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미안의 그냥 저절로 도정道程 Cosmian's Path: To Each Its Own

이태상

 

청소년 시절 함석헌 선생님 외에 내가 가장 존경한 또 한 분이 있는데 우승규 (1903-1985) 선생님이시다.  동아일보 사옥 길 건너 있던 '자이언트' 다방에서 자주 뵈었고 댁으로도 초대해주셔서 몇 번 찾아 뵈었다.  자유당 시절 거침없이 직필直筆을 휘두르신 한국 언론계 원로 논객이셨다. 특히 우 선생님의 호 '나절로'가 나는 아주 좋았다.  우주의 도통군자道通君子다우셨다.  우 선생님 내외분께선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셨다.

이 분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간단히 소개해보리라.

해방 이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코리아헤럴드 사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호는 나절로. 출생지는 서울.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의 청년당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1923년 상해 혜령전문학교(惠靈專門學校)를 졸업하였다. 초라한 등사기 한 대를 가지고 혼자 독립운동의 울분을 토하는 임시정부의 신문을 발행하였다.고독한 문학청년으로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루소(Rousseau, J. J.)의 자연주의의 신봉자인 그는, 그러한 성품과 가치관 때문에 당시 저명한 한글학자인 선배로부터 ‘나혼자’라는 뜻의 ‘나’와 자연 그대로라는 의미의 ‘절로’라는 우리말이 합성된 ‘나절로’라는 호를 선사받기도 하였다.1931년 귀국하여 『중앙일보』·『조선일보』·『매일신보』 등의 기자로 일하다가 1947년 경향신문사에 입사, 편집부장 겸 편집국 차장을 지내다 곧 편집국장이 되었다.
1948년 정부수립 후 이범석(李範奭) 내각이 조직될 무렵 무게 없는 각료의 이 얼굴 저 얼굴들이 마음에 들지 않자 「李承晩대통령에 逆耳의 일언」이라는 제목으로 5회에 걸쳐 논설을 집필하였다. 부제(副題)가 ‘친일파·민족반역자·모리배 문제에 대하여’였던 이 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고하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초대 이범석내각의 해부」라는 연속 논평을 쓰다가 4회째에 게재가 거부되었다. 이 글은 3회까지 이범석 총리(국방부장관 겸임)를 비롯하여 외무부장관 장택상(張澤相), 내무부장관 윤치영(尹致映) 등의 인물평이었고 4회째는 상공부장관 임영신편(任永信篇)이었는데 이범석 총리의 지시로 명동성당을 통해서 게재중지 명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1949년 『시사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 겸 논설위원을 거쳐, 1952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평화신문』 논설위원을 지낸 다음 1963년 『국도신문』 주필이 되었다. 1954년에서 1966년까지 『동아일보』 논설위원·편집국장·편집고문·이사 겸 논설위원실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66년 국제신문인협회(IPI) 회원, 196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명예회원이 되었다. 저서로는 『신문독본』· 『나절로독본』 등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우승규(禹昇圭)]

자, 이제, 지난해 2020년 4월 2, 3, 4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항간세설 칼럼 글 <'그냥'의 미스터리 I - III> 우리 곱씹어보자.

[이태상의 항간세설] <‘그냥’의 미스터리(I)>

스타워즈(Star Wars)에 출연했던 나탈리 포드만(Natalie Portman 1981 - ) 주연의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 개봉 2010년)’도 있지만 경제학 용어로 ‘검은 백조(black swan)’라 하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나는 현상’ 을 의미한다.
 
16세기 영국에서 특정 이론을 ‘검은 백조(black swan)’로 빗대어 희지 않은, 우리말로 고니라고 부르는, 백조(白鳥)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기에 생긴 말이라고 한다. 그러다 17세기 호주에서 검은 색깔의 백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정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Galileo Galilei1564-1642)는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지 않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폴리머스(polymath-많은 지식을 가졌다는 그리스어 polumathes에서 유래한 말로 다수의 주제 영역에 걸쳐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을 지칭함) 폴란드 태생의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1473-1543)의 금지된 이론을 지지했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비참한 노후를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그때 재판을 받았던 교황청으로부터 350년 뒤 1992년 ‘사과’의 말을 듣게 되지 않았는가.
 
