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위록지마(爲鹿指馬)

고석근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반대편에서는 지배를 의미할 뿐이다. 

- 미셸 푸코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왜? 힘이 없으니까.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 당시는 정실의 자제가 아니면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 첩실의 아들인 서자는 미래가 뻔했다.

 

아무도 그가 누구의 아들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홍길동이 어떤 연유로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면 당연히 아버지가 그의 앞에 나타나 아버지라고 부르기를 바랄 것이다.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순행 길에 올랐다가 갑자기 죽자, 환관 조고가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고는 진시황의 뜻과는 관계없이 힘이 없는 호해를 황제로 옹립했다. 그는 장차 황제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호해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폐하, 말을 바치옵니다.”라고 했다. 누가 봐도 말인데, 어리석은 황제는 “이건 분명히 말이 아니오?”라고 말했다. 대신들은 침묵을 지켰다.  

 

말을 말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 황제의 질문에 말을 말이라고 말한 대신들은 죽임을 당했다. 왜? 지식은 힘이니까.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베이컨이 ‘지식은 힘’이라고 말했을 때는, 근대사회가 열릴 때였다. 인간 중심의 근대사회에서는 인간의 지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 후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푸코도 ‘지식은 힘’이라고 했다. 푸코는 베이컨과 달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곧 권력’이라는 뜻으로 그 말을 했다.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고 말했을 때는, 언뜻 보면 지식, 진실의 문제 같지만, 실은 권력의 문제였다. 우리는 ‘지식은 곧 권력’이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지구는 네모’라는 것이 상식적인 지식이었다. 그러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배가 멀어지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수없이 보았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직감적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에 지구가 둥글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늘이 뒤집어지지 않겠는가? 신 중심의 종교 시대가 끝나고 인간 중심인 근대사회가 열리면서 자연스레 지구는 둥글게 되었다. 지식은 객관적 진리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나 지배 세력의 생각과 일치되는 것이 ‘객관적인, 보편적인 지식’이 되었다.  

 

언론 매체에 ‘정치인들의 말이 거짓이냐? 진실이냐?’로 시끌벅적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역시 정치인은 도덕을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해!’ 하지만 근대 정치학의 문을 연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정치와 도덕은 관계가 없다.” 그는 ‘정치 지도자는 사자처럼 용맹하고 여우처럼 간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정치인의 부도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국회의원들은 물에 빠져도 입만은 물 위에 동동 떠내려갈 거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거짓, 진실에 대한 지식의 문제는 바로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만일 우리 국민들이 민주시민의식을 갖춰서 그들의 거짓말에 놀아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고 말할 때, 그 당시 백성들이 민주 시민의 의식을 가졌다면, 그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분노해야겠지만, 동시에 우리가 힘을 갖추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주인인 우리는 역사를 보는 눈도 갖추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듯이, 현대 정치인은 도덕군자가 되어서는 현대의 복잡한 정치를 풀어갈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도덕성을 갖추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민주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 우리 국민의 반 정도만 소시민을 벗어나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도, 어느 정치인이 감히 주인인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는가? 

 

 

 위성도시로 가는 전철에서 

 손잡이에 매달려 내일 자 조간을 읽는 남자 

〔......〕

 중산층이 된 남자 한 번도 어제 기사를 

 다시 읽어보지 않은 남자 종점까지 가서 

 내일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은 남자 

 네 컷짜리 만화보다도 볼 게 없는 

 어딘지 낯익은 남자 

 

 - 전윤호, <신문 보는 남자> 부분 

 

 

‘어딘지 낯익은 남자’ 우리는 다들 비슷하게 되어 간다. ‘내일을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은 남자’가 되어 그렇다. 자신의 생각으로 살지 않아서 그렇다. ‘중산층이 된 남자’가 자신의 전부가 되어서 그렇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2.10.06 11:39 수정 2022.10.0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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