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부처가 따로 있나

하진형



좀 다른 얘기지만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 말기에 과도한 노역에 견디다 못한 진승(陳勝)은 오광(吳廣)과 함께 농민 봉기를 일으킬 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유명하다. 봉기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말은 오늘날까지 중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농민 봉기를 상징하는 외침이 되었다.

 

내가 직장을 퇴직한 후 자연에 안겨 땅을 파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웃으며 살고 있을 때 윗마을에 사는 채웅 형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형은 끼니때마다 아랫마을에 사는 나에게 밥 묵으로 오이라며 챙긴다. 오늘은 거처(居處)를 찾아온 아내와 의논했다. ‘매일 얻어먹을 것이 아니라 오늘은 우리가 형의 한 끼 식사를 대접하자.’

 

그리하여 전화를 넣었더니 엊그제 제사를 지내고 먹을 것이 많이 있으니 올라오란다.’ 그래도 오늘은 내려오십사 해도 기어코 올라와서 밥을 먹으란다, 아내까지 꼭 데리고 오라면서. 어쩔 수 없이 올라가니 밥을 두 그릇만 차린다. 당신은 오후 늦게 집에서 콩국수를 많이 먹었다면서 우리보고 맛있게 먹으라고 재촉을 한다.

 

갑자기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부족한 끼니를 걱정하셨다. 어쩌다 큰 양푼이에 계란 하나 들어가지 않고 푸성귀만 가득한 비빔밥을 하셔서는 아버지 밥을 퍼 드린 후 우리들과 같이 드셨는데 언제나 숟가락을 일찍 내려 놓으셨다. 그땐 몰랐다.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얼마 드시지도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으신 것을. 그 깊고 넓은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지금 산 밑의 작은 집에 살면서 늘 감사해 한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쌓은 덕업(德業)으로 나는 오늘날 이렇게 웃으며 산다.’ 비록 풍족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적당한 수입에 적당한 빚도 가지고 하루하루의 일에 감사하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어쩌면 그렇게 덕업을 이루신 것도 기적이고,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기적이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살펴보면 고마움은 곳곳에 서려 있다. 그중의 한 사람이 앞서 말한 차채웅 형이다. 그는 스피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거의 일치하는 사람이다. 스마트폰의 문자 보내는 것도 서툴고 SNS를 하거나 검색하여 활용하는 것은 더욱 서툴지만 웬만한 전화번호와 통장번호는 거의 다 외운다. 물론 단축키를 사용하는 것도 모른다. 그래도 땀흘려 풀을 벤 자리의 깨끗함을 즐기고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끼니때는 물론이고 늦게라도 방문자가 있으면 밥을 새로 지어서라도 끝까지 먹인다. 친소(親疎)와는 관계없이 끼니때 집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밥을 먹이고 일을 시키는 등의 계산은 전혀 하지 않는다. 또 그의 주특기 1번은 식사 후 설거지이다. 그릇이 단 한 개라도 반드시 바로 씻어 건조대에 올리고 행주도 빨아 말린다. 이런 습관은 땅도 편안해야 한다며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몸소 풀을 베어내는 모습이며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 면에서도 나타난다.

 

부처님께는 죄송하지만 나의 눈에 그는 곧 부처다. 부처의 씨가 따로 있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그는 스스로가 부처가 되고 있었다.’ 그가 비록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높은(?)자리까지 올라가지는 못했어도 혼자 있을 때와 여럿이 함께 있을 때가 한결 같고, 자기 질서를 지키며 사는 그의 곁에 있으면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 따뜻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리고 좀처럼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에게 농약보다는 손수 풀을 베고,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 것이 곧 수행(修行)이다.

 

물론 형도 한평생을 그렇게 산 것은 아니다. 소싯적엔 술도 꽤나 먹고 거들먹거리기도 했다.

청춘을 바쳐 과수원을 일구었고 새벽녘엔 어시장 경매장에서 숫자와 싸웠다. 그러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처럼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그도 언젠가부터 자신도 모르게 변하였고, 그랬더니 편안한 일상이 따라오더란다. 진정한 축복이고 대단한 고마움이다. 작은 변화, 작은 선행이 곧 부처님의 뜻이 아닐까.

 

예로부터 훌륭한 장수(將帥)는 군사들을 살려놓고 전쟁을 하고, 어버이는 자식들을 먼저 먹여놓고 당신들의 허기를 채운다. 귀신도 부린다는 돈이 판치는 세상이라도 실체(본질)를 제쳐두고 관념만으로는 영혼을 맑힐 수 없다. 그리고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이 있듯이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따뜻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혼자만 잘사는 것 보다 조금 모자라도 여럿이 같이 어울려서 살아간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7.22 11:13 수정 2022.07.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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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