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우리 모두 나이(철) 드는 아이 노자(老子)가 되어보리

이태상

 

옛날에 본 ‘로마의 대화재(Great Fire of Rome)’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서기 64년 7월 19일 로마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당시 로마제국 황제였던 네로는 화재 소식을 듣고는 휴가를 중단하고, 로마에 와서 이재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등 참사 수습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재앙에 시민들의 민심은 진정되지 않았고, 심지어 네로황제가 불을 질렀다는 방화설까지 나돌았다. 그러자 네로 황제와 집권세력은 이에 대한 민심 수습책으로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우고 예수의 12사도를 비롯한 기독교도를 대학살 하였다.
 
대화재 당시 불타는 로마 시내를 보면서 네로가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설이자 영화적 과장이지만, 당시 '사악한 미신', '로마제국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를 믿는자'라는 공격을 받고 있었던 기독교도들을 사회 혼란 해결의 희생양으로 삼아 화형으로 대학살한 것은 이후 네로가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이자 폭군 또는 정신이상자로 역사에 낙인찍힌 원인이 되었다.

로마 대화재와 민심 수습을 위한 기독교 탄압을 소재로한 역사소설로는 셴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가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쿠오 바디스(Quo Vadis, 1951)’에서 네로 황제가 너무 슬프다고 눈물을 종지에 받는 장면이 생생하게 살아나면서, 미국 대선 막바지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청중들에게 "당신들은 엄청 운이 좋아 (지난 4년 동안) 나 같은 사람을 당신들의 대통령으로 갖게 됐다(You’re so lucky to have me as your President)"고 한 말이 오버랩된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 씨가 최근 또 한 권의 노자(老子) 책 ‘노자가 옳았다’를 내면서 ‘노자 5000자’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해설했다.
 
노자 도덕경의 첫 구절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를 저자는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 말하여진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로 ‘항상 상(常)’ 자(字)를 ‘늘’로 번역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자는 고조선의 사상가다"라고 선언한다.
 
중국 고전을 TV로 강의해 장안에 숱한 화제와 논쟁을 불러왔던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씨는 18년 전 ‘불교의 본래 모습–달라이 라마를 만난 후’라는 강연을 통해 ‘불교는 무신론이며 과학’이라고 역설했다.
 
그러자 “불교를 자기식으로 고착화하고 과장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망치는 것”이라며 발리문헌연구소장인 마성스님이 김 씨의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2002년 출간)’의 오류와 과장 등을 조목조목 지적한 글을 불교 인터넷 언론인 붓다뉴스(buddhanew.com)에 올렸었다. 그 당시 영국에 사는 친구 김원곤 씨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 일부를 옮겨본다.
 
“도덕경 이야기를 하셨는데 생각나는 게 있어 몇 자 읊어볼까 합니다. 얼마 전에 ‘도올을 울린 여자’와 ‘노자를 웃긴 도올’이란 제목 하에 월간중앙 기사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참으로 통쾌한 글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이름 없는 아주머니가 유명한 대학교수요 철학자인 도올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글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이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요즘 인기 절정의 도올이란 자가 TV에서 노자, 공자 강의를 하여 시끄러운데 그 내용이 아주 노자나 공자를 웃기는 것이랍니다. 도덕경 강의에는 노자가 없고 논어 강의에는 공자가 없으며 불경 강의에는 부처가 없다는 말로 도올을 정면으로 깔아뭉갰답니다.”
 
이 편지에서 친구는 자신의 소감도 피력했다. 단지 번역의 차이에서 오는 논쟁인 것을 어느 쪽이 맞는지는 2500년 전으로 돌아가 노자한테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아주머니의 주장은 철학 강의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거나 엘리트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마치 하버드를 나와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공자를 ‘공짱구’로 표현하고 노자를 ‘책략가’이고 쿵후의 달인이며 깡패와 칼잡이들의 우상이고 하는 결례는 물론 도덕경의 해석도 엉터리라는 것이었다.
 
이런 공자의 태생을 천하다고 하면서 자기는 부유한 의사 집안에 태어나 온갖 부의 혜택을 다 받고 엘리트 코스만 두루 밟은 선택 받은 귀족이라 자랑하는 심사는 무엇인가? 이런 지식재벌, 지식 귀족이 철학의 대중화를 공으로 내세우면서 성현들을 마음대로 깔아뭉개는 작태가 왜 용인되어야 하는가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재미있게 강의를 하는 것은 좋지만 제대로 지식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과 개그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과학자는 아무리 형편없는 인간성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그 원리만 배우고 추구한다지만 철학은 철학자의 인품을 이해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자, 공자를 깎아내리면서 자기만이 알 수 있고 자기만이 강의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사로잡힌 무늬만 지식인일 뿐이라 는 것이었다.
 
우리 다 함께 생각 좀 해보리라. 세상에 예수, 석가모니, 공자, 노자, 장자 등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하나 뿐, 전무후무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너와 나를 포함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 모두가 다 그렇지 않은가.
 
그 아무리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점, 본받을 점이 많다 해도 그 모두가 ‘참고 사항’일 뿐이지, 그대로 전부 다 너나 나에게 꼭 들어맞을 수 없고 또 그러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으리라. 모두가 예수나 석가모니처럼 ‘히피’나 ‘걸인’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될 일이 아닌가.
 
좀 극단적으로 비유해서 사람의 말소리 몸짓을 흉내 낸다고 앵무새나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예수나 석가모니의 말씀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그들의 행적을 뒤밟아 본들 너나 내가 예수나 석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부모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라도 너는 너의 나는 나의 ‘고행’을 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제각기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만의 깨달음을 얻어 자아실현의 자아완성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발견을 통해 참된 이웃 관계를 맺을 수 있을 테니까.
 
이럴 때 비로소 너와 나를 분간할 수 있고, 동시에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갓난아이가 점점 눈을 뜨고 조금씩 걸음마를 하며 배워가듯 나 없이 네가 있을 수 없고 너 없이 내가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되리라.
 
언젠가 한국의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가 전국의 20, 30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결혼 후 2세가 어떤 사람과 닮기를 바라는가’에 관한 e-mail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설문 자체가 부적절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닮지 않은 전무후무의 유일무이한 개성과 특성을 지닌 2세가 더 바람직할 테니까.
 
아, 그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제자는 스승을, 자식은 부모를 따를 것이 아니라 능가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이어라.
 
아,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 같이 코스미안으로서 ‘나이(철) 드는 아이’ 노자(老子)가 되어 보리.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작성 2022.08.27 10:09 수정 2022.08.27 10:2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