이는 비단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백인들 전용 스포츠이던 골프와 테니스에서 비백색(非白色) 흑인 타이거 우즈(Tiger Woods 1975 - )를 비롯해 윌리엄스 자매(The Williams sisters: Venus Williams 1980 – and Serena Williams 1981 - ) 그리고 양용은, 박세리, 박인비 등 한국 골퍼들이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미국의 흑인 발레 무용가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 1982 - )가 2007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re) 솔리스트(프랑스어: soliste)가 되었다가 2015년 최초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흑인 수석 무용수 발레리나로 탄생한 것은 백인 세상인 발레계에서, 마치 미국 정계에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당선은 물론 재선까지 된 일 못잖게,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었다.
 
또 어디 그뿐이랴.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한반도에서 구호물자로 ‘입에 풀칠’이나 하고,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 끓인 ‘꿀꿀이죽’으로 연명해가며 ‘고아수출국’으로 이름난 한국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한 데다 미군들이 코를 막고 ‘꿀달구지(Honey Wagon)’라 부르던 똥 달구지나 끌던 한국의 현대/기아 자동차가 온 세계를 누비게 되었는가 하면 한국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K-Pop을 위시(爲始)해 BTS의 인기가 옛날 영국의 비틀즈(The Beatles) 인기에 못지 않지 않은가. 게다가 현재 온 인류를 공황장애와 마비 상태로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역병을 다스림에 있어 대한민국이 최고의 ‘선진국’으로 전 세계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인간 세상에서 ‘정답’이란 없고 ‘그냥’이란 미스터리 (mystery)만 있는 것이리라. 예부터 소위 일컬어 ‘정답(正答)’ 이란 게 흔히 기득권자의 독선과 독단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의(主義)와 주장(主張)이 아니었던가.
 
2015년 7월 6일자 미주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페이지에 실린 문화산책 칼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서 김은자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누구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또한 나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존재감의 상실이다. 문학의 힘은 세상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곳곳에 널려 있는 투명인간들이여,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쳐 보자. 누가 그랬던가? 사람은 사랑받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보인다. 이제야 당신이 보인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 (멀리하기)’라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쳐 보자’를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각자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우선 진정한 자아를 먼저 발견함으로써 가족과 이웃, 다른 사람들과 가슴으로 손을 맞잡고 마음의 눈을 마주쳐 볼 수 있으리라. ‘사랑받고 있을 때’보다 ‘사랑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있을 때가 그 더욱 행복하지 않으랴.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될 테니까.
 
지난 2015년 6월 19일 미국 사우스 캐로라이나주(州) 노스 챨스톤 법정에서는 수요일 바이블 클라스 성경 공부가 진행 중이던 흑인 교회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백인우월주의에 세뇌된 청년 딜런 로프(당시 21세)의 보석 여부를 심리하는 약식 재판이 열렸다. 법정 대형 스크린에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범인 로프가 화상전화로 연결되었고, 살해당한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가해자에게 직접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한 사람씩 유족들의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범인에게 중계되었다.
 
“내 몸 세포 조직 하나하나(every fiber in my body)가 견딜 수 없도록 아파서 도저히 앞으로 전처럼 내 삶을 살아갈 수 없겠지만, 우리는 당신을 용서한다. 신(神)의 은총이 그대에게 있기를….”
 
한 유족이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끔찍한 비극 중에도 인간의 착한 성품이 빛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어둠이 깔린 뒤뜰에도 반딧불이 반짝이고 칠흑 같은 밤에도 하늘의 별은 빛나지 않는가.
 
교인들이 너무 친절해서 흑인 증오 살해 범행을 그만둘까 잠시 망설였다는 범인의 말에서 우리는 ‘그냥’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하게 되는 미스터리를 체험하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우리 모두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할 때 내 마음은 혼돈의 카오스가 되고, 좋아하고 사랑할 때 내 마음 아니 온 우주가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되는 것이리. 이것이 바로 희생자들 추모예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부르기 시작하자 모두들 따라 부른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 (Amazing Grace)’의 메시지요. 그 참뜻이리라.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고 했던가. 거울 보듯 세계 아니 우주라는 거울 속에 자기 자신 ‘코스미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리. 청소년 시절 지은 자작시 ‘코스모스’를 새삼스레 다시 읊어본다.
 
