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도 있다. 거의 강산이 세 번 이상 변하도록 왜 뛰는지도 모른 채 뛰다가 경주마차에서 내려서는 얼어있는 땅을 파고 묵은 쓰레기를 치우면서 나의 정체성(?)을 느끼기도 한다. 작은 텃밭도 만들고 호박구덩이를 파면서 자연과 둘이 있을 때 그가 왔다. 홀쭉이 길냥이였다. 식사 후에 먹을 것을 챙겨주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먹고 갔다.
길냥이 세 녀석 중에 제일 작은 아이는 늘 뒤로 밀려나 있다가 맨 마지막에 남은 것을 겨우 먹고는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는데, 그 녀석이 언젠가부터 혼자 집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거처(居處)에 왔다가 길냥이 새끼를 발견하고는 귀엽다고 난리다.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나는 몰랐는데 미안하다. 새끼 있는 동물에겐 더욱 각별해야 한다. 외식 후엔 식당 주인에게 부탁한 고양이 먹거리 봉지를 들고 온다.
큰딸이 고양이 가족의 식사를 주문하여 배달 온 사료며 간식을 챙겨주었더니 며칠 가지 않아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침이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왜 이제 오느냐며 투정을 부리듯 반긴다. 때론 큰 길냥이가 영역에 들어오면 큰 소리로 알린다. 물론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새끼 세 마리는 흰옷, 맹수무늬, 회색 줄무늬 옷을 입고 맑은 눈망울을 맞추며 커간다. 키 작은 엄마는 창고 구석과 헛간 장작더미 빈 곳으로 이사를 반복하더니 어제 오후엔 합판을 깔고 편안하게 누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이젠 가족이어서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다. 고맙다.
엊그제 지나간 태풍에 온 세상이 시끄러웠다. 안타까운 피해 소식도 들려왔지만 더위가 물러가고(處暑), 이슬이 하얗게 맺히면서(白露) 추석명절도 어김없이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못 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왜 그럴까?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으니 세상이 변하는 것은 섭리다.
거의 30억 년 전에 생겨난 지구는 암석덩어리였단다. 시간이 흐르면서 흙이 생기고, 바다와 산소, 동물과 이산화탄소 등이 어우러져 지구가 공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기후위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길냥이가 가족인 것처럼 지구도 크게 보면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은 버려두면 안 된다.
좀 엉뚱한 말이지만 장례는 흉사(凶事)지만 제사를 길사(吉事)라 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도 좋은 일인 것이다. 고향은 단순한 지역적 개념이 아니다. 부모형제는 물론 부모를 팔아서 산다는 친구도 있고, 내가 태어난 땅(흙)이자 언젠가 돌아갈 안식처이다. 어쩌면 원초적 가족이 있는 곳이다.
고향에 즐겁게 가자. 어쩌다가 명절 전후에 가족 간의 다툼이 늘고,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나고, 이혼의 통계가 늘어나게 되었을까? 천지(天地)도 들숨과 날숨인 호흡(呼吸)이 있듯이 인간은 천지가 공존하는 존재이고 천지(天地)가 곧 가족이다.
문제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말도 궁극적으로는 ‘다름의 인정’ 즉, 상대에의 존중을 의미한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오면서도 나눔에 익숙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
밖에는 이슬이 하얗게 맺혀있다. 이슬 맺히는 소리가 들린다. 미미(微微)한 소리도 간절한 관심으로 들으면 들린다. 이슬은 머지않아 서리가 되어 겨울을 데리고 올 것이다. 물론 겨울이 온다는 것은 내년의 봄이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보초를 서는 엄마고양이를 보면서 새벽마다 정화수 떠 놓고 기도하시던 우리네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 어머니가 계신 곳에 가서 시시덕거리며 실없는 아재개그도 하며 놀자,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냥이네 가족들도 즐거운 추석이길 바래본다. 흐르고 흐르다가 인연이 되어 만나 뒤늦게 가족이 된 고마움. 나에겐 크나큰 행운이다. 추석 특식이라도 챙겨주어야지.
집 앞 논에는 덜 찬 머리 덕분에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은 벼가 가을볕을 흠뻑 받으며 제대로 익어가고 그 위로 참새들이 악보를 그리며 날아오른다. 태풍이 재채기를 하여 지구를 싱싱하게 깨우듯 우리네의 티격태격도 건강한 삶의 한 부분이다.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즐겁게 살자. 그것은 곧 사랑이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