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고구려史 유기(留記)와 신집(新集)을 찾아라'

일제의 한국사적 분서갱유

김용필

1. 동방의 대제국 고구려사는 어디로 갔나?

 

5세기 고구려는 방대한 영토와 찬란한 문명을 가진 대제국이었다. 서양엔 로마, 도양엔 고구려였다. 세계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고구려 철갑기병대와 로마군단이 싸우면 고구려 기병이 이긴다.’ 라는 강성대국이었다. 그런데 680년이란 장대한 고구려 역사 기록은 삼국사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엔 조선왕조실록 같은 유기(留記)란 역사책 100권이 있었고 정사만을 기록한 신집도 5권이 있었다. 17대 소수림왕 때 태학에서 태학박사들이 민간 풍습과 국가 대사를 한문으로 엮은 역사책 유기(留記)100권이나 집필했고 영양왕 땐 태학박사 이문진이 신집(新集) 5권을 남겼는데 지금은 한 권도 전하지 않는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고구려사 유기 100권과 신집 5권은 어디로 갔는가? 통일신라가 없앴고 당나라가 신당사에 합류시켜 없앴고 일본이 한국사를 모두 불태웠다. 그뿐 아니라 600년 백제사도 없애 버렸다.

 

현재 우리나라 고대사는 환단고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해서 알려지고 삼국사기가 정통의 고대사인 양 인식되었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환단고기(고조선 역사-계연수). 서기(백제역사-고흥박사), 본기(백제역사), 유사(고구려 역사), 신집(고구려 역사-이문진), 화랑세기(신라사-김대문)에 기술한 역사를 요약 편집하였고 중국의 사기, ·구당기에서 참고하였다. 그리고 문제는 일본학자들이 해석한 한국 역사란 것이다.

 

신라 사관 학자인 김부식은 고려 때 삼국사기를 쓰면서 고구려사와 백제사를 거의 빼버렸다. 그러나 알아둘 것은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보다 훨씬 발달한 선진 문화를 가졌고 한문 보급과 사용률이 높아 중국의 서적을 많이 보급받아 학문의 질과 교육열이 높았다. 그런데 고려 때 김부식이 신라 사관으로 삼국사기를 집필하면서 대부분의 고구려, 백제사를 없애버렸다.

 

일제의 한국역사책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슬픈 역사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일한일족이란 미명아래 한국말, 한국사 말살 정책을 폈다. 경성제국대학 이병도와 그를 추앙하는 제자들이 앞장을 서서 한국사를 일본 사관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고 우린 그들이 만든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더 가슴 아픈 것은 그들이 앞장을 서서 한국의 고서적과 역사책 20만 부를 수거하여 불태워 버렸다. 그러나 일부 고서적과 고구려사. 백제사는 일본에 남아 일본 역사에 인용되었다. 아무튼 사라진 고구려사 유기(留記)와 신집(新集), 그리고 백제서기(百濟書記), 백제본기(百濟本紀)는 분명히 일본에 있을 것이다. 눈여겨 찾아봐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제. 고구려 사는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그 맥을 찾아볼 수 있었다. 환단고기는 삼성기와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에서 간추린 것으로 상고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2. 역사란 편집된 기록의 창작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를 기록한 일기다. 따라서 역사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고 정립된 기록의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온 시대의 환경과 사회, 문화, 정치, 정서적 상황변화를 엮어서 만든 기록이다. 그래서 역사는 사람이 살아 온 과정을 엮은 다큐이기에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삶에 조명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가름하는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고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사라진다. 역사는 개인이나 단체, 그리고 국가가 존재한 사실을 이야기로 써 논 기록이기에 다양한 형태와 부류가 있다. 이런 기록을 모아 정리하고 편집하여 하나로 정립한 것이 역사이다. 그래서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니 쓰는 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것도 역사로 인정한 기록이니 역사이다. 이는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와 통한다.

 

3. 역사는 시간이 만든 사실 기록사이다.


역사는 개인의 생활이나 소속한 집단이나 사회의 움직임과 국가적 사건 사고를 시간별로 기록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개별적인 기록을 종합하여 선택적으로 정립시켜 태어난다. 기본은 사실 기록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진서이다. 조작 왜곡 된 위서여선 절대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기록하고 정립하고 편집하기에 사견이 작용할 수가 있다. 국사는 기록과 통계에 의한 사건 사고를 바른 사고관을 가진 사관만이 편집하여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만드는 사관들은 사초를 수집하고 초안할 때 누구의 요구나 명을 받지 않았고 일단 쓰여지면 초안은 태워버리고 귀를 씻고 붓을 빨아버린다. 그렇게 엄중하게 역사는 쓰였다. 그리고 역사는 당대가 아닌 후대가 쓰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신라 백제, 고구려 이야기를 고려 시대엔 쓴 것이다. 문제는 세계사다. 세계사는 공인된 편집이다.

 

각국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열하고 사건별로 나열하여 중요 사건만 편집한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사 기록을 토대로 편집하고 정립하는데 사관의 사견이 개입되면 안 된다. 그러나 붓을 든 자의 기록이고 강자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주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삼국사기는 고려 때 김부식이 신라사 위주로 써서 고구려사나 백제사가 대부분 빼버렸다. 한국사는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 사학자들이 해석한 한국사를 일본 사관에 비추어 집필하였다.

 

4. 한국 고대사 위서(僞書)인가 진서(眞書)인가?


한국 상고사는 위서인가, 진서인가를 놓고 말이 많다. 역사는 없고 설화만 있다는 말이다. 출처가 분명치 않은 의문점 때문이다. 주로 한단고기가 고조선의 역사라고 하는데 한국사라기보다는 동양사적인 기록이다. 환단고기는 고조선 때 쓴 역사 문헌이 아니고 구한 말 계연수란 사람이 집필하였고 1991년 이유립이 대종교적 관점에서 집필하였다. 따라서 사실 사가 아닌 창작된 역사이며 판타지 같은 설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정리해 줬다는 데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그보다 더 근접한 고조선사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사는 위서인가 진서인가란 의문은 출처가 설화인가, 정통 기록 사인가란 질문이다. 역사는 민간설화나 개인이 기록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것은 국가가 주체한 정통사지만 다른 역사는 설화나 유사를 기록한 사료를 종합하여 정립한 역사기에 다분히 설화적이고 유사적인 점이 많았다. 한국사의 근원은 삼국유사 (일연), 삼국사기(김부식), 한단고기(계연수), 조선 상고사(신채호), 발해고(유득공), 유기(留記), 신집(이문진), 백제서기(고흥), 화랑세기(김대문) 통일신라기(최치원), 고려사(정인지. 김종서) 같은 분이 엮은 역사서를 참고하여 정립한 것이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

김용필 danmoon@hanmail.net

 

작성 2022.08.09 11:39 수정 2022.08.0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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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