소년은 코스모스가 좋았다.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았다.
소녀의 순정을 뜻하는
꽃인 줄 알게 되면서
청년은 코스모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나그네는
코스미안의 길을 떠났다.
카오스 같은 세상에서
아름다운 우주 코스모스 찾아
 
그리움에 지쳐 쓰러진
노인은 무심히 뒤를 돌아보고
빙그레 한번 웃으리라.
걸어온 발자국마다
수없이 피어난
코스모스 발견하고.
 
무지개를 좇는
파랑새의
애절한 꿈은
폭풍우 몰아치는
먹 구름장 너머 있으리라.
 
무지개를 올라탄
파랑새가 된 코스미안은
더할 수 없이 황홀하리라.
하늘하늘 하늘에서 춤추는
코스모스바다 위로 날면서.
 
아, 우린 모두 하나같이
이런 코스모스바다에서 출렁이는
사랑의 피와 땀과 눈물방울들이어라.
 
아, 우린 모두 하나같이
이런 코스모스하늘에서 춤추는
무지개가 되기 위한 물방울들이어라.
 
이 시를 평생토록 주문(呪文) 외우듯 읊다 보니 어느새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같이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우주 순례자 코스미안 ‘무지코’임을 너무도 절실히 깨닫게 되었어라.

[이태상의 항간세설] <‘그냥’의 미스터리(II)>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전쟁 같은 인재(人災) 때마다 늘 그래 왔듯이 요즘 코로나 사태로 또다시 지구 종말론이 회자(膾炙)되고 사람들이 모두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2008년에 출간된 미국의 심령술사 실비아 브라운 (Sylvia Celeste Browne 1936-2013)의 예언서 ‘나날의 끝: 말세에 관한 예언(End of Day: Predictions and Prophecies About the End of the World)’이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논픽션 부문 2위로 그 값도 권당 수백 달러씩에 불티나듯 팔리고 있단다.
 
브라운은 몬텔 윌리엄스 쇼(The Montel Williams Show)와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 등 TV와 라디오에 자주 출연했고 한 시간짜리 온라인 쇼를 헤이 하우스 라디오(Hay House Radio)에서 진행하기도 했는데, 다섯 살 때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감(premonitions)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예언이 틀린 것도 많았지만 12 년 전에 나온 책 ‘나날의 끝’에 적힌 이런 한 문장이 새삼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2020년경, 심한 폐렴 같은 역병이 온 지구를 덮칠 것이다. 폐와 기관지를 공격하면서 기존의 어떤 치료도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더욱 불가사의하게도 갑자기 이 질병이 출현했듯이 또한 갑자기 사라졌다가 10년 후 다시 나타났다가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In around 2020, a severe pneumonia-like illness will spread throughout the globe, attacking the lungs and the bronchial tubes and resisting all known treatments,…Almost more baffling than the illness itself will be the fact that it will suddenly vanish as quickly as it arrived, attack again ten years later, and then disappear completely)”
 
일부 전문가들은 그녀의 예언이 우연히 공교롭게 적중했을 뿐이지 어떤 계시와는 상관없이 먼저 발생했던 사스 (SAS: 급성호흡기증후군) 데이터에 허구를 보태 끼워 맞췄을 것이라며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88세까지 산다고 예언했었지만 77세에 죽지 않았느냐고 회의적이다. 

어떻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물은 문자 그대로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인명재천(人命在天)일 테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간 문제 아니랴. 좀 먼저 가고 뒤에 가는 게 뭐 그리 대수랴.
 
그렇다면 우리 모두 인도의 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라빈드라나쓰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가 남긴 말 한두 마디 깊이 음미해보리라.
 
“죽음의 사자(使者)가 그대를 찾아오면 그에게 그대는 무엇을 대접하시겠소? 아, 나는 내 삶의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내놓으리다. (On the day when death will knock at thy door what wilt thou offer to him?  Oh, I will set before my guest the full vessel of my life…I will never let him go with empty hands)”
 
죽음은 (생명의) 등불을 끄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날이 밝았으니 등잔을 치우는 것이라오.  Death is not extinguishing the light; It is only putting out the lamp. Because the dawn has come.
 
