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 칼럼] 가을에 읽는 시 세 편

정홍택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붑니다. 그리운 사람이 보고싶어 지는 계절이 찾아 왔습니다. 어제 한국에 있는 친구가 이멜(e-mail)로 안부를 물으며 편지 말미에 <대추 한 알> 이라는 시를 달았습니다. 보통 남의 시(詩) 같은 것은 첨부 파일(Attachment File)로 보내는게 상례인데 이렇게 손수 한 자 한 자 쳐서 담은 그 친구의 정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마음 속으로 그림을 그려 봅니다. 때는 늦가을, 시인은 대추나무 곁을 지나게 되었나보죠. 추수를 거친 대추나무는 알맹이 하나 없고 잎만 무성합니다. 
그런데 저거 보십시요. 저기 꼭대기에 대추 하나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빨간 동그라미가 대롱대롱 달려 있군요. 추수꾼들이 일부러 남겨두었을까, 아니면 미쳐 눈이 닿지 못해 지나쳤을까?

시인은 손을 이마에 대고 유심히 쳐다 봅니다. 그래서 그는 시 초두를 <저어기 있는 저 것>을 줄여서 <저게>로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푸른 하늘 아래 한 점 빠알간 대추 알은 시인을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죠. 대자연의 섭리가 그 둥근 빨강 속에 다 들어 있었으니까요. 저는 답례로 아래의 시를 그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장석주 시인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들어 대추를 응시했다면, 이생진 시인은 자세를 굽히고 긍휼한 마음으로 하나의 나뭇잎을, 그것도 벌레에 먹힌 이파리 하나를 바라봅니다. 뻥 뚤린 그 구멍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또 어떤 하늘일까요? 이 시인은 저 푸른 하늘 너머 우주의 캄캄한 흑암 속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았습니다. 하늘은 <예쁘고>, 별은 <아름답다>라고 노래합니다.

나는 오늘 아침도 동네 공원에 걸으러 나가 산책로를 따라 가면서 위의 두 시(詩)를 반추해 보았습니다. 햇볕이 너무 좋아 잠시 벤취에 앉았더니 아래의 꽃이 눈에 띄었습니다. 

싱싱하던 잎들도, 샛노란 꽃잎도 다 시들어 떨어져 버리고 탐스런 꽃씨만이 고개를 들어 내게 웃고 있었습니다. 쭉정이 대 위에 덩그러니 놓인 누런 꽃씨들은 젊음의 푸르름도 벌 나비 부르는 현란한 아름다움도 다 사라져 버렸죠. “그런건 다 허세야”하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불현듯 집사람이 내 아기를 배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화장끼 없는 맨 얼굴,
불룩한 배를 내밀고 뒤뚱뒤뚱 걷는 이 여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예뻣습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을 보며 <과거>를 보았고, 이생진 시인은 이파리 벌레구멍을 통해 <현재>를 보았다면 저는 이 작은 풀씨를 보며 <미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년에 이 씨들은 다시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겠지요. 


이 꽃씨는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세 번째 시(詩)가 되었습니다.

 

 

[정홍택]

서울대학교 졸업

KOCHAM(Korea Chamber of Commerce in U.S.A.) 회장

MoreBank 초대 이사장 

Philadelphia 한인문인협회 창설 및 회장

정홍택 hongtaek.chung@gmail.com
 

작성 2022.09.27 10:30 수정 2022.09.27 10:4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