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생업이 있어서 가급적 오전 시간의 강의를 선호한다. 출근 시간이 지난 후 한가해진 도로를 운전하는 편안함도 좋다. 퇴직을 앞두고 서너 해 전부터 꾸준히 준비해 왔는데 그간 코로나19 때문에 감염을 우려하여 화상 강의 등으로 진행하다가 요즘에 와서야 비로소 대면강의를 다닌다. 물론 강의 시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예방하기’가 먼저다.
학교폭력, 보이스피싱 예방 등을 비롯한 범죄안전과 교통, 작업안전, 낙상사고 예방 등 분야도 많고 대상도 어르신, 다문화가족, 장애인 등 많은 분들을 만난다. 먼 거리를 가서 1시간 강의하고 돌아올 땐 치솟는 기름값 생각에 아쉬움도 있지만 새롭고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행운도 고맙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에게 고마움이 더한다.
얼마 전엔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한 교통안전 강의를 했고 어제는 재활센터 장애인들과 작업안전에 대하여 같이 얘기하고 왔는데 다녀올 때마다 뿌듯함과 고마움을 가득 안고 온다. 지난번 강의 때 다문화가족 중 두 사람이 갓난아기를 안고 왔었다. 한 아기는 강의를 듣는 엄마 품에서 내내 잠을 잤고 다른 한 아기는 새까만 머리숱으로 가짜 젖꼭지를 물고는 호기심의 눈동자를 돌렸다.
그런가 하면 오십을 넘긴 듯한 다문화 여인은 ‘점멸신호’가 무엇이냐며 무척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온다. ‘아차, 또 나의 입장에서 설명했었구나’ 순간순간의 크고 작은 질문들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이국(異國)에서 시집을 오거나 취업을 하여 돈을 벌기 위해 온 그들의 투쟁은 진지하다. 조금은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면서도 여느 강의실에서나 보게 되는 졸고 있는 수강생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또 가끔씩은 얘기를 하다 보면 몇 해 전 어느 코미디 방송프로그램에서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 하며 웃기던(어쩌면 우리들이 본질을 간과하고 그냥 웃기만 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생각나곤 한다. 각종 지원해주는 강한 자(내국인)의 입장에서는 배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것이 모자라고 외로운 다문화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겠다 싶을 때도 있다.
벌써 10여 년 전이다. 다문화, 탈북민 업무를 담당할 때 한국으로 시집온 지 10년이 넘도록 친정(대부분이 동남아시아 나라)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관련 기관들과 협의하여 한 해에 네 가족씩(부부, 자녀) 친정나라에 보내준 일이 있었는데 다녀와서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즈음 새로 태어난 탈북민 아기들에게는 미래의 통일세대라는 생각(또는 나의 욕심)에 ‘출생 축하’ 이벤트로 관내의 방위산업체와 연계하여 축하금과 함께 매월 기저귀값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으면서 혼자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처럼 새로 만나는 인연들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과거의 추억을 소환시켜서 내 삶의 여백을 더 넓게 해 주어 고맙다. 욕심 같아서는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내고 절체절명의 나라를 구한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인 ‘이순신 정신’ 강의도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 무료로 라도 버선발로 뛰어갈 것이다. 밖엔 반가운 비가 내리고 거름 끼를 잔뜩 머금은 벼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이렇듯 우리들의 모든 삶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