가 관객에게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되니 말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2.06.21 09:50 수정 2022.06.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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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