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옥동(玉洞)마을과 문항(文巷)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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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마을

 

남해 옥동마을은 마을의 생긴 모양이 구슬을 담아 놓은 함옥(含玉)처럼 생겼다 하여 옥동이라고 했다. 문항마을은 그 마을을 지나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낭하게 들린다고 하여 문항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옥동마을은 마을의 생긴 모양이 구슬을 담아 놓은 그릇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름이 지어진 것처럼 구슬 같은 인재들이 많은데 오늘은 전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유삼남이라는 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충무공 이순신의 순국지인 이순신순국공원 내 이락사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충무공 순국 4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 큰 비를 세웠는데 그 비에 새겨진 글은 유삼남 해군참모총장의 친필 글씨다.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충무공 이순신이 “전쟁이 한창 급하니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고 마지막 하신 말씀을 한자로 새겨 놓은 비다. 이락사 사당을 해설 할 때는 꼭 언급을 한다.

 

전 해군참모총장 유삼남은 남해 옥동마을 출신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유해가 잠시 안치되었다가 떠난 남해충렬사 아래에는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거북선은 1980년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제작 후 20년이 지나 교육용으로 생명이 다했을 때 다시 건조하면서 거북선이 남해 노량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역시 유삼남 전 해군참모총장 시절이다. 

 

거북선을 남해로 가져오는 데 일조하여 이락사나, 충렬사를 해설할 때 유삼남 님의 치적을 자랑한다. 구슬을 담는 그릇처럼 생긴 마을에서 이런 인물이 성장했으니 마을 이름과 일어난 일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항마을

 

내가 설천에 살던 때 옥동마을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 엄마들이 참 고맙게 해주었기에 좋은 이미지로 각인된 곳이 옥동마을이다. 그리고 문항은 이름처럼 선비들이 있어 그런지 박사가 20명 가까이 배출된 마을이고 특히 시(詩)를 좋아하는 내게는 참 인상 깊은 마을이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세 부를 손으로 직접 써 스승에게 한 권, 정병욱이란 후배에게 한 권, 나머지 한 권은 자신이 일본 유학 길에 가져갔는데 그 혼란스런 시절 두 권의 시집은 사라지고 정병욱이란 후배에게 준 한 권이 남아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시로 살아남게 되는데 그 정병욱의 집안이 남해 문항마을 사람들이다.

 

일제 강점기 교육을 위해 정병욱의 아버지가 하동으로 이사를 하고 또 나중에는 광양으로 이사를 하면서 지금은 광양 사람으로 되어 있지만 처음은 남해 문항 사람이었다.

 

그리고 남해 3·1운동 발상지가 남해 문항이다.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던 문항마을을 상상해 보면 글 읽는 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서 문항이라고 했던 마을 유래와 딱 맞아떨어진다. 

 

윤동주의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제목의 시집이 이 문항마을 사람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도 예사롭게 볼일은 아닌 듯하다. 정병욱은 일제 강점기 때 선배가 준 시집을 학도병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부탁으로 시집을 비단에 싸 마루를 뜯어내고 그 밑에 숨겨 보관하여 살려낸 것이다. 옥동이나 문항이나 그 일어난 일들이 마을 이름과 같이한다. 그래서 우리는 글과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옥같은 인물이 많이 나고,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는 마을이 남해에 있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

서재심 alsgml-2@hanmail.net

 

작성 2022.09.24 12:37 수정 2022.09.2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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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