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근현대사에 매달린 통속 은어(隱語) 비어(鄙語)들에 아물린 대중가요 유행가를 되새김해보면, 나라와 민족의 아픈 역사 마디미디와 일그러진 흉터를 헤아려 볼 수가 있다. 6.25 전쟁 끝자락에 탄생한 <에레나가 된 순이>가 이런 곡조의 백미(白眉)다. 북한 공산집단이 무력 남침을 해 온 6.25 전쟁은 발발 72년, 휴전협정 체결로 끝나지 않은 상태로 총을 겨누고 있은 지 69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이 비극이 품고 있는 민족의 상처는 어이할까. 이러한 충돌과 마찰 시대이념과 대중들의 한은 절절한 대중가요 유행가로 환생한다. 공자가 설파한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는 말의 역사 속 사례다. 임진왜란을 품고 있는 노래는 <논개>·<계월향>·<간양록>·<난중일기>가 있고, 6.25 전쟁에 매달린 노래는 <슈샤인 보이>·<전우야 잘 자라>·<굳세어라 금순아>·<에레나가 된 순이> 등이다. 이런 면에서 1953년 함경북도 나진 출생 실향민 한정무의 목청에 걸려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누이들을 울렸던 <에레나가 된 순이>는 현대사의 상처를 아문 곡조다. 전쟁고아와 미망인과 실향민들의 생계와 관련하여 생겨난 호구지책(糊口之策) 생존의 길을 헤매던 어둠침침한 시절의 서글픈 서정,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냐, 이름까지 에레나로 바꾼 내 사랑 순이야~.
▶ https://www.youtube.com/watch?v=JrlF-TELMhg
그날 밤 극장 앞에서 /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 실패 감던 순이가 다홍치마 순이가 /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냐 // 그 빛깔 드레스에다 / 그 보석 귀걸이에다 /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순이 / 시집갈 열아홉 살 꿈을 꾸면서 / 노래하던 순이가 피난 왔던 순이가 / 말소리도 이상하게 달라진 순이 순이 / 오늘 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더냐.
<에레나가 된 순이> 노래에서, 에레나는 그 황막하던 시절 주한 외국군을 상대로 접객을 하던 여성, 양공주의 애칭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던 서글픈 시대의 유물이다. 이들은 그 시절 전쟁통에 핍박해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한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6.25 전쟁 중에 발생한 20만여 명 미망인, 전쟁고아 10만여 명, 이산가족 1천만여 명의 목숨 줄 상당 부분이 이들의 생계 활동에 매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우리 역사의 근·현대 분수령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태평양전쟁 주범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일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항복 서명을 세 번 했다. 그해 9월 2일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미 해군 미조리함에서 육군참모총장이, 외무성에서 외무대신이 각각 일본 정부를 대표하여 무조건 항복 조인서에 서명했다. 이어서 9월 9일 주한 미군정청 사령관 미국 육군 제24군단장 하지 중장 앞에서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총독 아베가 광화문 조선총독부 2층 제1회의실에서 항복 서명했다. 그날 오전 9시 30분경이다.
그로부터 3년여의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그 시절은 대한민국 한반도 허리에 38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구의 위도선을 기준으로 상극적인 이념의 철갑 띠가 휘감긴 때다. 이때부터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까지를 해방정국이라고 하고, 이어서 3년 1개월 1,129일간의 동족상잔(同族相殘) 불포성 잿더미가 조국 하늘을 뒤덮었었다. 해방정국기에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은 17만여 명, 6.25 전쟁기에 우리나라를 지원한 UN군은 연인원 190만여 명이 넘는다. 이들은 미8군 무대의 근거지가 되었다. 시대 상황과 맞물린 서양인을 상대로 펼쳐진 대중문화예술 시장이었다.
1953년 이러한 시대상을 엮어 낸 노래가 <에레나가 된 순이>다. 손로원이 노랫말을 쓰고 한복남이 곡을 붙여서, 본인이 운영하던 도미도레코드에서 6.25 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실향민 한정무(1921~1960)의 목청에 실었다. 이 노래는, 1959년 안다성(1930~청주 출생)이 리메이크하여 더욱 유명세를 탄다. 이때 노래 오프닝 대사가 낭송된다. ‘전쟁의 뒤안길엔 비극도 많았지 / 이런 눈물겨운 해후도 있었더란다 / 헬로우 헬로우~ 헬로우 하이~ / 하이 순희 순희 날 몰라 보겠어? // 사람을 잘못 봤지예? / 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 니가 웃겼찌비 하하하 / 나는 에레나가 아이겠소 / 하아하하하하’이 곡은 1953년 2월에 만들어졌다. 한복남의 아들 작곡가 하기송이 2014년 공개한 아버지의 친필악보가 그 증거란다. 가요곡이라고 적힌 메모, 가요곡은 일제 말기에 유행가 대신 쓰였던 용어다. 2박자 탱고 리듬의 이 노래는 <잊지 못할 순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원곡 제목이리라.
<에레나가 된 순이> 노래 속의 양공주는 양갈보·양색시·유엔마담·히빠리·주스걸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일본군 기지촌에서 이어졌으며, 당시 주한 미군은 이때 작성된 접객 여성 등록 검진규정을 유지하였단다. 미군정청 간부 80%가 조선총독부에서 유임된 근무원이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인원들의 직책 유지가 친일 잔재를 일소하지 못한 서글픈 역사의 갈피이다. <에레나가 된 순이>는 미8군 무대에서 불린 노래의 서단(緖端)으로 자리매김하여도 되리라.
