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말보로맨’의 아우라

신연강


말보로맨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글쎄, ‘고독한 자의 표상이라고나 할까요. 기억에서 그를 소환해봅니다. 예전에 외국 담배를 반입하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쩌다 접하게 되는 외산 담배는 인기가 참 좋았습니다. 저도 몇 종류를 피우면서 말보로 담배 한. 두 번 피워보기는 한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에 남지는 않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맛이 쓴 것 같아서, 내 취향이 아니구나, 하고 가까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담배 겉면엔 카우보이가 말안장을 어깨에 두르고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는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기억이 맞는데, 하루키의 수필이 그 기억을 생생히 소환해줍니다.

 

말안장을 짊어지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다. 물고 있는 담배는 윈스턴도 카멜도 아니고, 물론 말보로다.” 하루키에게 말보로맨의 고독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그는 늘 고독했다. 언제나 혼자서 쓸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어느 곳인가 멀리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독은, 그렇다-그가 그 불가사의한 뒷면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하여 한층 깊이를 더하였다.”

-하루키, 말보로맨의 고독

 

작가가 말보로맨을 떠올리게 된 것은 오모테산도와 아오야마 길의 사거리에 있는 커다란 간판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뮤다 해역처럼 이 거리를 도쿄의 버뮤다 지역이라고 한다는데, 사거리에는 항상 몇몇 사람이 휴대전화로 얘기를 하면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사라진다고 하니, 그런 별칭도 적절해 보입니다. 그곳 한 빌딩 옥상에 있는 말보로맨 간판은 아마도 뒷면을 나무 기둥으로 세운 판자때기말보로맨인 것 같습니다. 앞면은 익히 알려져 있듯 말안장을 짊어지고 담배를 물고 있는 카우보이입니다만, 이 간소한 간판이 몇 년 전 전등이 내장된 최신 간판으로 바뀐 것을 하루키는 무척 아쉬워합니다.

 

간판의 뒷면은 앞면과는 달리 그저 판자를 잇댄 널빤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뒤쪽을 지탱하려면 긴 받침대가 필요하고, 거친 판자 면은 사진을 부착할 수 없는 그야말로 투박한 판자때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뒷면은 그냥 그 자체로 거친 들판의 말보로맨 이미지와 딱 들어맞습니다. 하루키에 의하면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를 향해 가는 길에 말보로맨 간판이 보인다고 합니다. 저도 그 길을 한번 지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 관심 있는 분은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하루키가 말하는 모테신도와 아오야마 사거리의 간판도 한번 보시고요, 전 이곳에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만.)

 

필라델피아에서 북상하면서 보면 예의 그 말보로맨은 거미형 자처럼 이상한 형태의 판자 울타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군요, 아마 뒷면을 보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나마 이 간판도 세월이 가면서 좀 더 세련되고 튼튼한 세움 간판으로 교체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키는 아쉬워합니다. “나는 알 수 있다. 그것(간판의 뒷면)이 말보로맨의 제2의 자아라는 것을. 그것을 보면 왠지 가슴이 설레었다.” 그렇군요! 작가만의 감성일까요. 보통 사람의 눈엔 그저 판자때기 간판이지만, 작가는 그 투박한 간판에서 말보로맨의 아우라를 발견하니까요. 그의 말처럼, 가끔은 소박하고 포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투박한 삶의 이면이 더욱 편하고 살갑게 느껴집니다.

 

글을 거의 다 읽을 무렵 멋진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형체가 있는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형태가 없는 것 역시 언젠가는 사라진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하루키 는 역시 멋진 문장을 쓸 수 있는 좋은 작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운이 잔잔히 남으려 하는데.

 

누군가 그 아래에 서툰 글씨로 메모를 남겼습니다(개인이 소장한 책이 아닌 도서관 책에 써놓는 것은 반칙이라는 것, 아시죠). 아주 서툴고 투박한 글씨체로,

 

M.A.R.L.B.O.R.O.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tic occasion.

남자는 로맨틱한 사건으로 사랑을 기억한다.

 

외국인일까요? 그건 그렇고. , 그렇다면, 여자는 무엇으로 사랑을 기억할까요. , 이럴 때 담배 한 대 뽑아 물고 싶은데. 끊은 담배 다시 피울 수도 없고(담배 끊은 세월이 피워온 세월보다 훨씬 길거든요). 담배 연기처럼 여운을 날립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신연강 imilton@naver.com


작성 2022.08.30 11:09 수정 2022.08.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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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