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블로거이자 칼럼니스트였던 프레드릭 베크만(1981- )은 2012년 '오베라는 남자'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여 인구 9백만의 스웨덴에서 7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였고, 해외로 판권이 수출되며 독일,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이후 거의 모든 소설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주인공은 열심히 일해서 이름만 대로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정에 소홀했던 탓에 아내와 아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어느 날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암에 걸린 한 소녀를 만난다. 그는 소녀를 보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을 떠올린다. 그 소녀는 암이라는 병이 어떤 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와 다른 사람을 위해 천진함을 가장한다. 소녀의 그런 속마음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소녀가 곧 죽으리라는 것도 안다.
주인공은 아주 오래전부터 회색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여자 사신을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이 태어나기 전 태아였을 때 쌍둥이 동생을 데려갈 때 사신을 보았고, 친한 친구를 사고로 잃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사신은 주인공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암 병동에서 만난 사신이 소녀를 데리고 가려고 하자 주인공은 사신의 명부를 빼앗아 밖에 주차된 차를 몰고 나가다가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피투성이가 된 주인공은 다른 사람을 데려가 달라고 말한다. 그 다른 사람은 바로 주인공 자신이었다. 그러나 사신은 죽음은 죽음으로 바꿀 수 없고 목숨으로 내놔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목숨을 내놔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아들은 자신의 존재를 모른 채 다른 사람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자신의 존재조차도 모두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지만 그 성공을 좇느라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그가 성공을 좇는 사이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암에 걸린 이후 먼 발치에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했던 주인공은 다섯 살 소녀와 목숨을 맞바꾸면 이제 아들은 자신의 존재조차도 기억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의 삶을 선택한 주인공은 아들이 일하고 있는 술집을 찾아가 아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뒤 조용히 사신의 뒤를 따라 간다.
책의 주제는 ‘죽음’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히 여미는 감동으로 내용을 전달하는데 이 작품은 죽음과 목숨을 다른 개념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의 죽음은 내가 사라지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지되며 나의 인생이 이 세상에 남는 것이다. 내가 죽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산다면 내가 택한 행동의 가치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목숨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와 인생 자체가 아예 없던 것이 되고 사라져 버린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베크만은 2016년 크리스마스 직전의 어느 늦은 밤, 아내와 아이 들이 잠든 침대 옆에 사랑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작품으로 썼다고 한다. 100쪽도 안 되는 이 짧은 소설이 주는 감동은 가족과 자녀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잘 살기 위해서라고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쫓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있음에도 일부러 애써 모르는 체하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리는 것일까.
주인공처럼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어도 결국에 그의 곁에는 아내와 아들이 없었다. 그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질병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사신뿐이었다. 아마도 작품 속 주인공은 아들에 대한 못 다해준 사랑을 그 꼬마 아이에게 줌으로써 아버지의 부정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사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는 사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과 맞닥뜨리는 때가 오면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때 깨달을 수도 있다. 작품은 묻고 있다.
“당신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이며, 지금 당신이 잃어버리고 있을 그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을 위해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 남기고 갈 가장 아름다운 유산은 무엇인가?”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민병식 sunguy2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