우리나라 미8군 무대는 우리 뮤지션(기획사, 연주가, 가수, 대중예술인 등)들의 거대한 음악시장이었다. 이 무대는 우리나라에 서양 군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미군정기(1945.9~1948.8)와 6.25 전쟁(19506.~1953.7) 당시 우리나라를 지원한 미군과 UN군을 상대로 펼쳐진, 공연이나 그들 무대에 출연한 대중문화예술의 천이(遷移)와 혼융(混融)의 장이었다. 이 무대는 1955년 미8군사령부가 일본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전해오면서 주둔했던 30여만 명의 미군을 상대로 본격화되었으며, 베트남 전쟁터(1964.8~1973.3)로 그중 25만여 명이 이전해 갈 때까지를 미8군무대 제1기, 그 이후 남은 5만여~2만여 명을 상대로 한 무대가 제2기로 통념해도 무방하리라.
이 노래를 작곡한 본명 한영순. 한복남은 1919년 평남 안주에서 출생 해방 직후 월남하여 부산 아미동에 정착했다. 1947년 김해송의 주한미군 위문공연단체 KPK악극단에 입단하여 6.25 전쟁을 맞게 된다. KPK악극단은 1945년 해방광복 후에 활동한 대표적 악극단, 악극단장 김해송(K), 연출가 백은선(P), 무대연출 김정환(K)의 성 이니셜에서 따온 이름이 KPK이다. 설립일은 1945년 10월 18일 부민관에서 주한(남한) 미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위문공연 일로 보지만, 설립일은 그 이전일 텐데 기록을 찾는 일은 숙제다.
주요 단원으로는 최병호·강준희·계수남·전만경·이난영·장세정·나성려·심연옥·홍청자·전천남·전해남·전우봉 등이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이인권·백년설·남인수·윤부길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주요 공연은 1947년 <풍차 도는 고향>·<남편의 고통>·<천리춘색>, 1948년 <무덤에서 나온 사나이>·<천국과 지옥>·<남남북녀> 1949년 <아리바바>·<칼멘 환상곡>·<로미오와 줄리엣>, 1950년 <배뱅이 환상곡> 등이 있다. 단장 김해송은 대규모 신작 공연과 독창적 창작극 등 새로운 악극을 시도했으나 6.25 전쟁 때 납북되었고, 그 후 이난영이 이 악단을 이끌었다.
작곡가 한복남은 6.25 전쟁 중 부산 국제시장에서 바느질을 하는 재봉틀 장사를 하면서 축음기부속품도 취급했다. 이때 녹음기를 구입했다. 마그네틱 타입, 미국산 리베라·암팩스·모타볼 등등. 그는 이 녹음기를 이용해서 1951년 말 도미도레코드사를 차렸다. 이때 만든 노래가 <에레나가 된 순이>다. 그는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나 특별한 소질로 많은 히트곡을 냈다. 1960년대에는 자작곡 <엽전 열 닷 냥>으로 히트하였으며, 1970년대까지 방송활동을 하다가 1991년 향년 73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1911년 철원에서 출생한 손로원의 행적은 분명치 않다. 서울 출생설도 있다. 그는 전국을 떠돈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이었단다. 손로현·손회몽·불방각·손불경·손영감 등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면서 <페르시아 왕자>, <샌프란시스코>, <백마강>, <비 내리는 호남선>, <홍콩 아가씨>, <경상도 아가씨>, <봄날은 간다> 등을 남겼다. 노래 속의 에레나는 원래 이름 순이를 되찾았을까. 70여 년 전 부산 국제시장 밤거리 캬바레 불빛이 눈에 아삼삼하다.
백성(百姓, 국민)들이 위탁해 준 권력을 집행하는 치자(治者)들이 나라를 반듯하게(국태민안, 國泰民安) 번영시키지 못하면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들의 간섭·관할·통감·피압을 받는다.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일본으로 압송되어 그들 도자기 시조가 된 조선 도공들의 한 맺힌 노래(조선가·학구무가·어신행축사 등)이 그 예이고, 청나라의 공격을 받은 민족의 수치 병자호란(1636~1637)에 매달린 공녀(貢女)의 상처가 그 예다.
우리 땅에서 펼쳐진 청일전쟁(1894~1895)·러일전쟁(1904~1905) 또한 치자(治者)와 민자(民子) 들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해댈 일만은 아니다. 경술국치(1910~1945) 이후 내 나라에 살면서 일본의 굴속(詘束)에 매달린 징병·징용·근로정신대·종군위안부 등등이 그렇다. 민족의 동질성과 이념 상극성의 상수(常數)와 변수(變數)를 아우르는 대한민국통일방정식(大韓民國統一方程式)은 언제 풀릴까. 그 어떤 지도자가 풀 수 있을까. <에레나가 된 순이> 노래를 코스미안뉴스에 매달면서 큰 숨을 들이켜 다시 내뿜는다. 그날이 바로 대한민국의 코스미안이다. 아~ 고대하는 코스미안, 코스미안뉴스여~.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유차영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