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에서 말복 사이 여름의 한낮은 그야말로 염천(炎天)이다. 오죽 더웠으면 염천에 저승문도 열린다고 했을까. 아스팔트 도로는 온갖 것들을 녹여 내릴 태세고 벼논의 물도 뜨겁기까지 하다. 한낮의 느티나무 매미소리는 높아가고 호박잎은 늘어져 간다. 사람들은 휴가라며 떠난다. 입추(立秋)의 전령인 고추잠자리가 바쁘게 날고 있어도 황토의 복사열은 뜨거운 바람을 몰고 다닌다. 농작물은 단단하게 익어가며 가을을 준비한다. 농부들은 아침저녁에 작물들과 만나고 한낮엔 그늘과 친구한다. 그렇게 세월은 자연의 섭리를 수행한다.
뜨거운 볕이 땅을 달구고 있는 낮 한 시쯤이었다, 이웃 밭을 일구고 있는 팔순 노모가 거실 문을 두드린 시각은 “아저씨, 선생님, 집에 있소~~” 얼른 옷을 챙겨 입고 나간다. “버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소, 이러다 덥어서 죽것다. 저어기 우리 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만 좀 태워주면 좋겠소.” “예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자동차 키를 챙겨서 나가니 그늘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 호박이며 온갖 채소를 싼 큰 보따리를 두 개나 끼고 앉아 계신다. “모친, 이 더운 한낮에 밭일하시다가는 큰일 납니다. 어서 타십시오.” 보따리를 뒷좌석에 싣는데 걱정스런 말이 자꾸 튀어나온다.
“모친, 서울 사는 아들은 휴가 때 다녀갔습니까?”
“안 왔소, 추석에나 올 거요. 일 좀 할라 캤더니 더워서 도저히 못 하것소, 신세 좀 집시다.”
“신세가 문제가 아니고 한낮에 일하시다가 더위 먹으면 큰일 납니다. 그리되면 자식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습니까?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걱정은 무슨, 이래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 거지요. 지금도 많이 살았소.”
말끝에 서운함이 잠겨있다. 그래도 자식자랑은 여전하시다. 팔순 어머니는 이글거리는 팔월의 태양을 등에 업고 잡초를 메고는, 호박이며 부추, 가지 등 푸성귀를 거두어서 보자기에 싼다. 그리고 동네 어귀의 난전(亂廛)으로 나가거나 이웃들과 나눈다.
팔순을 넘긴 어머니가 일구는 밭까지 오시려면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단다. 밭주인은 올케인데, 예전에 일찍 혼자되어 어렵게 아이들 키우던 시절을 생각하면 ‘작아도 돈이 되는데’ 아무리 더워도 밭을 놀릴 수가 없어서 가꾸신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들은 그렇게 사셨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병원에 오시기 사흘 전까지 밭일을 하셨다. 어느 날 ‘내가 몸이 좀 무겁네’라시던 전화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달라서 병원으로 모셨는데 스무날 만에 머나먼 여행을 떠나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린다. 못난 자식의 때늦은 후회다.
지친 어머니를 지붕도 없는 뙤약볕 정류소에 내려드릴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여름 그늘이 또 얼마나 고마운가? 가로수가 높다. 그 끝에 높이 날아가고 있는 뭉게구름이 더위를 더 한다. 팔순 노모가 뙤약볕 아래에서 기다리는 것이 버스가 아니고 어쩌면 자식인지 모르겠다. 천장과 가로수 그늘이 있는 정류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이내 27번 버스가 온다.
환승하지 않고도 할머니 집 앞으로 갈 수 있는. 허리에 두른 전대(纏帶)에 매달린 버스카드가 달랑거린다. 그것은 노모가 오가는 흔적이다. 가로수 그늘과 헤어진 버스가 회색 어머니를 태운 채 멀어져 간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뵐 수 있으려나. 내가 집에 없을 때 찾아오시면 어떡하지?
집으로 돌아와 느티나무 밑에 차를 세우니 뙤약볕이 내리쬐는 헛간 입구에 상사화가 피어나 있다. ‘누구를 기다리고, 어떤 님을 잊지 못하는가? 떠나간 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사화만 모르는가? 그대를 보고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했고 피땀을 흘렸던 그 어머니가 뙤약볕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가? 떠나간 님아, 한번씩이라도 뒤돌아보시게나. 그대는 잊었을지라도 그대를 잊지 못하는, 태생적 천륜으로 잊지 못하는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음을 그대는 모르는가? 그럼에도 그대들은 뙤약볕을 버텨내는 상사화의 자랑이라네.’
시멘트 바닥의 열기(熱氣)는 수분이라고는 다 빠져나가버리고 없는 폐목더미를 휘감아 상사화의 목과 가는 다리를 스친다. 열기에 호흡이 멈춘다. 그래도 상사화는 더위를 피할 줄 모르고 서 있다. 상사화는 오랜 기다림에 학의 목(鶴首)이 되었다. 학의 목으로 피어오르기 전에 땅속에서는 또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렸겠는가?
‘그대여, 추석 때엔 그 목이 더욱 가늘게 빠져있을 테고, 내년 여름엔 뙤약볕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네. 뙤약볕에 버티고 선 느티나무 잎도 때가 되면 단풍이 되고 떨어질지니. 기다림도 한계가 있을지니.’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