그러니 우리 모두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시구(詩句)에서처럼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볼 수 있도록
네 손 안에 무한(無限)을
한순간에 영원(永遠)을
잡아야 하리라.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2015년 6월 26일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리자 곳곳에서 성소수자인 동성애자,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적 다양성을 구가하는 춤과 노래의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보도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무지개색의 모자, 깃발, 머리띠, 넥타이, 의상을 입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이후로 온갖 로고에 무지개가 들어가고 무지개가 산지사방에 뜨고 있었다. 가히 성적(性的)인 중세 암흑시대가 막을 내리고 개명천지가 열리는 듯 했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은 도덕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 말고는 모든 것이 도덕과 상관이 있는데 나는 도덕이나 윤리와 상관없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뭘 전도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나는 언제나 못 견뎌했다. (I am fond of music I think because it is so amoral. Everything else is moral and I am after something that isn’t. I have always found moralizing intolerable)”
 
이렇게 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1962)가 말했듯이 영어로 도덕과 상관없다는 ‘amoral’에 상응하는 ‘asexual’이란 단어가 있는데 성적으로 무관하다는 뜻이다. ‘asexual’한 사람들은 ‘사랑’과 ‘섹스(sex)’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 없는 섹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성매매가 그렇고 혼외정사와 바람피우는 것이 그러하며 ‘플라토닉 사랑(platonic love)’ 이 그렇지 않은가. 톨스토이가 한때 주장했듯이 성욕(性慾)이 잔혹한 욕정(欲情)에 불과하다면 섹스행위는 우리 몸의 신체적인 일종의 배설작용이라 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일까. 요즘 일본에서는 ‘중년 동정(童貞)’이 사회현상화 되고 있다고 텔레그라프와 AFP통신, CNN 등 영,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결혼과 출산율이 감소함에 따라 40대가 넘어서도 성관계를 경험하지 않은 동정남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체리보이(cherry boy, 숫총각을 의미하는 은어) 협회장 와타나베 신(渡部伸) 씨는 지난 2007년 출간한 저서 ‘중년동정’에서 연애자본(재력, 학벌, 외모 등)의 독점을 중년 동정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반면 여성은 ‘다음에 더 좋은 남성이 나타날지도 몰라’라고 기대하면서 연애 자본이 부족한 남성은 점점 선택지에서 밀려난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성적 욕구 충족 기구나 로봇은 물론 애니메이션, 만화, 각종 게임과 축제, 스포츠 등 여성과의 성관계를 대체할 만한 요소들이 중년 동정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총각학원을 운영하는 신고 사카츠메(眞吾坂) 씨는 “연애를 하면 남녀관계에서 각종 고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들은 그런 고민에 빠질 열려가 없다 보니 이성과의 관계에 점차 흥미를 잃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말로 하자면 ‘앓느니 죽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일본에서는 30대 이상 동정남이 늘면서 일본어로 ‘하지 않은’과 ‘삼십 줄’을 뜻하는 단어를 합쳐 ‘야라미소’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영육(靈肉)이 일치하듯 사랑과 섹스가 일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가 못하다면 사랑 따로 섹스 따로라도 해보는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프랑스 싱어 송라이터(singer-songwriter) 샹송 국민 가수 (France’s national chanteuse)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 1915-1968)가 부른 불후의 명곡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 의 가사와 같이 우리도 모두 사랑의 무지개 타고 ‘장밋빛 인생’을 노래라도 불러볼거나.
 
내 눈을 응시하는 눈동자
입술에서 사라지는 미소
이것이 나를 사로잡은
수정하지 않은 그의 초상화에요.
 
그가 나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속삭일 때,
나에게는 인생이 장밋빛으로 보이지요.
 
그가 내게 사랑의 말을 속삭일 때
언제나 같은 말이라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지요.
 
내 마음속에 행복으로 들어온 거예요.
그 까닭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우린 평생토록
그는 나를 위해 나는 그를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그는 내게 말했고,
목숨을 걸고 맹세해 주었지요.
 
내 느낌만으로도
내 가슴이 그 때문에
뛰고 있음을 알지오.
 
끝없는 사랑의 밤은
더 할 수 없는 희열로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몰아내고
너무도 행복해 죽을 것 같지요.
 
