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송과 옥빛 물색의 향연, 북한산 진관사 계곡
가만히 있어도 땀을 줄줄 흐르게 만드는 여름의 폭염을 피하기 가장 좋은 곳은 단연 계곡이다. 계곡도 접근성이 좋은 산 아래보다 사람들 손을 덜 탄 자연미가 넘치는 상류 쪽을 찾는 것이 좋다.
북한산은 명실공히 수도권의 허파다. 바위산임에도 아름답고 물 맑은 골짜기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 진관사 계곡은 북한산 계곡의 백미다. 응봉능선과 향로봉 북서릉 사이에 깊게 파인 이 골짜기는 골 양옆으로 기암절벽이 솟구쳐 있고, 매끈한 암반을 타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흘러내려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여느 유명 골짜기 못지않다.
진관사계곡 트레킹은 하나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은평전통한옥마을 입구에서 시작한다. 고목과 한옥이 어우러진 호젓한 도로를 따라 300m쯤 들어서면 진관사 공원지킴터에 이어 일주문이 나오고 키 큰 소나무들이 도열해서 반기는 길 끝에 극락교가 있다.
진관사 극락교 옆 계곡에는 나무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물안개 피어나는 호젓한 산책길에서 물 내음, 풀 내음을 한껏 맡는다. 경내로 들어서면 칠성각, 대웅전, 나한전 등 전각들과 함께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진관사의 장독대도 눈에 들어온다.
진관사는 신라 진덕왕 때 원효가 삼천사와 함께 신혈사(神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으나 고려 현종 때 진관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진관사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지난 2009년 5월 26일, 칠성각을 해체하여 보수 작업하던 도중 '독립신문', '신대한' 등 독립운동 사료 4종 20여 점이 태극기 보자기에 싸인 채 벽 안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90년 동안이나 숨죽여 있던 귀중한 사료들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산행은 절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골짜기 왼쪽으로 나 있다. 계곡 곳곳에 널린 너럭바위 위로는 와폭(臥瀑)이 흘러내리고, 그 위로 올라서면 옹달샘처럼 작은 소들이 한여름 더위를 식혀준다. 가파른 폭포 위로 올라서면 비경이 또 한 차례 펼쳐지고, 물가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펼쳐져 앉아 쉬기에도 그만이다. 너른 암반과 깨끗한 물, 짙게 우거진 신록의 숲, 곧게 뻗어 청량감을 주는 낙엽송이 어우러져 기품 있는 계곡미를 즐길 수 있다.
물줄기를 오른쪽에 두고 숲길을 따라 계속 가면 향로봉과 비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계곡 길을 잇는 동안 오른쪽과 왼쪽으로 난 계곡은 여전히 부드러운 물살과 너른 바위를 뽐낸다.
계곡과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온다. 올랐다가 내려오니 발길이 가볍다. 아래로 흐르는 물길을 따르니 육신조차 편안하다. 한여름 고단한 속세의 삶에 지친 이들은 맑은 물에 마음을 헹구는 심정으로 수도권 계곡을 찾아볼 일이다.
◆ 3호선 연신내역에서 701, 7211번 버스를 타고 하나고등학교 앞에서 하차하거나, 자가용은 네비에 ‘진관사 주차장’(주차비 무료)을 치면 된다.
‘물멍’하면서 걷는 도봉산 문사동 계곡
도봉산의 3대 계곡으로 문사동 계곡, 원도봉 계곡(망월사계곡), 무수골 계곡(보문사 계곡)이 꼽힌다. 저마다 같은 산, 다른 줄기를 타고 청명한 기운 전하기에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오늘 내가 곁에 둔 계곡’이 제일의 계곡이다.
도봉산역에서 먹자골목과 도봉동 버스 종점을 지나면 도봉산 들머리에 들어선다. 광륜사 쪽으로 가다 보면 길 왼쪽 옆 풀밭 초입에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도봉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리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여기서부터 문사동 계곡이 시작된다. 문사동 계곡은 수량이 풍부할 뿐 아니라 기암과 노송들이 절경을 이루며,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또한 천년사찰, 도봉서원, 바위 암각글씨 등을 둘러보는 역사기행도 쏠쏠하게 즐길 수 있다.
문사동(問師洞)의 문(問)은 주례(周禮)에 따르면 “예를 갖추어 맞이한다”는 뜻으로, 문사동은 곧 "예를 갖추어 스승을 맞이한 곳"을 의미한다. 문사동 계곡은 보통 도봉 계곡으로 불리는데 우이암 능선 바로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다.
조선 말 헌종 임금의 어머니 신정왕후의 별장이 있었던 광륜사를 지나면 도봉서원터가 나온다. 도봉서원은 조광조(趙光祖)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인데 빈터에는 커다란 250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만 우뚝 서 있다. 그 앞 계곡에는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계곡 물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1700년 곡운 김수증이 새긴 글씨인데, 고산앙지란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인데, 즉 김수증이 조광조의 덕망과 학식을 우러러 존경한다는 의미로 암각해 놓은 것이다.
