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한 자루의 촛불] 생산적인 만남

김관식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한순간의 만남이 잘못되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지내기도 하고 한순간의 만남이 운명을 바꾸어놓기도 한다. 만남은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순간 세상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최초의 만남은 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태어나는 순간 입으로 울음소리를 지르면서 태어나고, 입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기 시작하며 어머니와 접촉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 후 시각, 청각이 발달되어 눈으로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귀를 통해 외부의 소리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코를 통해 냄새와의 만남, 입을 통해 음식의 맛을 알게 되는 등 오관을 통해 세상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오관을 통해 사물과 만나지 않고서는 생명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살아간다. 사람과 사물과의 만남은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람은 사람과 책과의 만남을 통해 책속의 인물과 시공간을 초월하여 간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각종 통신 매체와의 만남이다. 날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통해 만남이 이루어지고 휴대폰이나 전화로 대화를 통해 간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인간은 잠자리에서 눈뜨자마자 만남이 이루어지고 하루종일 만남 속에서 살아간다. 만남은 날마다 되풀이 되며 생명활동 그 자체가 된다. 세상과 만남이 끊어진 순간 이 세상과의 만남이 사라지는 죽음이 온다. 죽음은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 즉 자연과의 만남, 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짐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사람과의 만남보다는 기계와의 만남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인간은 자연과의 만남 속에서 생명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은 자연과의 만남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 인간과 기계와의 만남으로 하루를 소일한다. 그중 사람과 사람의 만남보다는 기계와의 만남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더 많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가 아닌 기계와의 대화를 통해 만남으로서 철저한 자기 폐쇄, 자기방어를 취함으로써 인격적인 대화의 상실로 소외와 극심한 개인주의 속에서 타인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기능적인 존재로 만나게 되는 비인간화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나마 물질적인 풍요의 시대 전자화폐로 물질을 소유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만남조차도 철저하게 물질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자신의 이기심은 물질로 환산됨에 따라 모든 인간의 만남을 화폐로 환산하게 되는 만남으로 이어져 비인간적인 풍토를 초래하였다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따뜻한 정서적 교류보다는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게 되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여기에 가치관마저 흔들리게 되어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사람됨의 만남이 되어야 함이 절실하게 되었다. 사람의 만남은 앎을 위한 책과 매체와 만남과 삶을 위한 만남보다는 됨을 위한 만남으로서 인격과 인격, 혼과 혼의 대화, 사랑과 사랑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함이 절실하게 되었다.


복잡한 문명 속에서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기계와의 만남 속에서 지친 인간들은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순수한 정신과 감정을 만나기 위해 자연과의 만남, 또는 신과의 만남을 위해 휴일이면 교회와 사찰을 찾아가고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신과의 만남으로 자신을 찾으러 간 교회나 성당, 사찰을 찾아가나 신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나고 돌아오게 된다. 자연과의 만남을 위해 산과 바다를 찾았으나 거기에도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인간들만 만나고 오게 된다.


 사람이 만나지 않으면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만남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이해타산과 욕망의 대결의 만남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이다. 이래저래 힘든 세상이다. 계산된 만남은 서로가 긴장하게 되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만남이 되기 쉽기 때문에 정말 인간관계는 어렵다. 친구 간에 만남도 그렇다. 만나면 만나기 위해 찾아가려면 교통비를 지불해야 하고 만나는 장소 사용료를 지불해야하니 경제적 손실 때문에 만남을 꺼리게 되고 필요한 만남은 서로 상대에게 물질적 이익을 가져와야 되니 자신에게 이익되는 사람은 자주 만나고 이익이 되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이익과 관계없는 만남이 있을 때도 만남은 생산적인 만남이 아니라 소비적인 만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 사람의 생명은 시간을 다투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란 불 켜놓은 촛불 한 자루다. 그 촛불이 서로 만나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비적인 만남이어서는 안 된다. 같은 직장에서도 만남은 생산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교는 물질적인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깨우쳐주는 교육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오늘 한순간의 만남과 한마디의 말이 어린이에게 평생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은 막중한 만남이다. 그러한 만남을 소비적인 만남으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교사가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여 가르쳐야 하는 곳이 바로 학교이다.

 

보다 교육적인 양질의 매체와 만남, 교육내용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사가 모든 서비스와 실천을 해야 하는 장소이다. 그런 교육 현장에서 교사 한 개인을 위해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은 크나큰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바로 생명임을 명심하라. 너의 한순간의 행동과 대화가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인 정신적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고 평생 동안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해줄 도화선이 됨을 명심해야 한다. 생산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교육현장이 되어야 한다


교사는 어린이들이 교육현장에서 훌륭한 사물과 매체 그리고 스승을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고, 관리자는 학교 내의 풀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는 물론 교내의 모든 사물과 교육환경, 그리고 교사들이 어린이들의 인격적인 만남을 잘 안내할 수 있도록 살펴야 한다. 교장실에 앉아서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학교 환경은 물론 어린이들이 안락하게 학습할 수 있는가 점검하고 그들을 도와주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교육자로서의 관리자냐 행정가로서 관리자냐 판가름 난다. 행정가로서 만남도 바쁘다. 공문처리, 물적 인적 관리 및 지원 등 교육의 물적 지원에 신경을 쓰느냐고 바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일들이 어린이 교육과 더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니 문제다. 어린이 교육을 위한 생활지도 학습지도 등에 신경 쓰는 관리자 보다는 인적 물적 관리, 자신의 위치 관리에 소일하는 행정가로서 바쁜 것이다


선진국들은 모든 관리자가 교육자로서의 생산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데 우리나라만 왜 교육자임을 포기하고 행정가로서의 만남을 보람으로 여기는 교육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만 진실로 교육자다운 자세의 관리자나 교사들 찾아보기 힘든 교육현실이 슬프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


작성 2022.07.04 10:16 수정 2022.07.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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