“사나이의 순정엔 미래 따윈 없는 거요. 그냥 순정만 반짝반짝 살아 있으면 그걸로 아름다운 거유. 그런 세계를 모르니까 세상이 이렇게 팍팍하고 험난한 게 아니겠슈.”
 
시골 마을에 세입자로 들어와 살게 된 낭만파 시인과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 순정파 집주인 아저씨의 좌충우돌 스토리에 왈츠풍의 삽화가 실린 스토리툰 ‘싸나히 순정(공동 저자 류근 시인과 그림 작가 퍼엉)에 나오는 대화 한 토막이다. 동네 체육대회에 심판으로 파견 나온 여자 프로 축구 선수를 보고 반한 집주인 아저씨가 하는 말이다. (이후 여자 프로 축구 선수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순정(純情)’을 너도나도 우리 모두가 다 ‘다다’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대규모 살육(殺戮)과 파괴로 이어진 근대 문명에 반기를 들고 기존 질서를 조롱하며 기존 예술, 도덕, 사상, 규범 등에 도전한 20세기 초 일군(一群)의 유럽 예술가들과 작가들의 스타일과 테크닉을 ‘다다(Dada)’라고 부른다. 상상해 보자. 우리 모두가 다다 ‘다다이스트(Dadaist)’가 된다고. 과거나 미래가 아니고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열중하는. 코로나바이러스든 뭐든 다 물렀거라. 우리 다다 각자는 각자 대로 행복한 순간순간을 살기 위해서 말이어라.
 
패럴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네오 모타운(neo-Motown) 힛트 ‘행복한 24시간’이란 비디오에 백발이 성성하고 안경을 쓴 여인이 꽃무늬 옷차림에다 웃는 얼굴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고층 빌딩 주차장에서 춤추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느슨하게 목에 스카프를 걸치고, 온몸을 흔들면서 재즈 춤을 추는 이 여인은 두 손바닥을 활짝 펴서 마주치면서 좌우로 앞뒤로 또 저 하늘로 펄쩍펄쩍 뛴다. 달밤도 아닌 아침, 정확히는 9시 4분, 희열에 찬 황홀지경의 ‘유난 체조’다. 그러면서 이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르는 노래는 ‘행복이 진리요 진실(Happiness is the truth)’이란 내용이다.
 
남가주(southern California)에 사는 400여 명의 주민이 각자 4분씩 각자가 느끼는 행복감과 흥취를 춤과 노래로 24시간짜리 비디오에 담은 것이다. 이는 마치 저 유명한 ‘빗속의 노래 (Singing in the Rain)’가 한 편의 영화로 하룻밤과 낮 24시간 동안 상영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행복의 시대’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요즘 많이 쏟아져 나오는 책 {지난 2월 25일 출간된 우생의 졸저 ‘유쾌한 행복론(Jolly Well-being Theory)’를 포함해 제목들만 보더라도 ‘행복 해법(Happiness Solution)’이니 ‘행복 프로젝트(Happiness Project)’니 ‘지금 당장 행복하기 (Happiness Now)’니 ‘10% 더 행복하기(10% Happier)’ 등이 발간되고 있다.
 
이 윌리엄스의 비디오 ‘행복하자(Happy)’에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비디오만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 개나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란을 비롯해 필리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역 등 분쟁 지역들을 총망라해서 열광하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엔 ‘유엔의 국제 행복의 날(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을 기념하기 위해 초청된 윌리암스 씨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맨 꼭대기 층을 밝은 노란 색의 웃는 얼굴들로 불을 밝히는 점화식을 가졌고, 유엔 총회 회의장 홀에서 어린이들에게 지구라는 ‘하나의 행복 유성(a happy planet)’의 소중함에 대해 연설했다. 유엔 건물 밖에서는 ‘행복론자들(haptivists)’이 길가와 길목마다 ‘모든 것이 경이롭고, 특히 당신과 당신의 행복은 그 이상이다. (EVERYTHING IS AWESOME. ESPECIALLY YOU AND YOUR HAPPINESS IS PART OF SOMETHING BIGGER.’이란 싸인 팻말/푯말을 들고 ‘행복 복음 (Happiness Gospel)’을 전파했다. 이것은 당시 우리 반기문 사무총장이 수장으로 있든 유엔이 지속 불가능한 개발정책과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 및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대응책의 기본이 되었어라.
 
