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볼거리 가득한 뉴트로 동묘시장

여계봉 선임기자

서울지하철 1호선 전철 안에서 다음 역이 종로3가역임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노약자석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한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종묘공원을 가기 위해 종로3가역에 내리고 전철은 동대문역을 지나 동묘앞역에 도착하니 열차에 남아있던 어르신들도 거의 다 내린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지나가는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번잡한 동묘시장 입구가 나온다. 찻길 쪽만 뺀 3면의 동묘 담장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다.

 

동묘 입구의 구제 옷 노점에는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동묘 담벼락 노점과 골목 점포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시장은 더욱 흥미진진하고 생기가 넘친다. 조용한 일상에서 약간 벗어난 파격에 가까운 혼돈이 사람을 더욱 끌리게 만든다.

 

동묘하면 흔히 이곳과 가까이에 있는 종묘와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동묘는 삼국지의 관우(關羽)를 신으로 숭모하는 사당이다. 정식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고, 임진왜란 후인 1601(선조 34)에 세워졌다


보물 142호인 관우사당 동묘는 노점에 둘러싸여 있다.


관우 사당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군 진인(陳璘)이 부상으로 서울에 머물던 1598(선조 31그가 기거하던 집 후원에 남관왕묘를 세운 것에서 유래한다그 뒤 동관왕묘를 세우고, 고종 시절인 1883년에 북묘가, 대한제국 시절인 1902년에는 서묘까지 설립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대문 근처 동묘가 유일하다. 여기까지 온 김에 잠시 동묘에 둘리지만 경내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동묘 주변으로 이어진 벼룩시장에만 인파가 가득하다.

 

넓지 않은 이면도로에 노점들이 들어차서인지 동묘 인근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거의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동묘 담장을 둘러싼 노점상들은 길바닥에 온갖 물건들을 펼쳐 놓았는데 만물상이 따로 없는 듯하다


벼룩시장에는 쓸만한 가전제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노인들과 중장년은 물론 젊은이까지 전 세대가 시선을 길바닥으로 향하고 쇼핑에 몰두하고 있다. 그중에서 그래도 노년층이 가장 많아 보인다. 몇 년 전부터 구제 옷이 빈티지 패션 아이템으로 뜨고 구제 의류를 찾는 연예인들 모습이 방송에 나오면서 젊은이들이 동묘시장에 몰리기 시작했고 상권도 확장되어 동묘시장이 뉴트로(Newtro) 시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코로나 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아와서 지금보다는 훨씬 붐볐던 거리였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빈티지 의류 매장


빈티지로 불리는 헌 옷가지들 사이로 새것으로 보이는 의류들도 눈에 띄고 유명 아웃도어 의류나 신발들도 간혹 보인다. 영상과 노래가 담긴 CD, 수천 종의 액세서리와 전자제품 케이블, 점포를 가득 채운 골동품, 몸에 좋다는 각종 건강보조식품과 온갖 주전부리 등 구색이 다양해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이 시장의 매력이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음악CD도 이곳에 오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서울에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유명하지만 지금은 문을 많이 닫았고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 반면 동묘 헌책방들은 규모도 크고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구하지 못하는 책도 간혹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지금은 규모가 큰 헌책방 세 곳만 남았지만 불과 이년 전만 해도 몇 곳이 더 있었는데, 모두 빈티지 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동묘시장의 명물 헌책방


이 시장에는 점포상 보다 노점상이 많아 사는 사람이건 눈요기만 즐기는 사람이건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구경한다고 해서 눈치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번듯한 가게보다 길거리 노점들에 사람들이 더 몰리는 모양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시장의 골동품가게


노점시장과 골목시장 구경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시장함을 느끼면 벼룩시장 골목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식도락을 즐길 수 있다. 단돈 2,000원에 맛볼 수 있는 따끈한 국수부터, 부침개와 튀김, 동태찌개와 매운탕까지 도심에서 믿기 힘든 가격으로 맛까지 훌륭한 음식들로 든든하게 요기를 할 수 있다.


시장골목에는 가성비 좋은 식당들이 즐비하다.


동묘는 어르신들의 열린 문화센터같은 곳이다. 요즘 어르신들 소일할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여기서는 의류와 생필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막걸리도 한잔 나누면서 어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복잡하고 활기찬 시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모습들도 투영된다. 이곳을 찾는 경제력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의 애잔함, 언제 시행될지 모르는 도시개발의 공포, 사적지 인근의 노점상 영업 금지조치 등 시장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하루속히 걷히길 기대해본다.

 

나이가 들다 보니 주변에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큰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그 시절을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도심의 동묘시장에서 내 안의 순수를 만나보고 나만의 감성을 깨워보는 것은 어떨까.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작성 2022.07.19 11:01 수정 2022.07.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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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