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밝게 내리는 새벽비

하진형


어제 모처럼 일찍 잠을 잔 탓에 새벽에 눈을 떴다. 333. 창밖이 훤하다. 그믐달이 떠 있을 시간인데 왜 이렇게 밝지? 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제법 굵은 새벽비가 내리고 있다. 대서(大暑) 뒷날인 새벽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함석지붕을 타고 내린 낙숫물이 나름 질서를 지키며 떨어진다. 그리고 튀어 오르기도 한다. 수증기가 되려는 비의 꿈인가? 비를 막아주고 있는 현관위의 플라스틱 위로도 떨어진다. 뚜둑 뚝 뚜둑.

 

윗집 농장의 개가 새벽비를 보고 짖는다. 산짐승이 내려와 먹이를 찾고 있나? 현관에서 비를 피하며 나도 하늘을 본다. 저 멀리 사람들이 만든 넓은 도로로 새벽여행객을 태운 차들의 불빛이 명멸(明滅)한다. 모두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바쁜 그대들 들으시게, 너무 빨리 가면 영혼이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네. 가끔씩은 뒤도 돌아보고 쉬기도 하시게나.’ 새벽에 하는 괜한 나의 걱정인가.

 

며칠 전 자정께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었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섭리에 따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사색(思索)의 달이 되어가고 비까지 내리고 있는데 새벽이 밝다. 지금 새벽의 희미한 밝음은 아마도 하늘 너머 또 다른 하늘의 빛을 받아서 새벽비를 비추는 것이 아닐까? 흔히들 과학적으로 빛의 굴절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미미(微微)하지만 나의 땀과 그림자도 누구에게의 편안함이 될 수 있을까.

 

새벽비, 황소개구리 소리, 수탉의 외침이 공존하는 시간에, 낙숫물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비 내리는 여름 새벽을 스케치하고 있는 아마추어 작가의 맨다리를 모기가 문다. ‘나도 있소,’ 모기의 왱왱거림이 낙숫물 소리에 묻힌다. 덕분에 모기도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비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내릴까? 어제 낮에 풀을 베면서 흘린 땀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에 보태어졌나?

 

집 앞 논에는 싱싱하고 튼튼하게 자라는 벼가 비를 맞으면서 즐기고 있다. 기분 좋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슉슉 꽂히는 비에 벼의 노랫소리가 더한다. 잎이 넓은 감나무 소리보다는 작지만 분명히 그들도 노래하고 있다. 쌀밥 맛도 좋을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나도 새벽을 즐긴다. 새벽비가 비추는 하늘빛에 비에 젖은 감나무 그림자가 희미하다. 오늘 처음 보았다.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으며 앞으로 새로운 것을 또 얼마나 보는 행운을 맛볼까? 고마운 일이다.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다. 어제 풀 베는 작업을 오래하여 일찍 잠들었는데 덕분에 일찍 일어나 새벽비와 친구하는 행운을 맞았다. 수탉과 황소개구리가 서로 추임새가 되어 화답하며 새벽을 깨우고, 바람 한 점 없는 비가 수직으로 꽂히고 튀어 오르면서 만물을 깨운다. 사실은 만물들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눈만 감고는 지극한 정성으로(至誠) 싹을 틔우고 빗물에 발을 씻으며 새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른다. 이렇듯 신독(愼獨)의 시간은 각자가 모두 다르다.

 

그렇게 새벽 아침은 우리에게로 온다. 다른 하늘의 빛까지 끌어와 새벽비라는 하얀 모시적삼을 걸치고 게으른 나를 깨우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아침이다. 며칠 전 보름달과 나 사이의 시간과 오늘 새벽비의 한가운데의 시간도 나를 품어주는 같은 시간이다. 작은 집의 거실에 걸려있는 늘 깨어있으라(隨處作主 立處皆眞)’는 귀한 글을 주신 큰스님은 잘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세상 모두 다 귀하고 고맙다. 이런 세상도 고맙고 저런 세상도 고맙다.

 

이 생각 저 생각에 훌쩍 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우리는 가는 것이다. 오늘은 새벽비와 함께 간다. 빗소리도 점점 커지고 굵어진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창밖의 낙수소리를 듣는다. 뱃속에서 꼬록하며 화답한다. 결국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하나다. 빗소리가 커지자 수탉소리가 잠시 멈춘다. 덕분에 암탉이며 병아리들은 좀 더 새벽잠을 즐길 것이다.

 

 

 

세게 내리는 빗소리나 낙숫물 소리는 시끄럽지 않다. 나의 소리도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 안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디지털시계가 434분을 새겨 놓고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조용히 가르치고 있다. 선선한 밤에 홀로 새벽비를 만난 한 시간은 더없이 편안했다. 곧 가을이 오려나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7.29 11:11 수정 2022.07.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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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