2015년 7월 9일자 미주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페이지에 당시 연재 중이던 미 대륙횡단 마라톤 일기 21회분 칼럼 ‘아미시 마을의 풍경’에서 강명구 씨는 “말 다섯 마리가 농부와 함께 호흡을 맞춰 먼지를 일으키며 쟁기를 끌고, 여인은 아이들과 함께 잡초를 뽑는 모습은 아련한 그림 속의 한 장면이다. 길에는 마차의 말발굽과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탄 여인들이 거리를 지나다닌다. 백일이 넘도록 달리면서 젊어진 나의 가슴은 순박하고 꾸미지 않았지만 맑고 정갈한 여인의 모습에 여지없이 반응한다. 이들은 지적(知的)인 삶보다는 미적(美的)인 삶을 택했고,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필수적인 기본 지식과 기술, 개별적 경쟁보다는 공동체 삶에 필요한 교육을 삶을 통해서 구현(具現)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강 씨는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오는 21세기 첨단 정보기술의 파도 앞에서도 함께 모여 즐겁게 살아가면서 느리게, 단순하게, 소박하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움직여 땀 흘려 일하며 살아가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첨단 기술이 삶의 무게를 덜어주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히려 부지런하고 경건한 생활을 통해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그의 칼럼 끝을 맺었다.
 
“시간이 강물처럼 굽이쳐 유유히, 봄바람처럼 아롱아롱 흐르는 아미시(Amish) 마을을 지나며 과연 이 사람들이 대단한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지배력으로 따지자면 전쟁보다도 강한 미국문화가 이들의 삶을 지배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선시(禪詩)가 생각난다.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올 때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갈 때는 어느 곳을 향하여 가는가?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남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생겨나는 것과 같고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죽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으니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뜬구름은 그 자체가 진실함이 전혀 없어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나고 죽고 가고 옴도 구름처럼 그렇다네.
 
아, 실로 그렇거늘,
그냥 순정을 갖고
이 순간에 행복하리라
 
[이태상의 항간세설] <‘그냥’의 미스터리(III)>

장 자크 루소(Jean-Jacque Rousseau, 1712-1778)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했다. 이 말을 나는 그냥 ‘자연주의자(naturist)’ 곧 ‘우주주의자(cosmist),’ 다시 말해 ‘코스미안(Cosmian)이 되자’ 이렇게 표현해 보리라.
 
영어로 ‘코스미즘(Cosmism)’이라 하면 우주와 인류의 기원과 진화 및 미래를 탐구하는 역사와 철학과 종교적 광범위한 이론을 지칭한다.
 
세계적인 온라인 예술정보 플랫폼 ‘e-flux’ 창립자이자 영화감독인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 1965 - )의 2015년 ‘러시아 우주론(Russian Cosmism)’ 영상시리즈 3부작이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 6전시실에서 지난해(2019년) 4월 27일 부터 7월 21일까지 소개되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제작한 작품으로 ‘안톤 비도클: 모두를 위한 불멸’을 타이틀로 달았다.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공산주의 혁명은 태양에 의해 일어났다(2015)’는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되어 ‘눈(Noon) 예술상’을 수상하면서 영상미와 사운드, 우주론에 관한 작가의 실험정신을 인정받은 바 있다. (NEWSIS 2019. 04.25 박현주 미술전문 기사 참조)
 
‘러시아 우주론(Russian Cosmism)’ 은 19세기 말 러시아의 철학자 니콜라이 페도로프(Nikolia Fedorov 1829-1903)를 필두로 러시아 우주론자들에 의해 개진되었는데 이들은 인간과 우주가 불가분임을 강조하며 인간이 우주와 함께 진화해 죽음을 극복하고 불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철학자 존 피스크(John Fiske 1842-1901)는 그의 주요 저서 ‘우주철학개요(Outlines of Cosmic Philosophy: Based on Doctrine of Evolution, with Criticisms on the Positive Philosophy, 1874)’에서 일종의 우주진화론을 제시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론물리학자(Theoretical Physicist) 위고 드 가리(Hugo de Garis 1947 - )는 물리학적 세계와 시스템에 대한 수학적 모형을 수립하여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예측하는 물리학에서 ‘진화가능한 하드웨어(evolvable hardware’로 알려진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분야에서 ‘유전 알고리즘(genetic algorithm)연구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상과 같은 난해한 ‘우주론’은 구름잡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로 제쳐 놓고 우리 모두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연주의 (naturism)’를 우리 판소리 형식으로 한 가락 뽑아보리라.
 
