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W=양병현 칼럼]
[세상소리뉴스=VOICE OF WORLD] 인도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는 힌두교의 가르침이 주제이다. 모두 인도의 위대한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얘기의 내용과 구조는 늘 우리가 보고 듣는 형태이다.
우선 “마하바라타”는 바라타족의 형제 간 왕권 다툼과 전쟁에 관한 얘기다, 물론 고대 그리스 이야기 꾼 호머의 대서사시인 “일리야드”와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영웅적 캐릭터들 간 긴장감이나 긴박한 얘기 정도는 아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라’는 인도적 가르침이 얘기의 방향을 결정한다. 힌두교의 생활과 신앙이 얘기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힌두 방식에 관한 메시지를 이야기로 전달하고 있는 점에서 이야기의 힘은 커 보인다.
“마하바라타”는 고대 인도의 한 왕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왕권은 주로 장남에게 주어지게 되었으나, 장남이 맹인인 관계로 차남에게 왕권이 승계된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인도인들은 이 사실적인 사건을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들 이야기 방식으로 엮고 그 내용에 자신들이 바라는 정의를 제시한다. 힌두 화법 얘기다. 고대 사회라 왕족과 신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일 뿐이다.
인도는 ‘카스트’ 계급사회라 왕족 얘기는 당연히 크샤트리아 계층이 주인공이다. 브라흐만 계층으론 승려가 등장하며 종교적인 메시지를 계율처럼, 혹은 법처럼 설명한다.
물론 현실적인 수호신은 유일신이며 절대신 브라만이지만, 훨씬 인간적인 모습의 신이 등장한다. 이 신의 이름은 비슈누이다. 지배계층인 크샤트리아 수호신이다.
기원전 천년경 인도 북쪽에 살던 쿠루족과 판두족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십팔 일 동안 싸운 끝에 판두족이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모두 바라타족의 갈래로 사실상 왕국이 분열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장님인 형이 속한 집단을 쿠루족이라 하고, 동생이 속한 집단을 판두족이라 부른다. 형에겐 자신이 맹인이라 왕권을 계승할 수 없다는 법이 존재한다. 당연히 동생에게 왕권이 계승되어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도에는 지금도 수도사처럼 일상을 멀리하고 고행의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 모습이 스토리나 영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이 고행자들은 주로 40대가 넘어 보이는 장년층이다.
이들은 세상의 일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수행을 위해 산으로, 특히 히말라야 산으로 들어가는 수행자들이다. 그 수행 전형은 이 옛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얘기 속 동생도 나이가 40이 넘자 왕권을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영원한 해탈의 길에 나선다.
그러자 장님이었던 형이 낳은 자식들이 반발한다. 당연히 본래 아버지의 왕권이었으니 자신들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사촌 형제들 간에 왕권 다툼이 벌어졌다.
우스운 대목이기는 하지만 장님의 아들들이 삼촌의 아들들에게 내기를 제시한다. 이기는 자가 일정 기간 왕국을 통치하고 진자는 그 기간 동안 나라를 떠나 돌아오지 않기로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장님 형 측의 아들들이 속임수를 써 삼촌 측의 아들들을 이긴다. 약속대로 삼촌 측 판두족은 망명 길을 떠나게 된다.
망명지에서 삼형제인 이들은 우애가 좋았든지, 한 여자를 셋이 사랑을 하며 함께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 망명 기간이 다 되어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장님 측 아들들인 쿠루족에게 왕위를 되돌려 받기 위해 길을 나선다.
누가 왕위를 돌려주겠는가. 셰익스피어 비극에 나오는 영국의 수많은 왕족들이 왕권을 둘러싸고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던가. 중국이나 우리 고대사부터 조선시대까지 왕권에 대한 형제간의 싸움은 흔한 얘기다.
돌려주고 싶지 않으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서로 가진 세력과 병력으로 전장에 대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앞을 바라보니 모두 형제들이다. 하지만 나라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는 명분이 양측에 있다.
하지만 전쟁 장면은 사실 많지 않고 인도의 오랜 신화와 전설을 비롯해 종교철학, 도덕, 사회 제도들에 관한 숨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유명한 ‘사비트리 공주’의 얘기로 그녀가 남편을 죽음에서 구한다는 스토리도 나온다.
전쟁 이야기라 서사시 형태여야 하는데도 이야기 형태로 십만 송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다. 부록으로 “하리바니사”가 수록되어 있다. 이 부분만 분량으로 일만육천 여에 달하는 시이다.
전투에 나서는 모두가 사촌 형제들이고 그 형제 편에 선 적들도 모두 자신의 친척이나 인척들이다. 해서 출전을 망설이는 주인공인 왕자 아르쥬나가 등장한다.
그가 크리슈나와 대화하는 장면은 고대 서사시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성웅 간디는 이 “바가바드 기타”를 평생 삶의 동반자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잘 알려진 인도의 고전이다. 간디 역시 브라흐만 지배 계층의 후손이다.
얘기에는 크리슈나가 싸움을 망설이는 아르쥬나에게 크샤트리아 왕족 계급으로서 마땅히 사회와 나라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무를 설명한다. 고통 속에 고민하던 아르쥬나는 할 수 없이 싸움에 나서며, 18일 간 전쟁 끝에 결국 판두족이 이겨 부왕의 왕권을 지킨다.
전쟁 얘기보다는 지배계층의 의무와 정의를 종교철학적인 입장으로 설명하고 있는 인물이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이다. 세속 이야기에 신들이 인간으로 변신해 개입하는 장면은 그리스 신화에서 너무 익숙한 화법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행복한 나라를 다스렸다는 줄거리다. 여기에도 나이가 장년이 되자 모두 왕권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히말라야 산으로 고행에 나서는 순례자의 길을 선택한다.
인도 얘기들이 대부분 동적이라기보다 정적이다. 특정 계층이 해야 할 의무와 도덕, 수행 화법이 이야기의 형식과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이 이야기 유산은 인도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요즘 주변에서도 히말라야 순례를 떠나는 한국인들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 가정과 사회를 완전히 떠나 수행을 위해 산으로 들어가 고된 수행자의 길을 걷는 모습이라기보다 심신 치유 의미가 크다 하겠다.
양병현 Ph.D.
국민교육혁신포럼 회장
현주 기자 scokopower@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