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작은 집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고맙게도 때가 되면 찾아와서 휴식을 준다. 산 아래 한 채 있는 나만의 작은 마을은 고요하다. 그리고 찾아온 밤이 고맙다. 사방은 어둡고 어두움은 고요함을 준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밤에 우는 산새 소리와 황소개구리가 정적을 깬다. 산 너머 불야성이 한쪽 하늘을 비추며 별을 감춘다. 덕분에 나의 머리 위에 있는 별은 초승달을 내려다보며 밝게 빛난다. 그 밑에 내가 서 있다.
낮에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던 사물들이 밤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어둠 속에 잠긴다. 모두가 똑같이 검은색이다. 우리의 태초(太初)가 똑같은 것처럼. 밤이 검고 어둡다고 해서 모두가 정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일찍 잠을 자면서 내일의 또 다른 소풍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논에서 울어대는 작은 개구리들의 합창도 밤엔 더욱 크게 들린다. 손잡고 ‘다 같이’를 부르고, 또 이웃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산 아래 작은 집에서 밤을 오롯이 맞이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나 혼자 지내는 것이 아니고 이웃들과 같이 밤을 맞이하는 것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밤늦은 시간에 조용히 내려온 고라니는 고구마 잎을 따먹고, 고라니를 낯익은 이웃으로 아는 강아지는 짖지도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헛간에 집을 마련한 고양이는 눈에 불을 밝히고 산책을 하고 복숭아 열매 속 애벌레는 소리 없이 몸집을 키운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온뒤 고사리도 굽은 순으로 부끄럽게 피어나고 감나무 밑의 퇴비를 먹은 잡초도 기분 좋게 자라난다. 칠흑 같은 밤중에 뒷산의 밤새소리가 퍼져 나간다. 외로워서 부르는지 낮에 보아 놓았던 맛있는 것을 같이 먹자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여러 이웃들을 부른다. 그 소리를 소나무도 듣고 산골짜기도 화답한다.
이렇듯 밤은 조용한 휴식 속에서 만물을 키우며 안아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구(地球)가 사색(思索)하며 어김없이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엉뚱하게도 밤이 없었다면 이렇게 화려한 낮이 있었을까, 달이 없었으면 해가 더 밝음을 뽐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나도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살다 보면 지푸라기나 가느다란 풀잎도 나를 잡아 줄 때가 있다. 밤도 그렇다. 낮에 뛰어다니며 흘린 땀을 식혀주고 마음의 안정을 준다. 낮에 작은 정자(亭子)에 앉아 바람과 함께 쉬고 있으려니 등에 꽃물을 들인 뱀이 꾸물거리며 지나간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뱀도 정지된 자연 속의 미동을 느꼈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둘은 서로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곤 가던 길을 재촉하여 풀섶으로 사라진다. 그 녀석은 지금 이 밤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씩 바깥세상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한 후 마을버스를 탄다. 고개 넘고 굴다리를 지나 나만의 선계(仙界)로 들어온다. 언제부턴지 고장이 나서 불도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이 서 있는 버스 정류소에 내려 누추한 작은집을 향해 걷는다. 나만의 은하수에 작은 배를 타고 나의 우주로 가는 것이다. 은하수며 우주는 멀거나 높지 않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길은 아니지만 편안한 길이다. 사람의 흔적보다 돌부리며 자연의 흔적이 많아 더욱 좋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라 편안하다. 그래서 휴식하라고 찾아온 밤이 또 고맙다.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있어서 우리가 사상적 균형감을 가질 수 있듯이 밤낮이 있음으로 해서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굳이 초조하게 내일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오늘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내일은 내일대로 맞이하고 또 뒤이어 오는 밤을 편안하게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