1970년대 초 파독간호사 부인 따라 독일로 간 옛 코리아타임스 동료 기자 친구가 나체촌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당시는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손편지로 듣고 나는 놀라면서도 신기해했었다. 한국에는 아직 없겠지만 유럽과 미국에는 곳곳에 누드 비치와 휴양지가 있다. 흔히 옷이 날개라 하지만 맨몸의 일탈(逸脫)과 파격(破格)이 주는 해방감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나체주의자들은 말한다.
 
알몸으로 숲속을 걷다 보면 에덴동산을 거니는 듯 황홀한 기분이 들기도 한단다. 벌거벗은 몸은 주변의 나무나 돌처럼 그냥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란다. 벌거벗고 산책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치한(癡漢)이 아니라 선인장의 길고 뾰족한 가시라고 한다. 미국에는 알몸 예찬론자들이 제정한 ‘전국 나체 날(National Nude Day)’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인 거리 두기로 좀 곤란하겠지만 이날은 해마다 ‘누드 휴양주간 (Nude Recreation Week)’에 뒤이어 찾아온다. ‘누드 휴양주간’ 은 미국 독립 기념일 다음의 첫 번째 주이고 ‘누드 데이’는 ‘누드 휴양주간’이 끝난 뒤 첫 번째 월요일이다. 나체족들은 클럽 단위로 모여 매년 ‘누드 데이’ 기념식을 갖는다. 미국 나체주의자 들의 단체인 ‘전미휴양산업협회’는 250여 개 클럽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회원 수는 3만 2천여 명을 헤아린다.
 
대형 휴양지가 주도하는 활발한 홍보 활동과 회원들의 입소문을 통해 나체주의의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중문화도 수용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우선 케이블 TV가 옷을 벗은 사람들을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에 나섰고 디스커버리(Discovery) 채널은 나체주의자들을 출연시킨 리얼리티쇼(Reality Show) ‘네이키드 앤드 어프레이드 (Naked and Afraid)’를 내놓으며 뉴 프론티어 (New Frontier) 개척에 나섰다. 내가 이 프로그램 제작자라면 이 시리즈 명칭을 ‘네이키드 언어프레이드(Naked Unafraid)’라고 했으리라. 벌거숭이 서바이벌 게임을 펼치는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에 뒤이어 케이블 방송사인 VH1이 ‘알몸으로 하는 데이트(Dating Naked)’ 첫 에피소드를 2014년 7월 17일 선보였다.
 
적극적인 홍보 효과 때문인지 처음으로 누드 랜치를 찾는 ‘초참’들 의 수도 점차로 늘어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애리조나주(州) 투산 외곽의 호화 나체족 휴양지 미라 비스타(Mira Vista Resort)를 방문했던 한 남성은 이곳의 공식 웹사이트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려놓았다.
 
입촌 후 방을 배정받은 다음 이 남성은 일단 옷은 벗었지만, 도무지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한다. 어쩐지 어색하고 쑥스러워 아내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아 맥주를 마시며 한동안 창밖의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일단 방 밖으로 나가자 느낌과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단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그는 물론 아내도 자신이 벌거숭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더란다. 초반의 낯섦은 옷이라는 상징적인 매개물을 통해 몸과 마음을 구속해 온 사회적 속박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으로 대체됐다. 이 남성의 경험담은 옷을 벗으면 누구나 그냥 그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깨달음으로 끝난다.
 
애리조나주(州)에는 특급 리조트인 샹리 라 랜치(Shangri La Ranch)와 미라 비스타 외에 캠프 버디 비치(Birdie Beach)와 토노파(Tonopah)의 엘 도라도 온천(El Dorado Hot Springs) 등 나체족들이 몰리는 명소가 몰려 있다. 누드 커뮤니티에는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철칙이 있다. 절대 주변 사람들을 응시하지 말고 상대를 존중하며 보편적인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 이들이 준수해야 할 불문율(不文律)이다. 휴양지 관계자들은 또 피부보호와 위생상의 목적을 위해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타월 등 깔 것을 가지고 다니라고 조언한다.
 
