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내 안의 노마드(nomad)를 찾아 떠난 몽골여행 ②

여계봉 선임기자

몽골의 대평원은 여름철에는 에델바이스를 비롯한 수많은 꽃들이 수를 놓는다.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푸른 초원과 울창한 전나무 사이로 기기묘묘한 모습을 자랑하는 바위산, 초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하얀 게르 주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동물들은 한 폭의 그림이다.

 

무심결에 차창 밖을 보는데 야크 무리가 실개천에서 물을 마시고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다. 동화처럼 선명하게 순간적으로 포착된 장면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 세상에서 다양한 색깔로 치장한 야크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은 일부러 연출하려 해도 하기 어려운 인상적인 장면이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야크는 고원지대에서만 서식한다.


몽골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소, 양과 염소, 낙타의 숨소리를 들어보시라. 아침이면 풀잎에 맺힌 이슬과 예쁘게 피어난 꽃에서 꿀을 얻기 위해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도 초원을 누빈다. 이 아름다운 초원을 걷다 보면 온갖 똥들이 굴러다닌다. 이 똥들은 말 그대로 그냥 이 아니다. 주인이 따로 있어 어느 정도 마르면 수거하여 불쏘시개로 요긴하게 사용한다.

 

초원에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세상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초록 세상에 원색의 색감이 시선을 끄는 초원의 언덕에는 몽골 샤머니즘의 상징인 '어워'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형형색색 천들이 소원을 가득 담은 채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몽골의 돌무지로 우리의 서낭당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 성소다. 이곳 돌무지에서 3바퀴 돌며 소원과 안녕을 빌어보는데 낯설지 않은 풍습이다. 몽골이 한국인에게 주는 의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한민족의 뿌리가 이곳이라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어가 우랄 알타이어군에 속하여 문화적 동질성을 갖는 점이 많다.



초원의 고지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워’


나무와 강을 따라 걷다 보면 기암괴석의 바위산들이 눈앞에 가까워지고 능선 사이의 골을 따라 야생화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대평원을 걷다가 낮은 언덕의 바위 조망대에 올라 초원의 전경을 감상한다. 멀리 봉긋봉긋한 산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양과 말 떼가 줄을 맞춰 아장아장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초원에 여름이 왕성하면 초록이 가득하고 야생에서 자란 이름 모를 꽃이 천지에 만발하다.


초원 근처의 바위에 오르기만 하면 그곳이 바로 전망대다.


숙소 근처에서 나담축제가 벌어져 몽골전통씨름, 말 경주, 활쏘기를 직접 관람하는 행운도 누린다. 나담축제는 몽골 혁명 기념일인 711일부터 13일까지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매년 개최되는 몽골의 대표적인 민족 축제이자 스포츠 축제이다. 나담은 '남자들의 세 가지 경기'라는 뜻으로 몽골 씨름, 말타기, 활쏘기 등 3가지 경기가 축제의 중심이고,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몽골 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축제다. 이 축제는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초원에서 열린 나담축제. 씨름 경기가 가장 다이나믹하다.


강렬한 태양이 짜릿하게 비추고 바람도 질세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초원의 게르. 하늘을 시샘하듯 구름도 화면을 가득 채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몽골초원 게르에서 몽골 미녀의 밸리댄스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초원의 게르에서 밸리댄스를 감상하는 호사도 누린다.


몽골족 천막집 게르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야생화가 만발하고 초원도 진녹색으로 물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게르 베란다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초원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한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다. 붉은 노을이 초원을 뒤덮고 있고 야생화는 여전히 맵시를 드러내고 하늘과 노을은 초원의 빛을 반사하고 있다. 노을이 숨기 전이라 그런지 산 밑에 자리한 하얀 게르들과 여유롭게 노니는 말 떼의 갈기조차 붉어 보인다. 외부 문명과 단절된 채 외로이 노을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잠시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기분이다. 몽골 깊숙한 오지에 들어가 보시라. 이럴 때면 본의 아니게 문명과 떨어져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초원의 게르에서 ‘멍 때리기’하는 시간은 ‘나를 찾는 순간’이다.


저녁은 유목민들이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는 몽골 특식 '허르헉'(큰 항아리에 양고기, 감자, 당근 등을 넣고 뜨겁게 달군 돌을 함께 넣어 찐 요리)이다. 물티슈로 손을 깨끗이 닦은 다음 손으로 집어 먹는다. 잡내가 거의 없고 우리 입맛에 맞게 조리하여 김치와 곁들여 먹으니 정말 맛있다. 칭기스칸 골드 보드카 두 병이 게눈 감추듯 이내 사라진다.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


몽골초원에 어둠이 내리면 비현실 세계가 펼쳐진다. 깜깜한 밤의 적막 속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너무도 넘치는 잉여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깜박깜박 초롱 빛을 발하던 하늘에서 이내 백만 개가 넘는 별들이 쏟아지고 수많은 별과 은하수가 머리 위로 곧바로 떨어질 것 같다. 깊어가는 초원의 밤 따라 자연에 대한 경외감도 더욱 깊어만 간다.


초원의 게르 위로 쏟아지는 별빛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지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이 그렇다. 초원의 언덕 위에서 일출을 보고 바람에 맞서는 것은 또 어떤가. 온몸으로 느끼는 그 벅찬 감동과 자유로움은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방목 중인 소까지 숙소인 게르로 찾아와 문안 인사를 해주는 대자연을 어찌 떠날 수 있으랴.

 

아침 문안 인사하러 게르를 찾아온 소


몽골의 붉은 영웅 칭기스칸 기마상은 몽골제국 800주년을 맞이하여 높이 40m, 무게 250톤으로 제작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 기마상이다. 기마상이 세워진 지역인 울란바토르 외곽의 천진벌덕은 오래전에 칭기스칸의 황금 채찍이 발견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기마상은 10m 높이의 건물 위에 세워져 있는데, 건물 내부에는 박물관이 갖춰져 있으며, 전망대까지 운행하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로비에는 250마리의 소가죽으로 만든 엄청난 크기의 기마용 장화인 고틀과 말채찍이 전시돼 있고, 지하에는 옛 몽골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 겸 유물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칭기스칸이 바라보는 곳은 그의 고향인 '수흐바타르'가 있는 방향이라고 한다.


칭기즈칸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꿈은 그냥 꿈에 불과 하지만 만인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환경과 문화를 만나는 여행은 우리의 존재론적 의미를 더욱 성찰하게 한다. 따라서 모든 여행기는 살아있음의 흔적이요, ‘살아있는 날들의 빛나는 기록이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


작성 2022.09.14 11:55 수정 2022.09.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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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