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몸부림치지 마라. 이 세상과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 이 세상의 신비한 무언가에 동화되어 흘러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장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의 근원설화. 어느 먼 옛날, 한 나무꾼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그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걷다보니 어디선가 돌이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백발이 성성한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게 보였다. 나무꾼은 무심코 도끼를 옆에 세워두고 구경을 했다. 문득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으려 했다.
그런데, 도끼자루가 바싹 썩어 집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산에서 내려와 보니, 마을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한 노인을 만나 자신은 이 마을에 사는 아무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그분은 저의 증조부 어른이십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이 산에서 잠깐 ‘신선놀음’을 하고 내려왔는데, 세상에서는 몇 세대가 지나갔던 것이다.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마의 산’에서도 마법이 일어난다. 조선기사 시험에 합격하여 곧 함부르크 조선소에 입사할 예정인 한스 카스토르프는 3주 예정으로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요양원 베르크호프에 간다.
그의 사촌 요아힘 침센이 폐결핵으로 그곳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에게도 폐결핵 증상이 발견되어 결국 7년의 시간을 머물게 된다. 그는 어느 날 스키를 타다가 눈보라에 길을 잃는다. 그는 오두막에 피신해 있다가 깜빡 잠에 든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본다. ‘헉! 아직 채 5시가 되지 않았다. 5시가 되려면 12분 내지는 13분이 더 있어야 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여기 눈 속에 누워 행복과 공포의 장면을 보고, 그토록 대담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도 10분 남짓밖에 흐르지 않았다니!’
그는 비몽사몽간에 삶과 죽음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서로가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다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장자가 어느 날 제자에게 자신의 지난 밤 꿈 얘기를 했다. “어젯밤에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장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꿈에서 깨어나니 나는 다시 장주가 되었는데, 나는 나비인가? 장주인가?’
제자가 말했다. “스승님, 그런 꿈 얘기는 다 쓸데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장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쓸데없는 것이야말로 쓸데 있는 것이다.” 장자는 무용지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네가 길을 갈 때 발로 밟는 땅은 두 발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의 땅만 있다면, 네가 길을 갈 수 있겠느냐?”
나무꾼이 나무하러 갔다가 바둑 구경에 도끼 자루가 썩어나가는지도 모르는 경험, 사촌의 병문안을 갔다가 길을 잃고 눈보라에 갇히는 경험, 이런 경험들이 우리를 삶의 정수에 가 닿게 한다. 삶은 정해진 길을 가는 듯이 보이지만, 그건 겉보기에 그렇다.
우리가 우연히 길을 이탈하여, 전혀 다른 곳에 가게 될 때, 그때 우리는 무용지용을 체험한다. 쓸데없는 것에서 무궁무진 생의 샘물이 솟아나는 경이로운 체험. 우리가 길을 가다 잠시 쉬었다 가는 나무의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그 의자에서 우리는 삶의 비의를 한순간에 깨달을 수 있다. 쉬었다 내쉬는 한숨에 한 우주가 태어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인 것 같지만, 실은 나비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꿈결에 홀연 깨달을 수 있다.
태양이 서산에 져서 깊은 어둠의 강을 건넜기에, 다음 날 아침 말갛게 다시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에, 우리의 영혼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꺼비와 능구렁이를 보아라
알을 밴 두꺼비를 잡아먹은 능구렁이가
두꺼비의 독에 의해 죽고
오히려 죽은 두꺼비의 알은 깨어나
죽은 능구렁이 몸을 파먹고
두꺼비 새끼들이 태어나는 것을
세상일이 다 그와 같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 권대웅, <장자의 두꺼비> 부분
시인은 장자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천지자연의 이치,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크게 보면, 이런 이치의 선율에 몸을 싣고 춤을 추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식을 위해 능구렁이의 아가리에 들어가는 어미 두꺼비와 그걸 알고서도 어미 두꺼비를 먹는 능구렁이의 생을 수없이 반복할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