이와 같은 현상과 나체주의자들의 증언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아니랴.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알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영어에서도 알몸을 우리의 ‘생일정장(Birthday Suit)’이라 부르나 보다. 어렸을 때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황제의 새 옷(The Emperor’s New Clothes)’을 읽고, 그때부터 나는 사람이 옷을 입고 산다는 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엄목포작(掩目捕雀)의 위선(僞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015년 7월 10일 중앙일보 일간스포츠지에 ‘10만 원 입금 시 나체 성관계 영상 보여줄 게’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클럽 아우디녀’로 알려진 이모(당시 27세) 씨를 공연 음란죄와 음란물 유포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7월 8일 밝혔다.
 
이 씨는 텀블러와 인스타그램 등 SNS계정에 자기 자신의 나체 사진과 성관계 동영상의 일부분을 올려 수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그녀는 사진 밑에 ‘풀(full)’ 영상을 보려면 DM (당사자끼리만 볼 수 있는 메시지)을 보내 달라는 글을 올렸고,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오면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 준 뒤 월 10만 원을 입금하면 노출 영상과 성관계 영상 등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 씨는 자신이 마치 사회운동가인 것처럼 행세를 해 논란을 키웠다. 그녀는 영상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채식주의를 위한 모임’에 쓰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월 24일자 인스타그램에 ‘남친과 성관계한 영상 팔아서 돈 벌고, 비건 쇼핑몰 확장 시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앞서 이 씨는 클럽에서 나체로 춤추는 영상이나 청계천, 신촌, 강남역 등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도심에서 ‘동물보호' 나 ‘양성평등(兩性平等)’ 등을 부르짖는 피켓을 들고 반라(半裸)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외제차 브랜드 아우디의 딜러였다고 밝혀 온라인상에 ‘클럽 아우디녀’로 불리게 되었다. 경찰은 이 씨의 음란물 유포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처벌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몹시 안타깝고 가엾게도 같은 지면에 다른 짤막한 기사가 하나 더 있었다. 성정체성과 혼란으로 ‘스스로 성기 자른 40대 미혼 의사’ 이야기였다.
 
7월 8일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7월 2일 경남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A(당시 40세) 씨가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성기를 잘랐다. 경찰은 나흘 뒤 병원 측으로부터 의사가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신고를 받고 A씨 집으로 찾아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A씨는 집에서 2-3km 떨어진 한 공원을 배회 하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명문대를 나온 뒤 미혼인 A씨가 스스로 성기를 절단한 뒤 응급치료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는 보도였다.
 
이야말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강요된 정체성의 혼란으로 빚어진 희비극(喜悲劇)이 아니었을까.
 
최근에 한 친구가 이메일로 아주 희한한 동영상을 내게 보내왔다. 일본의 어느 한 일반단체 여성들 수백 명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섹스하는 비디오다. 젊은 남녀 한 쌍이 풀코스로 성관계를 갖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성 관객들이 계속 환호성을 질러 대는 것이었다. 나도 흥미진진(興味津津)하게 이 장면들을 보면서 잠시 상상해봤다.
 
서로 살인적으로 때리고 맞으며 메어치는 복싱이나 레슬링 같은 난폭잔인무쌍(亂暴殘忍無雙)한, 결코 ‘스포츠’라 할 수 없는, 천하만행(天下蠻行) 대신, 이런 사랑놀이가 그 얼마나 더 관람해볼 만 운동이며 예술인가.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어서 올림픽의 대표적인 종목으로도 채택되고 세계 방방곡곡에서 열광적인 인기리에 공연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고.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과 오노 요코(Yoko Ono 1933 - )가 ‘전쟁놀이 대신 사랑놀이 하자(Make Love, Not War)’고 몸소 시범(示範)울 보였듯이 말이어라.
 
우리 모두
하나 같이
어서 어서
그저 그냥
그냥 그저
자연인으로
우주인으로
살아보리라
코스미안으로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2.06.28 10:37 수정 2022.06.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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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