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밀러 및 테네시 윌리암스와 더불어 미국의 3대 극작가라고 불리는 유진 오닐의 유작인 4막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는 오닐이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적 작품이다.
자신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1912년에 겪었던 실화를 토대로 이 작품을 쓰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글을 쓰는 동안 십 년은 늙은 듯 수척한 모습이었고 때론 울어서 눈이 벌겋게 부은 채로 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도 오닐을 고통스럽게 했던 비극적인 가족사가 그를 최고의 극작가로 만들어 낸 것도 아이러니한 사실인데 오닐의 가족사가 녹아있는 이 작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12년 여름, 별장에 티론 가족이 모인다.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이민자인 티론은 어린 시절의 가난으로 인해 엄청난 구두쇠이며 가족에게도 돈 쓰는 것조차 아까워하는 인물이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집도 없이 호텔을 전전하다가 둘째를 낳고 친정집에 있던 메리는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던 남편 티론이 보고 싶다고 하자 큰아들 제이미와 둘째 아들 유진을 친정에 맡기고 미국으로 가는데 그사이 제이미는 홍역에 걸리고 홍역을 옮은 유진은 죽고 만다.
그 일로 메리는 제이미가 유진에게 일부러 홍역을 옮겨 죽게 했다고 제이미를 미워하게 되고 죽은 유진에 대한 죄책감에 극도로 괴로워한다. 티론은 셋째를 낳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며 에드먼드를 낳는다. 돈을 극도로 아끼는 티론은 싸구려 돌팔이 의사에게 출산을 맡기고 출산 후에도 고통이 지속되자 몰핀을 처방하면서 메리의 몰핀 중독이 시작된다.
병약했던 에드먼드는 폐병에 걸렸고 그럼에도 아버지는 돈이 아까워 요양소에 보내지 않고 동네 싸구려 의사에게 치료를 받게 한다. 유진을 잃을 때처럼 에드먼드가 죽을까 봐 걱정이 되는 메리는 그 걱정에 계속 몰핀에 손에 대고 그런 어머니를 큰아들 제이미는 약 쟁이라고 힐난하면서 자신도 술과 매춘에 빠져 방황한다.
메리는 유진이 죽은 이유가 제이미가 홍역을 옮겨서 때문이라고 제이미를 미워하면서도 자식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고 아버지 티론은 술과 매춘에 빠져 사는 제이미를 힐난한다. 에드먼드는 자신의 치료비를 아끼는 아버지에게 구두쇠라고 항의하고, 자신의 출생으로 어머니가 몰핀에 중독되었으므로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운명이라고 자책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준 상처 때문에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는 어두운 상태에 빠져있다. 별장에서 가족은 아침부터 자정까지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극복할 수 없는 어그러짐에 새벽을 맞는다.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 시간은 가족은 한 울타리에서 한없이 가깝기도 하지만 한없이 멀 수도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진화할수록 가족의 개념도 변하고, 규모도, 문화도 변한다. 대가족 시대를 지나 핵가족 시대를 거처 1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가족의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시대를 맞고 있고, 국제화 시대 요청에 발맞추어 다문화 가족이 생겼다.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모든 가족들에게 그들만의 사랑과 따뜻함이 넘쳐난다고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
남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그들만의 치부로 생각하는 문제도 있을 것인데 사소한 문제뿐만 아니라 방치, 불효, 학대, 이혼, 가정폭력, 아동폭력, 무관심, 관계 단절 등이 그것이다. 또한 보통의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서로에 대해 잘 알고 행복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은 개인주의적인 자기 본위의 중심으로 살아가기에 그렇기도 하고, 현대 사회가 날이 갈수록 가족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의 가족은 서로를 각각의 개인의 사람으로 보고 이해하며 공감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전형이다. 상대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상대가 존재해 주었으면 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살고 있는 심약한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오닐은 이 작품을 쓰면서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모두 떠난 후에 후회, 용서한들 소용이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도 고귀한 이름,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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