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方外人(방외인) 김시습, 무량사에서 만나다.

홍영수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발가벗고 있는 나목을 하늘을 향해 올려다보았다. 나뭇잎 하나 없는 잔가지에 수없이 맺혀있는 물방울들, 맑고 투명하다. 어린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처럼 촉촉함을 간직한 봄비의 결정체 비이슬’, 평범한 소재를 그림으로 승화시켜 신비스럽게 표현한 김창렬 화백의 작품 물방울이 떠 오른다.


한참 넋을 놓고 자연이 선물한 오묘한 현상에 매료되어 감상하는 순간, 레바논의 詩人 칼릴 지브란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는 나는 이슬방울을 명상하여 바다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는 이슬방울에서 바다의 비밀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원리를 알아냈는데, 난 나무에 맺힌 비이슬에서 과연 무슨 비밀을 알아냈는가? 겨우 꽃비(雨花)’‘물방울작품이라니……


잠시 후 나간 넋을 추스르고 돌아서는데 눈앞에 보이는 세 글자가 있었다. ‘우화궁雨花宮이다. 사찰에 어인 꽃비 궁전이란 말인가? ‘雨花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이 계신 곳과 대중 앞에서 법화경을 처음 설법하실 때, 만다라화 등 꽃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우화궁(雨花宮)’은 부여의 만수산 자락에 자리한 無量寺(무량사)’에 있다. 조금은 심한 듯한 방랑벽과 알량한 호고가(好古家)로서, 옛것과 옛사람을 만나러 이곳에 왔다. 봄비 소리를 들으며 절간에 들어섰다. 넓은 경내에는 스님도 중생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은 봄비 소리요 보이는 것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담을 뛰어넘는 다람쥐, 그리고 인기척에 날아가는 장끼 한 마리. 이곳 無量寺는 조용하다 못해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하는, 곱디곱게 늙어가는 절간이 하나의 풍경 되어 가슴에 스며들었다.

 

이곳을 찾게 된 이유는 시대의 방외인으로,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불우한 삶을 살다 간 천재적 작가인 <금오신화>의 주인공 매월당 김시습과 마주 앉아서 한잔하고파(對酌) 먼 길을 왔다. 사실 역마살 낀 사주팔자인 필자가 그의 방랑벽 그것도 벽()까지는 아니고 다만 닮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김시습(1435-1493)은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서 생이지지(生而知之)가 바탕이 되어 생후 8개월 만에 스스로 말뜻을 알았고 3세 때에는 글을 능히 쓸 수 있게 되어 당시의 정승 허조가 그의 집을 찾아와 김시습을 만나보고 자기는 늙었으니 를 가지고 詩句를 지으라고 하니 김시습은 곧 소리를 내어 老木開化心不老(노목개화심불노 :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그 마음 늙지 않았네.)”라 읊조리니 그는 무릎을 치며 경탄했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문학은 한문 고전을 통해 단련된 관각문학(館閣文學)이 중심이 되었고, 그들은 중세 문학을 지탱할 만한 불변의 문학적 전범을 구축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형식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방외인 문학의 바탕은 근원적으로 사물과 심성의 괴리, 갈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데서 그 특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과장되게 보일 만큼 솔직한 자기 고백, 방황과 갈등의 확대 등은 현상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았다. 또한, 통념적인 이상의 거부와 대안의 모색이라는 사실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방외인(方外人) 문학은 方外人이 주체가 되어 이룩해 놓은 문학 활동과 문학작품의 총칭이다. 방외인은 어떤 문화의 중심권에서 벗어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방외(方外)’에서 삶을 꾸려간 인물들을 지칭한다. 조선 전기에서는 관각문인(館閣文人)’사람파문인(士林派文人)’에 소속되지 않는 재야의 제3 작가군을 설정하고 그 문학을 방외인문학(方外人文學)’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했다.


김시습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관적이고 저항적이다. 이러한 그의 작가정신에서 창작한 <金鰲新話(금오신화)>는 전체적으로 현실 비판 정신이 깃든 방외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사람 중심의 자각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제재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매월당의 방외적 문학관은 <춘향전> 등 조선후기 고소설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세조의 단종 폐위 등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기력하게 떠밀려서 가야만 했던 주변적 지식인의 고뇌와 갈등, 새 집권세력에 대한 경멸과 협조, 그의 삶이 보여주는 자기 모순적 양면성 등이 평생을 방외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절집을 나서려는데 봄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을 접고 비를 맞았다. 비를 실컷 머금은 무량사의 봄을 한 모금 마시고 해우소로 갔다. 살랑바람에 물방울은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면서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이 리듬을 타며 똑똑 떨어질 때 경내의 숨죽인 초목들이 가만가만 걸어와 타는 목마름을 적셨다.

 

절집을 나서며 김시습의 시비(詩碑)가 있는 곳을 지나 매월당의 부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부도는 고승의 부도밭 한가운데 있었고 이곳에서 59세에 생을 마쳤다. 존 로크는 어떠한 사람의 지식도 그 사람의 경험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듯이, 매월당도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산천주유(山川周遊) 하며 쌓은 많은 경험 등을 통해서 다양함을 터득했기에 그가 훌륭한 방외적 사상가로, 문학가로 남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문학작품 공모전 금상

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3회 코스미안상 대상

이메일 jisrak@naver.com

작성 2022.08.15 11:22 수정 2022.08.15 11:43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