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를 찾아 달려온 40년, 태권도 9단의 무림고수

"한 우물을 깊게 파면 솟구치는 용천수를 만날 수 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지만 한 분야에 4년도 아니고 40년을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림의 고수’라고 칭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10년 정도 열정을 다해 내공을 쌓는다면 절대지존은 아니더라도 생활의 달인 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뀌는 40년 동안 태권도 한 분야에 열정을 다해 살아온 무림의 고수, 백국현(60)씨의 휴먼스토리가 매우 궁금해진다.  

 

더욱이 그는 태권도 공인 9단이라는,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도 어려운 괄목상대할 결과물을 얻었기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7단에서 9단에 오르기까지 최소한 24년이 걸리는 태권도 최고수 자리에 백국현이라는 이름을 올린 것이다.

국기원 설립 이후 9단을 취득한 고단자는 전 세계에 1100여명에 불과할 만큼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쳐 무림의 고수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태권도라 하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남성들이 필수로 배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예와 도를 중시하는 한국 전통 무술이다.

 

청소년기에 태권도를 가르쳐 주었던 사범들은 거의 공인 4단이었기에 당연히 공인 4단이 최고로 높은 단계라고 생각한다.

태권도는 여의도의 모 정치인들처럼 말로 하는 추상적인 정치 9단이 아닌,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의 합일점이 되었을 때 얻는 실질적인 호신술의 결과물이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비로소 공인 1단이라는 결과물을 얻는데 그것도 아홉 계단을 올라간 최고봉인 공인 9단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태권도계의 큰 족적을 남긴 것임에 틀림없다.

 

백씨가 태어난 곳은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에서 나오는 용인에서 태어났다.

현재 용인시 (龍仁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동남부에 있는 특례시로 3개의 행정구와 4읍 3면 28행정동을 관할하는 도농복합도시로 발전했지만 당시에는 조그만 리(理) 정도의 규모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백씨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3학년 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시작해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억지로 태권도를 한다기 보다 재미있게 논다는 기분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동년배와 대련을 해도 상대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날렵한 몸으로 뒤돌려 차기를 하면 모두 놀라 도망갈 정도였다.

 

결국 마음을 굳히고 초등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마음을 먹고 수련을 하니 형식적으로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그 때 그는 자신을 가르치던 사범을 존경했기에 이 다음에 커서 훌륭한 사범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양자물리학에서 생각이 현실로 나타난다고 했듯이, 열정적으로 태권도를 하다 보니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었다.

결국 그는 1981년 전국 신인 종별 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 2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뤘고, 그 결과로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대학 재학 시절 지도자 교육을 이수한 백씨는 은사 추천으로 포곡초등학교 태권도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과 학업을 병행했다.

백씨가 포곡초에 코치로 오면서 경기도 우승은 물론, 전국대회에 입상하며 7명의 전국 어린이 태권도왕을 배출하는 등 태권도 명문 학교로 발돋움시켰다.

 

 

또한 백씨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은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 제13회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와 월드컵국제태권도대회,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무주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백씨는 용인시태권도 협회 간사부터 전무,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용인시 태권도 발전에 기여했으며 2009년 용인시청 감독으로 임명되어 10여 년 간 선수 육성과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하며 용인시의 태권도를 알렸다.

 

더욱이 세 차례에 걸친 월드컵 대표 코치, 전국체전 경기도 대표팀 감독을 맡는 등 불모지였던 용인시 태권도계를 업그레이드 시킨 백국현 감독은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한 우물을 40년 동안 파서 솟구치는 용천수를 만난 백국현 감독, 지금의 결과를 얻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 왔지만, 앞으로 남은 또 다른 인생 2막의 결과물을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창대하리라’

작성 2022.06.22 21:01 수정 2022.06.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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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