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9월 가을 시(詩) 한 편

하진형

 

오늘 아침도 여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밥 무로 올라 오이라~’ 또 선계(仙界)로 간다.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있어선지 아침 안개가 자주 낀다. 희뿌연 길 위에서 개기일식을 닮은 해가 웃고 있다. 오늘도 조금 더울 것 같다. 작은 초등학교 분교를 지나 선계로 들어선다. 하늘 가까운 곳의 코스모스는 더욱 싱그럽게 반긴다. 혼밥에 서툰 형은 밥을 차리고 나는 설거지를 돕는다.  

 

허구한 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에 쫓기다가 은퇴를 하고 농촌으로 들어와 사계절은 보내면서 살펴보니 어느 시간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이 없다. 자연은 순간순간마다 사람을 교육시킨다. 단순히 ‘가르친다’라고만 말하기가 버거울 지경이다. 곳곳에서 시시때때로 가르침을 준다. 세월은 쉼 없이 흐르며 변하고 있다고 인생은 짧다고, 그러니 까불지 말라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단순하게 시간을 맞이하고 흘러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을 하면 ‘수확’이란 말부터 떠올리지만 기실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처럼 인간도 마찬가지다. 후반기 인생의 삶이 더욱 깊고 즐거울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올해 무엇을 얼마나 하였을까? 가을을 맞이하면서 수확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아쉬움이라는 게으름이 나를 꾸짖고 있다. 아쉽다고 말하지 말라고 게으른 것은 너 자신이지 않느냐고.... 생각해 보면 시간을 보내고 나이 먹으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게으름과 우둔함이 늘 아쉬움만 남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뭐 그게 대수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또 친구들도 자주 찾아오는가 하면 새로운 벗도 생기고, 서툰 농부의 손끝에도 작지만 고마운 수확도 있지 않은가. 섭리에 거역하지 않으면서 괭이질과 청소를 하였더니 과분하게도 작은 열매가 가족이 되어주었다. 무더위에 흘린 땀은 땅속으로 사라졌지만 질량불변의 법칙은 어디선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준 일은 없으니 또한 다행이다. 

 

가을의 문턱이 반갑다. 올가을엔 인문학 책이라도 몇 권 읽어야겠다. 매양 같은 장르만 읽다가는 나도 모르게 편식쟁이가 될지도 모른다. 가을이 사랑받는 것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이다. 균형은 어떤 분야에서도 중요하다. 감사한 아침 식사 길을 반기는 참새떼가 안개를 뚫고 날아오른다. 작은 그들의 날아오름에도 질서가 보인다. 아름답다. 하긴 참새도 오장육부가 있다고 했으니 나보다 더 나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군인이었던 이순신장군은 전장에서도 시를 읊었다. 군인이 전쟁하기에도 바빴을 터인데 시를 짓고 시조를 읊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오로지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고심과 의지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조인 한산도가(閑山島歌)를 읊으면서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이제 죽다 마다하리오(雖死不爲辭)’를 짓고, 전쟁이 끝날 때를 상상하면서 ‘도연맹 귀거래사 나도 읊으리(應賦去來辭)’를 읊조린다. 

 

이처럼 문질빈빈(文質彬彬)이 중요하다. 요즘 나라가 시끄럽다. 집에 TV는 없지만 줄창 열려있는 귀로 식당의 TV뉴스가 쳐들어온다. 자칭 지도층이라는 그들도 그렇게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니 수사불위사(雖死不爲辭)의 뜻은 알 것이다. 이 가을에 왕도정치를 가르친 맹자(孟子)를 한 권 사서 보낼까, 아니면 책이 너무 두꺼우니 얇은 시집(詩集)이라도 권할까.

 

책 속에 삶의 지혜가 얼마나 많은가? 여러 책을 읽다 보면 역사상 무식한 군주나 폭군의 재위(在位) 기간은 짧았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것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지 않을까.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괜히 나만 걱정하는가?

 

안개가 걷히자 어느새 하늘이 높아져 버렸다. 길가의 코스모스도 가을이라며 하늘이라도 한번 올려다보라고 손을 치켜들고 있다. 구경나온 잠자리도 하늘거린다. 이 가을에 이순신 장군님이 전장(戰場)에서 지은 가을 시라도 한 편 같이 읊어보자.

 

閑山島夜吟  한산도 밤에 읊다

 

水國秋光暮  넓은 바다에 가을빛은 저물고

驚寒雁陳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憂心輾轉夜  큰 시름에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

殘月照弓刀  희미한 새벽달이 활과 칼을 비추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9.30 12:01 수정 2022.09.30 12: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