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가을에 할 두 가지 일

신연강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고 있다. 가을이 오는가 보다. 여름내 하기 싫었던 것들을 뒤로 물리고, 새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언뜻 가을에 하고 싶은 두 가지 것이 떠오른다.

 

할 것이 많겠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것 두 가지는, 긴 소매의 옷을 입고 싶다는 것과 펜을 잡아야겠다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내게 소소한 것이지만, 기본적이고 소중한 것이다. 

 

긴 소매의 옷을 입고 싶어지는 이유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는 날씨에 팔꿈치가 시리기 때문이다. 여름내 자연스럽게 내놓고 휘저으며 다니던 팔이 허전하다. 몸을 자꾸 감싸고 싶어진다는 것은 결국 계절에 따라 몸을 보호하고, 변화를 줘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엔 사계절이 있으니, 한 계절에 질릴 만하면 날씨가 바뀌고, 그에 따라 옷도 바뀌고, 또 그에 따라 마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 참…. 복 받은 곳임이 틀림없다. 감사하며 살 일이다.

 

가을이 오면 생기는 변화 중 다른 한 가지는 펜을 잡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의식에 따른 변화일 것이다. 더운 여름에 몸 하나 옮기는 것도 귀찮아서 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그늘로 찾아들었다. 가방(백팩)을 메는 것도 등에 땀이 나니 자꾸만 멀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펜 잡는 것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손에 땀이 나니, 펜을 대하는 촉감도 그리 썩 달갑지는 않았다. 장시간 쥐기도 힘들 뿐 아니라, 손 이전에 뇌가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가을이니, 그런 것에 대한 어설픈 변명이나 구실을 댈 수가 없다. 선선한 날씨에 계속 펜을 멀리한다면, 그것은 게으른 자아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가을의 네 번째 절기인 추분이 9월 23이니, 이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셈이다. 추분(秋分)의 의미 자체가 가을을 나누는 것이니, 제철 만난 호박, 깻잎, 고구마순, 햇곡식 등을 이웃과 나누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웃과 나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글일 것이다. 그러니 ‘북회귀선’을 생각하며 펜을 잡아야겠다. 펜을 잡는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이다. 머릿속 생각을 백지 위에, 설계에 따라 구도에 따라 전개하는 것이다. 그것뿐 아니라 병행해야 할 것이 또 생겼다. 사실 올해 중반을 지나며, 어이없게도 대출 서적 노트를 분실했다. 보고 싶은 책을 모두 다 살 수 없으므로 매주 2권가량을 도서관에서 빌리곤 해왔다. 그리고 빌린 책은 날짜별로 순서대로 대출 노트에 책명과 저자 등을 기록해놓는다.

 

어느 날 문득 노트가 눈에 띄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며칠 기다리면, 아니 조만간 나오겠거니(한 주, 두 주를 보내고, 이내 한 달, 두 달…. 그리고 결국은 6개월이 지나버렸다), 막연한 기대를 하며 망각의 날들을 보낸 것이다. 결국 찾지 못했으니, 한해의 반에 대한 기록(어떤 책을 읽었으며, 그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메모)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서적 노트를 다시 한 권 마련해야겠다.

 

그뿐 아니라, 중단한 메모도 다시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메모용 노트를 펼치니 한, 두 장 끄적거린다만 텅 빈 백지다. 대체 “내가 생각하는 인간인가(뭐, 좀 심하게 나무라긴 합니다만)”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거지”하는 자조를 하게 된다. 가을바람은 내게 반성의 시간을 가져온다. 지금부터라도 사람답게 기록하고, 쓰고, 생각하며 살라고 채찍을 가한다. 달게 받을 것이다. 이제 자신을 탓할 자연의 방해물이 없어졌으니, 걷고 바라보고 생각하며 메모할 것이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존재를 인식하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저녁 먼 산의 능선을 바라보며 삶의 여정을 생각하고, 기울어지는 달을 보며 삶의 오름과 내림, 그리고 들어섬과 비움을 생각하고자 한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은 그때그때 하기로 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게으르지 않으며, 구실과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하기로 한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하기로 한다. 몸과 마음에 변화를 줌으로써.

 

 

[신연강]인문학 작가 / 문학 박사/  imilton@naver.com
작성 2022.09.23 12:58 수정 2022.09.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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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