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1948년 ~ ) 작가는 한국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일한 언론인 출신이며 2004년 이래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그 유명한 ‘칼의 노래’와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등이 있고 최근 공전의 히트를 친 산문집으로 ‘라면을 끓이며’ 등이 있다.
이 작품은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에 세 번째로 수록된 작품이다. 이춘갑과 오개남은 사흘째 저녁내기 장기를 둔다. 둘은 아는 사이는 아니다. 옆에는 오개남을 따라다니는 흰 개가 있다. 이춘갑은 예순여덟 살이다. 외환위기 때 운영하던 구두공장이 부도가 나 구두를 수선하며 어렵게 살고 있고 그나마 하나 남은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아내와 위장이혼을 하고 아파트를 위자료로 주었는데 진짜 이혼처럼 되어 버렸다. 아내가 아들과 나가서 살고 있는 것이다.
오개남은 한국전쟁 중 1.4 후퇴 이 후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구청 청소과에서 임시직으로 쓰레기를 쓰레기 치우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리어카에 쓰레기를 싣고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앞에 있는 아기엄마를 피하던 중 리어카 제어를 못해 벽에 부딪혀서 다쳤다. 해고 되었다. 반밖에 받지 못한 상해보상금을 오피스텔 관리사무실에 폐지와 유리병을 줍는 권리금으로 낸다. 사고 당시 그 장소에 유기견인 흰 개가 옆에 있었고, 그 뒤로 오개남을 따라다녔다. 흰 개는 이름이 없다. 그냥 ‘야’다. 흰 개는 맹인안내견으로 훈련을 받고 시각장애인 여자에게 보내졌으나 보도블록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풀냄새를 맡고 멈추는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안내견 자격을 박탈당하고 늙은 퇴역 장군에게 보내졌다가 그가 죽자 유기견이 되었다.
두 노인은 모르는 사이다. 저녁 내내 장기를 두고 함께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어울리지만 둘 사이의 실질적 ‘라포’는 없다. 이들에게도 한때 젊음이 있었을 것이다. 꿈도 있었을 것이고 직장도 가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후에 이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자신들의 처지와 똑같은 늙은 개 한 마리뿐인가. 이춘갑에게 아파트를 처분했다며 1억 5천을 보내온다. 재혼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의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 오개남은 오피스텔 폐품 수집 권리금 기한이 되어가고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 세도 올려줘야 해서 옥탑방으로 옮긴다. 그리고 흰 개를 유기견 보호소에 보낸다.
작품은 이 시대 독거노인의 외로운 처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작품 중 두 노인의 삶은 흰 개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비루하다. 지금도 서울 파고다(탑골)공원에 가면 작품의 내용과 같은 장면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판기 커피 한 잔과 무료 급식에 의지에 하루를 나는 노인들을 본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6,70년대의 보릿고개와 산업화 시대를 온 몸으로 지탱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이 왜 이리 비루한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성장기를 거쳐 중년에 이르는 동안 가장 큰 과제가 세상으로 당당히 나아가는 것이며,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동안 가장 큰 과제는 늙음과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다. 작가인 김훈 선생님은 이 소설집을 쓸 때 한 사람의 이웃으로써 글을 썼다고 했다. 우리의 이웃, 우리의 부모, 우리나라의 어른, 노인에 대한 관심과 복지, 그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sunguy2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