문사동 계곡물이 사슴 눈망울처럼 맑디맑다. 걸으면서 ‘물멍’을 하느라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물소리에 이끌려 비구니 사찰 금강암과 구봉사를 지나 어느새 성불사와 우이암 방향으로 갈라지는 오작교에 이른다. 우이암 방향으로 직진하여 마당바위 삼거리를 지나 계속 계곡을 따라 오르면 거북샘 삼거리 바로 전에 왼쪽 계곡 가운데 큰 바위에 초서체로 문사동(問師洞)이라고 쓰여있다. 좀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용어천 계곡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는데, 도봉산 입구에서 여기까지가 문사동 계곡이다.
옛이야기 남은 계곡에는 한여름 더위를 씻는 피서객들과 물장구치는 등산객 웃음소리가 종일 울리니 수백 번 지나간 여름의 이야기가 이와 같지 않았을까? 계곡에 좌정하고 물소리에 귀를 닦고 흐르는 물에 눈을 씻으며 걱정과 더께가 앉은 마음 까지 청소한다.
한참을 묵언하면서 적적함 없이 오래 ‘물멍’하면서 머물렀는데, 여름 계곡에 기댄 마음이 집착으로 변하기 전에 이제는 돌아서야 할 때. 열심히 올랐으니 이제 열심히 내려갈 차례다.
◆ 도봉산역 1번 출구로 나와 도봉산탐방지원센터까지 10분 정도 걷거나, 자가용은 네비에 ‘도봉산 공영주차장’(주차비 유료)을 치면 된다.
한여름 열기 식혀주는 양평 상원 계곡
양평에 있는 용문산은 서울 근교 산행지 이자 유명한 관광지다. 산이 워낙 커서 수량이 풍부한 탓으로 여름에는 사나사 계곡, 중원 계곡, 용문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늘 북적인다. 그러나 상원사 아래에 있는 상원 계곡은 이들 계곡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아직까지는 한적하게 피서를 즐길 수 있다. 근처의 상원사까지 간단하게 트레킹을 할 수 있고, 발품을 더 팔면 상원사와 용문사를 잇는 옛길도 둘러볼 수 있어 숨겨진 알짜배기 힐링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상원계곡 가는 길은 상원사 가는 길에 있다. 양평 연수리 보릿고개 체험마을을 지나서 계속 상원사 쪽으로 올라가면 예스터데이 식당이 나오고 곧이어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을 지나 상원사 도로 차단봉 옆길로 들어서면 도로 오른쪽이 바로 상원 계곡이다. 계곡은 상원사 올라가는 길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데 수량이 풍부하고 깊지 않으며 원시림으로 드리워져 있어 물놀이를 즐기며 무더위를 피하기에 최적인 곳이다.
주차장에서 상원사까지는 약 1.5km 거리인데 왕복 1시간 정도면 여유 있게 다녀올 수 있다. 상원사 가는 길은 포장된 도로이기는 하지만 숲과 바람과 햇살에 온전히 숲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산사로 가는 숲길로 들어서니 한여름 짙고 짙은 초록색 빗장으로 걸어 잠구고 속내를 보이지 않던 비밀스러운 숲이 나타난다. 인적 없는 숲길을 걷다 보면 마치 별천지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절 가까이에 있는 얕은 오르막을 오르면서 잠시 거칠어진 호흡은 고즈넉한 절에 부는 바람이 안겨주는 풍경 소리에 평안을 되찾는다. 대웅전 뒤로 용문산 정상이 보이고 왼쪽으로 장군봉과 백운봉의 거친 산세가 이어진다. 상원사는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 절을 중심으로 의병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바람에 일본군에 의해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는 아픈 생채기도 안고 있다. 그리고 국보 367호였던 상원사 동종이 짝퉁으로 밝혀지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신분이 급락하여 제월당 앞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절을 다녀온 뒤 계곡으로 내려선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숲속은 시원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인지 계곡물은 순수하고 맑다. 푸르고 고요한 계곡 숲은 비록 어마어마한 위용의 거목들은 아니지만 건강한 소나무들과 느티나무, 전나무가 치솟아있고, 버드나무, 벚나무, 박쥐나무 등 온갖 널찍한 이파리를 가진 나무들이 여름의 치열함을 가리고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1시간여 짧은 트레킹이었지만 만만찮은 한낮의 치열함을 식히기 위해 맑디맑은 계곡 물속으로 뛰어든다. 달아오른 몸과 마음이 순간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이다.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청정해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열락(悅樂)의 경지에 든 것인가.
이 무더운 여름, 조용하게 더위를 피하고 싶은 가족들에게 평화가 숨어 있는 용문산 상원 계곡을 휴가지로 추천한다.
◆ 중앙선 용문역에서 33-2번 버스를 타거나 용문 우체국에서 7-1번을 타고 연수리 종점에 하차하거나, 자가용은 네비에 ‘상원계곡 주차장’(주차비 무료)을 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